200억 썼다는 이 거리… 도시 재생 맞습니까?


200억 썼다는 이 거리… 도시 재생 맞습니까?
 
"이 동네에 200억원이나 투입됐다고요? 
그 큰돈을 어디다 썼대요?"

      지난 25일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도시재생사업 1호 지역인 창신·숭인 지구에서 만난 주민 이근식(67)씨는 "도시재생사업이란 말 자체를 처음 들어본다"며 "그게 무슨 사업이든 동네가 바뀐 표가 하나도 안 나는데 돈만 날린 것 아니냐"고 말했다. 동네에서 30년 넘게 살았다는 송정헌(51)씨도 "재생사업이라고 해서 건물 수리하고 길도 깨끗하게 해주는 건 좋지만 결국 땅값 오르고 건물주만 혜택을 본다"며 "지역 주민들이 먹고살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게 진짜 재생"이라고 했다.

도시재생사업 명목으로 2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된 서울 종로구 창신·숭인동 지구의 한 골목길. 지역에서 만난 주민 대부분은 “사업 전후로 달라진 게 별로 없다”며 “그 큰돈을 어디다 썼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 권승준 기자


이날 창신·숭인동에서 만난 주민 30명 중 도시재생사업에 대해 들어본 사람은 절반 정도였다. 또 대부분 주민들은 예산 200억원이 투입됐다는 말을 듣고는 "돈을 어디다 썼느냐"고 되물었다.

창신·숭인 지구는 2007년 뉴타운 사업 지구로 지정됐으나 주민들 반대로 무산됐다. 이후 2014년 도시재생사업 지역으로 선정돼 작년 말까지 총 2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도시재생사업은 산업 공동화, 노령화 등으로 쇠퇴한 구(舊)도심을 되살리자는 취지다. 뉴타운 사업과 달리 기존의 동네 원형은 되도록 유지하면서 주거 환경 정비, 협동조합 설립 등 다양한 사업을 통해 지역을 활성화하는 것이 목적이다. 서울시에서 가장 먼저 추진한 사업인데, 작년 대선 때 문재인 대통령이 이를 벤치마킹해 전국에 비슷한 콘셉트의 도시재생사업을 벌이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지난 3월 국토교통부는 5년간 예산 50조원을 투입해 전국 250곳에서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때문에 국내 1호 도시재생사업 지구로 마무리 단계인 창신·숭인 지역의 사업 성과가 향후 정부 사업 추진의 가늠자로 주목받고 있다.

"구경거리보다 봉제일 배우게 해주길"
도시재생사업은 뉴타운 사업 같은 재개발의 대안으로 나왔다. 인구 밀도가 높은 구도심은 많은 주민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어렵고 사업성도 낮아서 재개발이 무산되는 경우가 많다. 창신·숭인 지구도 뉴타운 사업 지구 중 가장 먼저 무산됐다. 1만 가구가 사는 지역에서 8000가구만 살 수 있는 사업 계획이 나오자 주민들 반대가 거셌기 때문이다. 재개발 사업 진척이 없는 구도심 대부분이 창신·숭인지구와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일본 도쿄의 에비스 지역 등 해외 선진국에서도 비슷한 콘셉트의 도시재생사업들이 성공한 사례가 많다. 서울시 관계자는 "창신·숭인지구처럼 기존 방식의 재개발이 사실상 불가능한 도심 지역에서 주민 요구와 지역 특성에 맞는 개발사업을 추진하자는 게 도시재생사업의 취지"라고 말했다.


창신·숭인 사업의 내역을 살펴보면 초점은 결국 시설 건축과 주거 환경 정비였다. 봉제공장이 밀집한 지역사를 테마로 한 봉제거리박물관이나 백남준 기념관 등 관광시설과 주민 사랑방 역할을 염두에 둔 주민 공동 이용 시설 등 시설을 짓는 데 100억원 넘게 들었고, 거리 정비와 CC(폐쇄회로)TV 설치 등에도 70억원 가까이 투입됐다.

하지만 주민들 지적대로 현장에서 이 사업의 효과를 체감하긴 어려웠다. 봉제거리박물관은 봉제공장이 들어선 골목 거리에 봉제공장의 역사나 작업 과정 같은 것을 설명하는 안내판을 붙여놓은 게 전부였다. 1960년대부터 이 지역에서 이어져 온 봉제산업 역사를 조명하는 봉제역사관도 들어섰지만, 구불구불한 골목길 안쪽에 위치해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장 큰 예산이 들어간 주민 공동 이용 시설은 2~3층 규모의 건물로 카페와 도서관, 세미나실 등 공간이 마련되어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운영 계획이 수립되지 않았다. 도로 및 골목길 정비 사업도 이 지역 전체 도로·골목길 중 6~7% 정도를 정비하는 데 그쳤다. 봉제사로 일하는 고순화(62)씨는 "젊은 사람들이 봉제일을 하지 않으려는 게 문제인데 박물관 짓고 옛날 미싱 기계 갖다 놓는다고 그 문제가 해결되는 거냐"며 "관광시설 지어놓으면 주말에 젊은 사람들이 구경 오는데 '놀러오지 말고 봉제일이나 배워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0억원 들여서 고작 일자리 391개 창출?
도심 쇠퇴는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사람들이 떠나는 게 제일 큰 원인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도시재생 역시 일자리를 창출해 자생력을 갖추는 데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결국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이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연세대 도시공학과 김갑성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창신·숭인 지구의 경우 200억원을 투입해 직·간접적으로 창출된 일자리는 391개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업이 일자리 창출보다 기반 시설 조성에 치우친 탓이다. 창출된 일자리도 카페 운영 등 서비스업에 치우쳐 있어 지역 핵심 산업인 봉제산업을 다시 살리는 것과는 동떨어졌단 지적이다. 게다가 창신·숭인동 주민들이 모인 주민협의체는 작년 사업이 마무리된 이후에도 "시의 지원이 필요하다"며 추가 예산 지원을 요구하는 실정이다.

시는 창신·숭인 지구 재생사업이 자생력을 가질 수 있도록 작년 6월 주민들을 모아 '창신숭인도시재생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조합비를 내고 지역에 맞는 사업을 발굴하고 일자리도 창출하도록 유도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지금까지 가입한 조합원은 사업지구 내 인구 3만여명 중 105명으로 아직 참여가 저조한 편이다. 조합 총회를 열기 위해서는 조합원 전원이 모여야 하고 의사 결정을 위해 개개인의 인감이 필요한 등 조합 활동에 뒤따르는 자잘한 규제도 많아서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합의 손경주 기획운영실장은 "앞으로 다양한 주민 의견을 수렴해서 조합 차원에서 수익도 나고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는 사업들을 많이 발굴하겠다"고 말했다
권승준 기자 | 2018/04/28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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