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한 자율주행 안녕! ‘작고 느린’ 교통으로 미래 도시 혁신 꿈꾼다 VIDEO: MIT Persuasive Electric Vehicle (PEV)
거창한 자율주행 안녕!
‘작고 느린’ 교통으로 미래 도시 혁신 꿈꾼다
Persuasive Electric Vehicle, PEV
초연결, 초지능 사회에 교통은 어떻게 변할까. 가장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운전자 없이 도로를 주행하는 지능형 자동차, 일명 자율주행차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는 2016년, “2년 안에 4단계 자율주행차(특정 조건 하에서 완전 자율주행이 가능한 진정한 의미의 자율주행차)를 완성하겠다”고 밝혔다. 2018년이 바로 내년이다. 하지만 자율주행차가 충분히 ‘자율성’을 갖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등 논란이 뜨겁다. 지난해 12월 15일 ‘사이언스’는 10페이지에 이르는 특집 기사를 통해 “우리는 아직 자율주행차가 무엇인지 합의조차 이뤄지내 못했다”며 “진정한 자율주행차가 실현되기까지는 생각보다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자율주행 연구의 석학 존 돌란 미국 카네기멜론대 로봇연구소(RI) 교수 - 윤신영 제공
자율주행자동차 석학, “4단계 자율주행차도 실현까지는 긴 시간 필요”
세계 로봇 및 자율주행 연구의 메카로 꼽히는 미국 카네기멜론대 로봇연구소(Robotics Institute)에서 만난 자율주행자동차 분야 석학 존 돌란 교수는 자율주행차를 곧 도심에서 보게 되리라는 ‘장밋빛 전망’에 대해 신중한 연구자 중 한 명이다. 그는 11월 16일 피츠버그 연구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고속도로 등 특정 상황에서 자동차가 모든 것을 판단하고 운행하는 것을 의미하는 4단계 자율주행차를 많이 연구하는데, 테슬라의 선언처럼 몇 년 안에 실현되기는 어렵다고 본다”며 “자율주행차에 탑승해 자라고 하면 잘 사람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특히 도심에서의 자율주행이 머지 않아 가능하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돌란 교수가 어렵다고 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아직 자율주행차가 돌발 상황에 효과적이고 안정적으로 대처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도심은 차량이 끼어들거나 사람이 차도에 들어서는 등 돌발 상황이 많은 곳이다. 사람도 운전하기가 쉽지 않다. 돌란 교수는 “미국 서부에서 만든 교통량 데이터(NGSIM)를 바탕으로 도로에서 수백 가지 돌발 상황을 마주하게 해 알고리즘으로 대처하는 실험을 하고 있는데, 사람의 사고율은 거의 0%인데 반해 아직 알고리즘의 사고율은 20%가 넘는다”며 “이를 7%대로 낮추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구글이 발표한 자율주행차 상상도 - google 제공
빠른 속도로 주행하면서 보행자를 인식하는 능력도 아직은 사람의 기민함을 이기지 못한다. 돌란 교수는 “사람은 수백 m 전부터 사람 형상을 인지하지만 카메라는 아직 그 정도 해상도를 내지 못한다”며 “이런 상황이 도로에서 마주치는 상황의 5~10%에 불과할지라도 아직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능력이 자율주행차에게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협력 주행도 의외로 자율주행자동차에게 어려운 과제다. 돌란 교수는 신호가 따로 없는 로터리나, 길이 합류하는 곳의 경우 사람은 서로 눈을 맞추는 등의 방법으로 상대의 의도를 파악해 끼어들거나 양보한다”며 “이런 협력적 주행은 사람의 특성으로 자율주행자동차가 아직 못 따라간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상용화를 위해서는 가격이 충분이 내려가야 하지만 아직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현재 자율주행자동차를 위해서는 크게 네 가지 센서가 필요하다. 레이저를 이용해 주변 지형을 파악하는 라이다(LIDAR)와 전파를 이용하는 레이더, 그리고 광학 카메라와 위성위치추적시스템(GPS)이다. 레이더는 주변 사물이나 지형을 인지하는 데 빠르고 가격도 싸지만, 물체의 형체나 크기까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라이다는 지형과 물체를 정확히 인지할 수 있지만, 가격이 대당 수백만 원으로 비싸다. 또 맑은 날은 낮과 밤 모두 위력을 발휘하지만, 비나 눈이 오는 날에는 정밀도가 크게 떨어진다는 약점이 있다. 광학 카메라로 이 부분을 보강할 수 있지만, 고속 조건에서는 아직 해상도가 떨어진다. GPS 가운데 자율주행에 필수적인 차선 인식까지 가능한 정밀한 GPS는 가격이 수백만~수천만 원 대로 상용차에 사용할 수 없다.
돌란 교수는 자율주행자동차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사물인터넷(IoT)과의 결합도 중요하다는 데에도 동의했다. 하지만 모든 교통 인프라가 IoT화 되지 않아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덧붙였다. 돌란 교수는 “자동차 상호간 통신을 통해 자율적으로 운행할 수 있게 하는 한편, 외적인 움직임을 통해 주변 자동차의 의도를 파악하는 방법으로 자율주행을 완성하고자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자율운행 시험 중인 PEV - MIT Media Lab/Jimmy Day 제공
자율주행차 시대, ‘느리고 싸고 작은’ 교통 수단으로 발상 전환
자율주행차의 등장이 더딜 것으로 예상되자, 일부 연구자들은 전략을 조금 바꿀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완전 자율주행차가 도심을 한꺼번에 바꿀 시기는 조금 뒤로 늦추고, 대체 가능한 교통의 범위도 ‘모든 자동차’에서 ‘일부 자동차’로 바꾸자는 뜻이다. 동네나 도심 등 근거리 교통과 고속도로 장거리 교통 등은 모두 특성이 많이 다른데, 굳이 이들을 한꺼번에 ‘자율주행자동차’라는 범위에 묶어 둘 필요가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나온 발상이다.
고속도로 등 장거리 교통을 자율주행차로 대체하고 시내, 특히 동네나 캠퍼스 안 등 작은 규모의 커뮤니티는 자동차보다는 오히려 전기자전거에 가까운 소형·저속 자율주행자동차로 대체하자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데이비드 린 메사추세츠공대(MIT) 미디어랩 시티사이언스 그룹 연구원은 이 문제에 10년 가까이 집중하고 있는 대표적인 연구자다. 그는 자체적으로 개발한 소형·저속 전기자동차 ‘PEV (Persuasive Electric Vehicle)’로 도심의 교통 개념을 바꿀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가 속한 시티사이언스 그룹은 미디어랩 중에서도 도시 계획의 의사결정 수단 등 공간을 다루는 몇 안 되는 연구실 중 하나다. 대만 태생인 린 연구원 역시 건축학을 전공한 뒤 연구실에 합류해 도심의 이동 수단을 혁신할 방법을 연구 중이다.
그가 만든 PEV는 공유가 가능한 주문형 경량 이동 수단이다. 생긴 모양은 세발 자전거와 비슷한데, 전기를 이용해 천천히 이동할 수 있다. PEV의 장점은 느리고 싸며 작다는 점이다. 빠르고 고급스러우며 커야 인정 받는 교통 세계에서 정 반대의 가치를 내세우고 있는 것은, 그만큼 기존 교통 체계에 반하는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소형, 경량 자율주행 전기자동차(PEV)를 개발 중인 마이클 린 MIT 미디어랩 연구원 - 윤신영 제공
PEV가 목표로 하는 거리는 반경 1㎞ 남짓의 근거리 이동이다. 지하철 한두 정거장, 버스 두세 정거장 거리다. 기존의 교통 체계에서는 이 거리를 담당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 자전거가 있지만, 전세계 지자체의 자전거 장려 정책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중심의 교통 체계와는 잘 섞이지 않았다.
PEV는 자동차와 자전거의 중간쯤 되는 위치를 차지한다. 최고 속도가 시속 28㎞로 걷는 속도보다는 빠르지만 자동차보다는 한참 느리다. 무게도 자전거보다 조금 무거운 50㎏ 이하이고, 전기를 써서 오염물 배출량은 60% 이상 줄였다. 무엇보다 가장 큰 특징은 자율주행 능력이다. 린 연구원은 “공유가 가능하려면 목적지에 도착한 뒤, 다음 주문자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며 “이 과정을 자율주행을 통해 해결했다”고 말했다.
린 연구원이 보여준 영상 속 PEV는 마치 소나 말 같은 동물 같았다. 느리게 어슬렁 어슬렁 움직이며 목적지로 간다. 차선을 인지해 따라가지만, 보행자나 장애물이 앞에 놓이면 바로 경로를 수정해 피해 간다. 이때 PEV의 ‘눈’은 저렴한 라이다고, 두뇌는 흔히 볼 수 있는 노트북이었다. 린 연구원은 “보급이 원활하도록 전체 가격을 3000달러(약 330만 원) 이하로 맞췄다”며 “자율주행자동차용 라이다 하나만 500만 원이 넘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능이 약한 센서들을 이용해서도 충분한 성능을 발휘하도록 알고리즘을 최적화하고, 오픈소스를 최대한 활용했다”고 말했다.
PEV가 스스로 복잡한 거리를 운전해 가고 있다. - MIT Media Lab/Jimmy Day 제공
린 연구원은 “자율주행과 주문형 자동차가 필요한 이유는, 전체 자동차의 수를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라며 “일반 자율주행자동차로 전체 차량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네와 캠퍼스 등 커뮤니티 규모에서 자동차를 대체할 필요성도 크다”고 말했다. 한국 부산에서도 생활해 본 적이 있다는 린 연구원에게 “느리고 가벼워 PEV를 언덕이 많은 한국에서 사용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묻자, “그럴 수도 있다”며 “각 지역의 특성에 맞춰서 차량의 특성을 변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신영 기자 ashilla@donga.com 동아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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