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태 KAIST 교수, "탈원전 드라이브와 산업부 직무유기"

 

이병태 KAIST 교수·경영학

 

  새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을 상징하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최종 권고안 발표가 임박하면서 찬반 여론이 뜨거워지고 있다. 원자력 발전은 값싸고 품질 좋은 전력으로 우리 경제의 성장을 견인해 온 원동력이다. 특히, 우리의 원전 기술은 최근 유럽사업자요건(EUR) 인증 본심사를 통과하는 등 세계 최고 수준임을 인정받고 있다.

 

 

한 산업이 국제경쟁력을 갖는다는 것은 지난(至難)한 일이다. 지금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갖고 질 좋은 고용을 만들고 있는 산업들은 수십 년 간의 투자와 실험의 결과다. 우리의 전자산업이 일본의 위세에 눌려 일본 제품 수입을 금지하고 국내시장에서의 보호를 통해 육성됐고, 제품의 품질과 상관없이 국산 자동차를 사용하던 애국심 마케팅에 의존하던 시절이 그리 오래 된 일이 아니다.

 

원전은 우리나라, 특히 과거 정부의 노력으로 국제 경쟁력을 최근에 갖추기 시작한 특별한 산업이다. 원전 수출은 이명박 정부에서 최초로 아랍에미리트(UAE)에 원전 수출을 시작하며 국제경쟁력 있는 유망 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다. 원전은 안전이 매우 중요한 요소인 대형 프로젝트 산업이라는 점에서 가격과 품질만으로 승부하는 일반 산업과 크게 다르다. 이런 이유로 원전의 수출은 건설 경험이 많은 프랑스에 의해 독점돼 온 산업이다. 그것을 우리나라의 건설 및 운영 경험을 내세우고 정부가 총력 지원을 약속해서 첫 사례를 만든 것이다. 원전의 안전과 실적에 의존하는 특성상 많은 나라가 경쟁을 할 수 없다는 점에서 한 번 수출국으로 부상하면 지나친 경쟁 없이 상당한 부가가치를 누릴 수 있는 산업이다.

 

이러한 전망 있는 산업이 정치적 이유로 주무 부처에 의해 국제경쟁력을 훼손당하고 있다는 우려가 크다. 최근 영국, 케냐,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원전 발주를 추진하는 등 원전 붐이 일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새 정부의 탈원전 선언으로 수주 가능성이 작아지고 있다는 전망은 물론 우리가 성공적으로 건설 운영 중인 UAE 아부다비 바라카 원전의 이웃 나라인 사우디의 대형 원전 발주 경쟁에도 정부는 손을 놓고 있다. 수출에 반대하지 않는다거나 탈원전과 수출은 별개라는 발표만 하고는 탈원전 선언을 한 정권의 눈 밖에 날까 두려워 오불관언 자세다.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서 UAE 수주를 성공시킨 직전 정부와는 극히 대조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탈원전 선언 때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침묵은 비판의 대상이었다.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원전올림픽이라고 불리는 세계원전사업자협회(WANO) 총회에 대한 산업부 장관의 외면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런데 해당 부처의 답변은 관례상 참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힘들게, 새롭게 국제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부상한 원전 수출 사업이 정치적 이유로 위기에 처해 있다. 막대한 해외 원전 건설 수주 기회가 있는 와중에 관례를 들어 손을 놓는 자세는 권력의 눈치를 보며 자리 보전이 국익에 우선하는 공직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런 정치적인 분위기를 만든 정권을 우선 탓해야 하겠지만, 관례 운운하며 제 밥그릇 걷어차고 있는 영혼 없는 공무원의 전형인 지금의 산업부 모습 또한 실업의 고통과 불안에 짓눌린 경제 현실에 비춰 한심하다. 일자리가 먼저라며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원전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는 정부의 이율배반적 모습에 청년들의 질 좋은 일자리 희망은 공허한 바람이 되고 있다.

문화일보

kcontents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