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조미료 선물 [한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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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조미료 선물

2017.09.13

달이 바뀌면 추석 연휴가 시작됩니다. 이번 추석 연휴는 무려 10일이나 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추석이 되면 고향에 내려가서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하는 풍습이 요즘에는 많이 변했습니다. 명절 때 고속도로가 막힌다는 이유로 나이 드신 부모님이 자식이 있는 도시로 상경을 하는 광경이 낯설지 않습니다. 

자식이 힘들 것 같아서 도시로 상경을 하는 부모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묘는 생략하고 차례만 지낼 바에는 PC 카메라나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차례를 지내는 것이 편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추석을 떠올리면 연상되는 단어가 ‘선물’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는 달걀이며, 신문지에 싼 돼지고기, 담배, 떡 같은 것을 동네 어르신 댁이나, 친척 집, 담임선생님 댁에 갖다 주었습니다. 

선물을 들고 가다 동네 어른들이 묻기라도 한다면 엄마 심부름으로 담임선생님 댁에 담배 드리러 가는 중이라며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담임선생임 댁에 선물을 갖다 주는 것은 요즘 풍습으로 치면 “우리 집 아이를 잘 봐 달라” 라는 정도로 인식할 것입니다. 그 시절에는 “못난 자식을 공부 가르치느라 고생이 많으셨다”라는 순수한 감사의 뜻이라서 선물을 주는 행위 자체가 숨길 일이 아니었습니다.

선물을 받은 쪽에서는 살림살이 형편에 따라서 답례 선물로  달걀을 받았지만 답례할 형편이 되지 않으면 호박 한 덩어리를 선물해도 얼굴을 붉히지 않습니다. 그마저 살림이 어려워 답례를 하지 않아도 서운해 하지 않습니다. 부모님들께서는 “그 댁은 요즘 한참 살림이 어려울 때이다”라며 오히려 동정의 눈길을 보내셨습니다. 

요즘의 경찰서 지구대를 60년대에는 ‘지서’라고 불렀습니다. 저희 집과 가까이 지내는 경찰관의 직책은 지서의 "차석"이었습니다. 지서장이 면소재지의 유지이던 시절이라 동네 사람들은 그 집을 ‘차석댁’ 이라 불렀습니다. 훗날 알고 보니 차석은 지서장 다음의 직책이었습니다. 

차석 댁에서 미원 한 봉지를 선물하셨습니다. 요즘에는 미원이 글루타민산 나트륨(MSG)에 대한 유해성 때문에 찬밥신세로 전락했지만 그 때는 설탕과 같이 주요 선물 품목이었습니다.

처음 미원을 첨가한 된장찌개를 먹었던 때는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추석 전이라 된장찌개에 들어가는 재료가 별다른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돼지고기를 넣었거나, 닭고기를 삶은 국물처럼 맛이 있었습니다. 

그 후로 미원은 국수며, 나물무침, 김치, 오이냉국 등 모든 반찬에 반드시 뿌려야 하는 중요 식재료가 되었습니다. 

70년대에는 은행에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요즘에는 볼 수 없지만 그 시절 은행원들은 명절이 되면 양손으로 선물을 들 수가 없어서 택시를 이용해야 할 정도로 많았습니다. 고급비누나 치약세트에, 조미료세트에 넥타이 등도 선물로 들어왔습니다. 

80년대는 부피는 작지만 백화점에서 구입한 선물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지갑과 벨트 세트, 스카프, 양말세트에 굴비나 갈비 세트 등이 주요 품목이었습니다. 90년대는 버섯이며 멸치, 김, 사과나 배 등 자연식품이 인기품목이었습니다. 2천 년대 들어서 꿀이나 인삼이나 홍삼, 영지버섯 등 건강식품이 주요 선물 품목이었습니다. 

최근에는 가장 선호하는 선물이 상품권이나 현금입니다. 부모님께 선물을 할 때도 인삼이나 건강식품 같은 것보다는 봉투에 돈을 넣어서 드리거나, 상품권을 선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돈이나 상품권이 아니더라도  60년대 선물보다는 가격이나 품목 면에서 확실히 비싸거나 다양해졌습니다. 하지만 선물을 받았을 때의 감동 지수는  60년대 이전과 감히 견줄 수 없을 정도로 약해졌습니다.
그때는 인정(人情)이 수반되어 있는 선물이라서 가격이나, 품목, 귀하고 흔한 정도 등은 따지지 않았습니다. 선물을 받았다는 고마움에 집에 있는 것과 같은 과일이라도 더 귀하게 여기고 맛있게 먹었습니다. 

요즈음은 인정이 수반된 선물은 보기 힘듭니다. 예전처럼 가격이 싼 선물을 했다가는 오히려 역효과가 납니다. 받는 측에서 이런 것도 선물이냐며 화를 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선물을 줄 때는 선물을 줌으로써 나한테 돌아올 이득이 무엇인지 계산을 먼저 합니다. 따라서 선물의 보상이나 대가가 없으면 선물을 하지 않습니다. 선물을 받는 쪽도 그 이유를 알고 있는 까닭에 신중하게 실익을 계산해 봅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선물이면 선물을 되돌려 주기도 합니다. 

인디언 세계에서는 모든 선물에는 세 가지 의무가 존재한다고 합니다. 선물을 줘야 하는 의무, 주는 선물을 받아야 하는 의무, 받은 선물에 답례를 해야 하는 의무입니다. 주는 선물을 거부한다는 것은 인디언 세계에서는 전쟁을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합니다. 선물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결연이나 교제를 거부하는 것과 같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선물을 줘야 하는 의무를 지키지 않아서 승진이나 승급에서 누락이 되었다는 말을 주변에서 쉽게 들을 수가 있습니다. 주는 선물을 받지 않아서 모함을 받거나, 한직으로 물러난 고위 공무원이 매스컴을 장식하기도 합니다. 어떤 정치인은 받은 선물에 답례를 하지 않아서 정치인생에서 최대 위기를 겪고 있기도 합니다. 

명절이 다가올 때 마다 MSG 성분의 조미료를 자랑스럽게 국에 타 먹던 시절이 문득문득 그리워지는 까닭은 순수한 인정이 아련한 그리움으로 다가오기 때문일 것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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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한만수

1990년부터 전업으로 소설을 쓰고 있음. 고려대학교 문학석사. 실천문학 장편소설 “하루” 등단. 대하장편소설 “금강” 전 15권 외 150여권 출간. 시집 “백수블루스”외 5권 출간. 이무영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활” 문화예술진흥위원회 우수도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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