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건설인을 욕 뵈는 것들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원용진 교수
이명박 전 대통령에겐 유난히도 중동 이미지가 많이 따라 다녔다. 중동 남자들의 두건인 케피아도 꽤 어울렸던 것 같은 기억도 쉽게 사라지진 않는다. 실제로 그는 대통령 재임 시절 툭하면 두바이를 입에 올리며 새로운 도시 건설을 강조하기도 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자는 불도저같은 그의 건설 정신을 설명하는 데는 중동 개발이 적절한 예였을 거다. 그러다 보니 별 무리 없이 그에겐 중동 이미지가 겹쳐지고 있었고 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 겹쳐진 중동 이미지는 그가 원하던 바와는 다른 손익계산서를 선사했다. 한국은 어느 때도 중동에 대해 좋은 상상을 덧붙여 본 기억이 없다. 벼락부자이거나, 탐욕스럽거나, 호색한이거나 등등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데 익숙해 있다. 그들 가운데 유능한 과학자가 있다거나 평화운동가가 존재한다는 사실, 세계에서 인정하는 인문학자가 있다는 현실은 좀체 알고 있지 못하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에 겹쳐진 중동 이미지는 그에 가해질 부정적 이미지의 은유라 할 수 있다. 아직도 ‘삽질 산업’을 강조하는 등 시대에 뒤떨어졌으면서도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억센 정치인으로 묘사하기 위해 중동 이미지를 쉽게 결합했던 셈이다.
중동과 건설업, 그리고 그에 참여한 건설인의 연결 고리 그리고 부정적 뉘앙스는 참으로 긴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과거 이야기쯤이려니 생각할 때면 어김없이 우리 앞에 그 연결고리가 불쑥 등장한다. MBC 드라마 ‘죽어야 사는 남자’는 중동에서 벼락출세한 건설 노동자의 인생을 다룬다. 드라마 설정에 따르면 주인공은 1979년에 중동으로 간 건설 노동자 출신이다. 중동 국가의 정변에 휘말렸지만 개국공신이 되고 백작 작위까지 받게 된다. 벼락 출세를 해 한국으로 돌아와 만수르 아빠로 돈을 펑펑 쓰며 ‘헬조선’의 여건들을 단번에 해결해낸다. 벼락출세, 갑부, 절제 없는 소비 등 판타지를 드라마는 중동에 걸어 펴낸다. 2017년 한국의 거대 지상파 방송이 중동과 건설, 그리고 벼락 출세 간 끈질긴 연결 고리를 인기 장르인 드라마를 통해 다시 들고 나섰다.
예상했겠지만 ‘죽어야 사는 남자’는 중동, 건설업, 출세를 진지하게 다루진 않는다. 우스갯거리로 돌릴 뿐이다. 그런 점에서 중동 문화에 대해서도 건설인에 대해서도 공격적이다. 드라마 안 중동과 건설인의 만남은 겹부정이 되어 나타난다. ‘죽어야 사는 남자’는 그 당황스러움에도 불구하고 10% 넘는 시청률을 올렸다. 건설과 중동, 그리고 터무니없는 판타지에 시청자들은 어느 정도 동의를 한다는 말이겠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이미지는 늘 현실 세계로 되돌아온다. 건설업이 중동과 연루되고 중동의 부정적 이미지와 함께하면서 건설업, 건설인은 만수르, 벼락부자, 한탕주의, 저돌적, 삽질 등으로 연쇄한다. 드라마에서 현실로, 또 현실에서 드라마로 서로 삼투하고 있다.
텔레비전 드라마에 등장한 건설인을 더 멋지게 꾸며낸다고 영리한 대비책일 리가 없다. 그런 건설인의 모습에 시청자가 쉽게 동의하지 않을 터이니 통할 리도 없다. 건설인에 분칠을 한다고 해서 갑자기 건설업이 4차산업 혁명의 리더가 되는 일이 일어날 리 만무하다. 오히려 무미건조한 직업적 설명이 더 긴요한 때다. 중동에 건설인으로 진출했던 역사적 사실은 직업인으로서 당연한 일이었으므로 간 것일 뿐 다른 의미를 부여할 이유는 없다. 거기다 애국이니 외화벌이니 하는 의미를 담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자신을 애국과 성공의 이미지로 포장하려 했고, 아직도 그 주변의 사람들은 헬조선이라며 불평하는 젊은이들에게 중동으로 눈을 돌리지 않느냐고 등을 떠밀기도 한다. 그런 식의 사유는 아직도 중동을 돈을 더 훑어낼 수 있는 곳으로 대상화시킬 뿐이다. 그리고 ‘국뽕’으로 직업을 포장하는 부정적 결과를 낳게 된다. 건설 일은 정당하게 대접받아야 하는 산업의 한 부분이고, 건설인은 건설을 생활의 방편으로 선택한 직업인임을 밝히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 제발 거기다 애국이나 사막의 전사니, 외화벌이의 투사인 것처럼 엉터리 포장을 그만두자.
오랫동안 건설을 포장해낸 은유들이 긴긴 세월을 돌아 건설업과 건설인들을 역습하고 있다. 건설업을 일상으로 되돌리는 노력이 시급하다. 길이 필요한 곳에 길을 닦고 집이 필요한 곳에 살림살이에 적합한 공간을 지어내는 일이 건설이다. 건설인은 그런 일을 직업의 긍지로 해내는 사람이고. 건설은 곧 생활의 일부분이고 평범한 일상임을 인식하게 하는 그런 일을 더 많이 벌여야 한다. 그 일환으로 혹 시간 나면 드라마 제작사에 제발 남의 직업이나 산업에 구정물 튀기지 말라고 욕지기라도 한 번 할 일이다.
yongjin@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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