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현장의 자살과 부실시공의 불씨
이창환 부동산부 부동산팀장
얼마 전 취재원으로부터 제보를 받았다. 서울의 한 공사 현장에서 현장소장이 자살했다는 내용이었다. 취재원에 따르면 고인이 회사로부터 준공 일정을 맞추라는 압박과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했다.
자세한 내용을 듣기 위해 고인의 빈소를 찾아갔다. 숨진 이모(49)씨의 남동생과 평소 고인과 친분이 있는 동료 직원들이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숨진 이씨의 남동생과 동료들은 현장 총책임자였던 고인이 준공 일정을 맞추기 위해 받은 스트레스가 생각보다 심했다고 주장했다. 공기 부진의 책임을 지고 현장소장직에서 물러났지만 공사 마무리 때문에 숨지기 직전까지 그는 현장에서 근무를 계속했다고 했다.
회사 측은 평소 이 소장이 우울증을 앓았고 이 때문에 약도 복용했다며 업무 압박 때문이라는 주장에 반박했다. 고인의 남동생은 조카 둘이 아빠가 심장마비로 죽은 줄 안다며 고인의 죽음이 크게 알려지길 바라지 않았다. 이 소장의 죽음은 이렇게 조용히 묻혔다.
빈소에 모였던 이 소장의 친구들은 그의 죽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건설업계에 몸담고 있는 자신들도 여러차례 자살 충동을 느꼈다고 했다. 열악한 건설현장 분위기와 공기 압박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하소연했다.
건설 현장에서 발생하는 죽음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 7월에도 서울 모 대학 기숙사 신축 공사현장을 담당한 김모(53) 소장이 자살했다. 김 소장의 동료들은 그가 2월로 예정된 완공을 맞추지 못한 상황에서 8월 완공도 어려워지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주장했다.
건설업계 전반에 오랫동안 독버섯처럼 퍼져 있는 부조리는 좀처럼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우리 사회의 고질병 중 하나다.
발주처에서 비롯돼 원청과 하청으로 이어지는 저가 발주와 저임금, 부실공사의 악순환으로 현장 노동자들은 열악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준공 일정을 맞추라는 공기 압박은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기업은 물론 관련 행정기관, 사법기관 등 어느 곳도 해결책을 찾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건설근로자공제회가 발표한 지난해 ‘건설근로자 종합생활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현재 삶에 만족하는 건설근로자는 10명 중 1명에 불과했다. 일은 고되고 임금 체납과 사망산재 비율도 높다. ‘노가다’라는 인식 때문에 20대들은 건설현장을 아예 외면하고 있다.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건설 노동자가 짓는 전국의 아파트와 각종 생활시설은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몫이다. 건설현장이 변하지 않고서는 부실시공의 불씨는 언제나 현장 주변에 남아 있다고 봐야 한다. 무조건 저가 하도급이 판치는 건설현장 구조를 개선하고 건설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는 일이 출발점이 돼야 한다.
조선비즈
원문보기: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8/30/2017083002573.html#csidx64165143f309ff0aa154aaeb4d2c6d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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