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動餘談)] 가지 않은 길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한참을 서서 낮은 수풀로 꺾여 내려가는 한쪽 길을 멀리 끝까지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똑같이 아름답고,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 생각했지요.'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은 이렇게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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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기업 최초의 종업원지주회사가 탄생을 앞두고 있다. 재벌 대기업 계열사에 속해 나름대로 업계에서 수위를 다투는 중견기업 K사. 최대주주인 모기업은 경영이 어려워지자 K사 매각에 나섰고, 악전고투 끝에 임직원 920명의 뜻을 모아 설립한 우리사주조합이 현금성 자산만 1조5000억원에 달하는 건설사를 제치고 우선인수협상대상자에 올랐다. 


공기업으로 출발해 이름만 대면 알 정도의 그룹사에 소속될 때까지만 해도 임직원들의 꿈은 컸다. 업계 수위, 1인당 수주액 1위를 기록할 정도로 경험 많고 유능한 인력들이 포진해 자부심도 컸다. 업계 1위는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경영위기에 봉착한 모기업은 K사의 자산을 이용해 연명하기 시작했다. 임직원 수를 줄이고 월급을 삭감해 만든 이익은 오너와 모기업 배당으로 속속 빠져나갔고, 과거의 경쟁력을 잃어가는 듯했다. 결국 모기업은 K사 매각 결정을 내렸고 임직원들은 고민에 빠졌다. 무기력하게 주인(최대주주)이 바뀌는 과정을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건지. 


치열한 토론 끝에 임직원들은 험로(險路)를 택했다. 주인이 바뀐 수많은 기업이 자본의 논리에 껍데기로 전락하는 것을 보면서 스스로 회사를 인수하기로 했다. 수많은 최고경영자(CEO)들이 입버릇처럼 던지는 '주인의식'이 아니라 진짜 주인이 되기로 했다. 우리사주조합원 920명이 5000만원씩 개인 연봉을 털어 460억원을 마련하고, 회사 주식을 담보로 약 300억원을 증권사에서 조달했다.


"아으…이제 시작입니다." 우선인수협상대상자로 우리사주조합이 선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조합장에게 건넨 축하메시지에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걱정과 설렘이 섞인 대답에 전율이 전해졌다. 그들은 이제 스스로 해결해가야 할 수많은 숙제를 안고 '오너'라고 불렸던 주인이 없는, 녹록지 않은 길 위에 섰다.  


프로스트의 시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 나는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무모한듯한 도전이 때로는 새로운 이정표가 되기도 한다.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D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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