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경영인은 '가짜 전문가'를 어떻게 구별해야 하는가?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


  구멍가게는 얼마든지 홀로 운영할 수 있다. 하지만 기업이 커지다보면 오너경영인 혼자서 회사의 모든 일을 감당하기는 어렵다. 잠깐만 생각해봐도 구매, 조달, 입찰, 수주, 시공, 대금수금, 현장관리, 인력관리 등 다양한 업무분야가 떠오른다. 일이 늘어나면 자연스레 직원을 뽑으며 회사규모도 커진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


높은 전문성이 요구되지만 한시적인 사안 또는 그 전문성 때문에 필요하지만 우리 직원으로 상시고용하기에는 인건비부담이 너무 큰 업무 등은 외주를 주거나 전문계약직으로 채용한다. 크게는 대기업의 전문경영인도 전문계약직이다. 이보다도 단발적인 사안이라면 전문가의 자문을 구한다. 많은 기업이 이렇게 운영된다.

 

우리 사회에는 분명 유능하고 똑똑한 인재들도 많고, 직접 겪어본 사람들이 역시 전문가는 다르다고 감탄하는 경우를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스스로 모든 것을 안다고 떠드는 건 자만이라는 것을 아는 머리가 희끗한 경영인이 본인보다 훨씬 어리더라도 필요한 분야의 전문가를 찾아 겸손하게 조언을 구하는 것은 오히려 현인의 자세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경영자의 귀에는 가끔씩 이상한 얘기들도 들려온다. 전문가의 말을 믿고 투자했다가 실패했다거나, 명문대와 대기업 출신이라서 채용했더니 막상 기대했던 역할을 못한다는 것이 그 흔한 예이다. 이런 일들이 뉴스에 나오는 거짓경력 등으로 포장한 사기꾼에 의해 벌어졌다면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증빙된 학력과 경력 등 외견상으로는 흠잡을데 없는 인력들도 가짜 전문가, 속칭 사짜라는 평을 듣는 사례는 어찌된 일일까? 만약 기업의 경영자라면 진짜 전문가와 가짜 전문가를 어떻게 구별해야 할까?

 

이를 살펴보려면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사람들이 흔히 갖는 오해 중의 하나가 학계와 산업계, 또는 연구계통은 서로 다르다는 인식인데 적어도 가짜 전문가에 한해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굳이 구분할 필요도 없을만큼 분야에 상관없이 동일한 과정을 거쳐 양산된다. 만약 기업을 거친 가짜 전문가를 들어 설명한다면 다음 4가지 측면에서 이들이 등장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학교 성적이 갖는 판별력의 한계

우선 학교성적은 우수인력을 판별하는 하나의 지표이지만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가령 하루를 공부해서 90점을 맞은 학생과 일주일을 공부해서 96점을 맞은 학생이 있다고 하자. 전자보다 후자의 점수가 우수하고 높은 점수는 분명 당사자의 학업능력과 성실성을 반영한다.

 

하지만 시험점수만으로는 개인차가 존재하는 순발력과 창의력, 집중력이나 업무추진력같은 능력을 판단할 수 없다. 이런 측면에서는 단 하루만에 90점이라는 점수를 얻어낸 전자가 더 우수할 수도 있다. 흔히들 학교공부와 실무는 다르다거나 학교에서의 우등생이 꼭 사회에서도 우등생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등의 세간의 말들도 이에 기인한다.

 

채용과정의 비과학성과 변별력

기업의 인력채용과정도 완벽하게 우수인력을 판별할 수는 없다.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인력선발은 과학적이거나 객관적이지 못하다. 설령 서류심사가 아무리 과학적이더라도 사람의 주관이 개입되는 면접과정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원자의 외모에 큰 비중을 두는 면접관이 너무 예쁜 지원자는 덜 똑똑할 것이라는 편견을 가졌을 수도 있다.

 

외견상으로는 강인하고 냉철하지만 실제로는 심성이 유약한 지원자도 있을 수 있다. 중소기업이라면 종전에 특정 학교 출신을 뽑았더니 의외로 업무능력이나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어 이후 그 학교출신은 배제할 수도 있다. 과거에 지원자의 외모나 언변에 혹해서 뽑았으나 금새 불만만 토로하며 퇴사해버린 선례가 있어 그 뒤로는 출중한 외모와 언변이 오히려 감점요인이라는 사례도 있음직하다.

 

사실 인적자원관리(HR)분야에서 금언처럼 통용될 수 있는 말은 과거에 성공을 이룬 인력이 추후 그런 결과를 다시 얻을 가능성이 높다는 정도이다. 하지만 신입사원의 경우에는 기존에 경험한 성공이란 것이 대부분 학업과 관련된 것이며 이마저도 100% 신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채용 후의 필터링 한계

어찌되건 세간의 좋은 기업에는 학교와 채용단계에서 고득점을 얻은 인력이 들어가고 이들은 더 좋은 대우와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부서배치와 업무배정을 바란다. 기업 내에서 선호되는 부서들의 이름에는 대개 ‘전략’, ‘국제’, ‘기획조정’ 같은 단어가 들어있는 경우가 많고 업무도 맥락은 비슷하다.

 

한편 부서와 업무의 성격은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업무지시서에 명시된 내용을 충실히 따르는 루틴한 성격(A)과 항상 새로운 것을 생각하고 응용해야만 하는 성격(B)이 그것이다. 전자(A)는 문제와 정답이 명확한 교과서를 습득하는 암기력과 성실함이 우선시되는 반면 후자(B)는 창의성과 순발력, 추진력과 교섭력처럼 실제 업무과정에서 두각을 보이는 요소가 필수적이다. 기업의 중요 업무는 후자(B)의 성격이며 이는 성적좋은 우등생보다 실무형 인재가 필요하다는 기업의 요구와도 맥을 같이 한다. 

 

그렇다면 만약 전자(A)에 걸맞는 인력이 후자(B)의 부서와 업무를 맡는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이것이 바로 가짜 전문가가 만들어지는 출발점이다.

 

기업에서 연차가 낮은 사원의 미숙함은 업무를 배워가는 과정에서 당연한 것으로 간주된다. 특히 기능적인 숙련도가 요구되는 경우에 그런 경향이 크다. 하지만 단순 기능이 아닌 창의력과 순발력 등이 중요시되는 업무에서는 결코 시간이 전문가를 만들어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용 후의 신입단계에서는 이에 대한 필터링이 작용하지 않는다. 미래의 가짜 전문가가 될 사원은 주위의 배려로 연차를 쌓아 상위 직급으로 올라선다.

 

이 때 가짜 전문가가 직면하는 문제는 기업전략이나 연구개발처럼 교과서같은 문제와 정답이 제공되지 않는 업무분야에서는 홀로 상황을 개선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근본적인 원인은 애초부터 가짜 전문가의 재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만약 회계부서처럼 루틴하고 명확한 업무를 맡았다면 성실함을 바탕으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좋아보이는 부서와 업무를 쫓다보니 현실은 그 반대다. 여기에 자존심이라는 날개까지 더해진다.

 

가짜 전문가의 성장

이 상황에서 가짜 전문가가 자리를 유지하는 가장 흔한 수법은 속칭 빨대꽂기 또는 숟가락 얹기이다. 어느새 이들은 자신들의 업무가 ‘관리’임을 유독 강조하며 하급자들에게 업무를 떠넘기고 아이디어를 포함한 결과물을 가로챈다. 단독업무는 본인 스스로 감당하기 어렵거나 없는 실력을 드러낼 가능성이 있으므로 결코 혼자 일하지 않는다.

 

항상 협업을 강조하고 온갖 태스크포스(TF)를 만들면서 자신이 위에 서려 한다. 물론 목적은 업무성과물을 자신의 것으로 가로채는 것이므로 결코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 문제가 발생하면 하급자 등에게 책임소재를 떠넘긴다. 사내정치와 함께 언론이나 대외타이틀같은 기타 활동에 치중한다. 

 

이러는 와중에 시간은 10년이고 20년이고 흘러간다. 대외적으로는 오랜 업무경력을 가진 전문가로 자처한다. 공기업처럼 오너가 없는 기업이라면 더욱 이들을 필터링하기가 어렵다. 

 

제3자인 기업의 경영자는 누가 알려주지 않는 이상 이런 가짜 전문가의 내막을 알기 어렵다. 왜냐하면 가짜 전문가도 학력과 경력 등 외형적으로는 멀쩡한 이력서를 내세우고 때로는 언론이 그 외형을 전문가로 포장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지간한 직장을 다녀본 사람이라면 이미 한번쯤은 가짜 전문가의 유형을 무능한 상사 등으로 경험했을 것이다. 경영자 역시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분야를 막론하고 가짜 전문가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만약 경영자가 지금껏 겪어온 분야의 경험만으로도 가짜 전문가의 출현배경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할 때 그릇된 후광에 현혹되지 않고 옥석을 가려낼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전문가를 특별한 종류의 인간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경영자는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 전문가의 의견을 참고할 뿐이며, 다만 잘못된 판단을 내리지 않기 위해서 가짜 전문가를 판별할 필요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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