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 사고 뺑소니 경험담 [박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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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 사고 뺑소니 경험담

2017.08.22

열흘 전이었습니다. 회사에 출근해서 지하에 주차를 하고 나오면서 자동차의 범퍼 앞에 출입증을 떨어뜨렸습니다. 출입증을 주우면서 범퍼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는데 범퍼 오른쪽에 꽤 심하게 스친 흔적과 함께 반사판이 떨어져 있었고, 라이트 워셔액이 나오는 뚜껑도 어디론가 떨어져 나가고 없었습니다. ‘아, 주차장 사고 뺑소니를 당했구나!’ 순간 허탈한 마음이 들면서 ‘어제 마트에 갔었는데 거기서 사고가 났었나 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블랙박스를 확인해 보니 앞에 주차한 차가 나가면서 부딪힌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다만, 블랙박스의 전원이 상시 연결된 것이 아니라서 앞 차가 나가는 모습은 안타깝게도 볼 수 없었습니다. 

마트에 전화를 했습니다. 필자가 주차했던 구역에 CCTV가 있는지를 물어봤습니다. 다행히 잘 보이는 위치에 CCTV가 있다고 합니다. “제가 CCTV를 볼 수 있을까요?”라고 묻자, 단호하게 “안 됩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이유를 묻자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차량이 녹화된 장면을 제3자에게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제3자가 아니라 잠재적 피해자인데요?”라고 묻자 “그래도 안됩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지요?”라고 묻자, “마트에 오셔서 의뢰서에 직접 서명을 하면, 직원이 CCTV를 대신 확인하고 사고 장면이 확인되면 연락을 하겠습니다. 그럼 그때 경찰서에 피해 차주께서 신고를 하시면 경찰이 가해 차주의 신원을 파악한 후, 가해 차주를 소환해 사고 영상을 보여준 후, 가해 차주가 시인을 하면 그때 보상을 받으면 됩니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뭐가 그리 복잡하지? 바빠 죽겠는데 언제 마트에 다시 간담? 그리고 경찰서도 가야 하면? 반나절로는 어림도 없겠네? 사고처리를 위해 휴가를 써야 할 판이잖아?’ 속으로 구시렁구시렁하면서, 거리가 멀어서 평소 자주 가지 않던 마트로 향했습니다. 의뢰서에 사인을 하면서 혹시나 마트 직원이 공연한 수고를 하면 안될 것 같아서 주차장에 들어올 때 차의 상태를 먼저 살펴보라고 얘기했습니다. 만약에 들어올 때, 범퍼에 가로로 길게 붙어있는 반사판이 떨어져 있으면 이곳에서 사고가 난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 시간쯤 지나자 전화가 왔습니다. “들어오실 때부터 범퍼에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순간 머리가 하얘졌습니다. ‘그럼 도대체 어디서 저렇게 긁힌 거지? 저렇게 긁혔는데도 전혀 모르고 며칠을 지냈다는 건데, 자기 차가 깨지고 떨어졌는데도 어떻게 모를 수 있지? 그건 그렇고 공연히 엉뚱한 사람을 의심했네, 도대체 어디서 그런 걸까? 에이, 이렇게 된 거 반사판이랑 워셔노즐 뚜껑만이라도 사서 직접 붙여야겠다’라고 마음먹고 빨리 잊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어디서 그랬는지 알면 좋겠지만 범인을 잡는다는 보장도 없이 범퍼 하나 때문에 시간과 공력을 들이기엔 마음의 여유도 시간의 여유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모르고 지나칠 땐 아무렇지 않았는데 알고 난 후부터는 차를 탈 때마다 사고 부위가 도드라지게 보여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남의 차를 저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그냥 도망갔을까?’, ‘에효~, 언제 그랬는지도 모르는 내가 죄인이지 뭐’, ‘이대로 운행하기엔 차 상태가 말이 아닌데…’ 등등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맴도는 것이었습니다. ‘언제 그랬는지만 확인하자’는 생각으로 아파트 CCTV를 체크해 봤습니다. 그런데 CCTV화면의 해상도가 너무 떨어져서 제대로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CCTV가 있긴 하나 무용지물이었습니다. 이왕 시작한거, 멈추지 않고 회사의 CCTV를 확인해 봤습니다. 번호판 인식 시스템이 주차장에 설치되어 있어서 필자의 차량번호를 입력하니, 날짜 별로 화면이 모니터에 나왔습니다. 8월 4일 금요일에 출근할 때는 보였던 범퍼의 반사판이 8월 7일 월요일 출근길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범위가 좁혀졌습니다. 8월 5일, 또는 6일에 사고가 있었던 것입니다. 8월 5일 저녁에는 영화를 보았고 8월 6일에는 쇼핑몰을 다녀왔습니다. 먼저 쇼핑몰에 전화를 했습니다. 이번에는 무턱대고 CCTV를 보여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혹시 8월 6일 CCTV 확인이 가능한가요?” 

“네, 가능합니다. 무슨 일이신지요?”

“여차여차해서요… 그날 제 차가 입차할 때 범퍼 상태를 확인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30분 만에 쇼핑몰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들어올 때부터 범퍼에 손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매우 빠른 확인전화에 필자는 꽤 놀랐습니다. 하루에도 몇 만 대의 차량이 들어오는 쇼핑몰에서 차량번호만 대면 바로 확인이 가능하다는 것에 놀랐고, 그 넓은 주차장에 CCTV 사각지대가 없다는 것에 다시 한번 놀랐습니다.

이제 범위는 영화를 봤던 곳의 주차장으로 매우 좁혀졌습니다. 주차담당 사무실로 전화를 해서 앞서 했던 것과 같은 요령으로 확인을 요청했습니다. 한 시간쯤 지나자 담당자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선생님, 확인됐습니다. 레인지로버 차량이 선생님 차와 접촉하고 그냥 나갔습니다. 밤 10시 17분에 사고가 있었고요. 영상은 따로 저장해 둘 테니까, 관할 경찰서에 가셔서 사고 신고를 하세요.”

다음 날이 마침 휴일이라서 경찰서에 가서 신고를 하고, 담당 경찰관과 함께 주차장 관리실을 찾아갔습니다. 관리실 직원이 기다렸다는 듯이 화면을 보여주었습니다. “잘 보세요. 저 찹니다. 나오다가 크게 흔들리죠? 번호판 확인시켜 드릴게요.” 필자는 ‘아, 이제 찾았구나’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다시 경찰서로 돌아와서 가해차량의 차주를 확인하는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휴일이라서 확인이 쉽지 않았습니다. “제가 오늘 근무를 하면 내일은 쉬거든요. 모레 차주에게 연락해서 영상을 확인시킨 후 가해사실을 인정하면 보험처리를 하라고 하겠습니다.” 

8월 5일에 사고가 나고 가해자에게서 연락을 받은 날짜는 8월 19일이었습니다. 사고를 인지한 후 가해자를 찾는 데까지는 열흘이 걸렸습니다. 사고 직후 앞 유리에 ‘죄송합니다. 본의 아니게 사고를 냈습니다. 연락처 OOO-OOOO-OOO’ 이렇게 메모 한 장 올려놓았으면 네 분의 주차관리실 직원, 경찰관 한 분, 그리고 필자의 소중한 시간과 공력 낭비는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더욱 어이없는 일은 사설 주차장의 물피 도주의 경우 현행법으로 형사처벌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가해차량의 운전자는 한 푼의 벌금도 일점의 벌점도 부과받지 않는다는 겁니다. 법이란 것을 알면 알수록 사람에게 뻔뻔하게 사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 같아서 사고가 해결된 지금도 마음속에 찝찝함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뻔뻔함에 대항하기라도 하듯 공공장소의 CCTV가 매우 촘촘하게 설치되어 있으며 물피도주하는 비양심적인 사람을 매우 빨리 찾아준다는 것은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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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상도

SBS 선임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현재 SBS 12뉴스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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