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과 겨울의 절기 : 입추에서 대한까지 [방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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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과 겨울의 절기 : 입추에서 대한까지

2017.08.10

새봄으로 열린 입춘(立春)을 맞이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여름의 마지막 절기 대서(大暑; 7월 23일)가 지나가고, 아직 삼복중으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기는 하지만 사흘 전에 가을의 문턱인 입추(立秋; 8월 7일)도 지나 보냈습니다. 이번 칼럼에는 입춘을 앞두고 쓴 ‘봄과 여름의 절기 : 입춘에서 대서까지’(2월 20일 게재)에 이어, 우리가 앞으로 맞이할 가을과 겨울 절기들의 의미를 담아봅니다. 

“봄은 사람의 기분을 방탕에 흐르게 하고, 여름은 사람의 활동을 게으르게 하고, 겨울은 사람의 마음을 음침하게 하건마는, 가을은 사람의 생각을 깨끗하게 한다.”는 소설가 정비석의 수필 '들국화'에 나오는 4계절의 속성에서처럼 가을은 날씨가 매우 좋아 몸과 마음이 맑아지는 계절입니다. 

“하늘은 높아지고 말이 살찐다.”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을 여는 입추()는 올여름처럼 폭염이 기승을 부리기도 하지만 밤에는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절기입니다. 이 무렵에는 농촌이 한가해지기 시작하는 철이라 바쁜 일에서 벗어나 숨을 좀 돌리며 어정대며 지낸다는 ‘어정 7월’ 그리고 시원한 곳과 그늘을 찾아 건들거리며 지낸다는 ‘건들 8월’이라는 말이 전해지고 있는데, 이는 바쁜 농사일에서 조금 한가해지기 시작하는 시간을 헛되이 쓰지 말라는 경구로 받아들여집니다. 입추는 겨울 준비로 배추와 무를 심어 김장에 대비하는 철이기도 합니다. 

입추에 이어지는 처서(處暑; 8월 23일)는 더위가 그친다는 의미로, 따가운 햇볕이 누그러져서 풀이 더 자라지 못하기 때문에 논두렁이나 산소의 풀을 베어내는 절기입니다. 날씨가 선선해져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말도 있습니다. 처서 다음 절기인 백로(白露; 9월 7일)는 ‘하얀(白) 이슬(露)’을 뜻하는 말로, 밤에 기온이 내려가고 풀잎에 이슬이 맺히는 절기입니다. 예전에는 이 무렵에 고된 여름 농사를 마치고 추수 때까지 잠시 쉴 수 있어, 아낙네들이 친정으로 부모님을 뵈러 가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가을의 가운데 절기인 추분(秋分; 9월 23일)은 하지 이후로 낮이 매일 조금씩 짧아져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지는 날입니다. 이 무렵에는 논밭의 곡식을 거두어들이고, 목화와 고추를 따서 말리는 등 잡다한 가을걷이가 바삐 진행됩니다. “추분이 지나면 우렛소리 멈추고 벌레가 숨는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는데, ‘우렛소리’는 동물의 수컷이 암컷을 부르는 소리로 추분이 지나면 벌레들이 월동할 곳으로 숨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추분 다음 절기로 ‘차가운(寒) 이슬(露)’의 의미를 담은 한로(寒露)는 기온이 더 내려가기 전에 끝내야 하는 추수 때문에 바쁜 시기지만, 단풍이 물든 가을 풍경을 즐기며 국화잎을 따서 국화전과 국화 술을 만들어 먹는 풍습도 있었습니다. 가을의 마지막 절기인 상강(霜降; 10월 23일)은 쾌청한 날씨가 계속되지만 밤에는 기온이 많이 내려가 ‘서리(霜)가 내리기(降)’ 시작하는 절기입니다. 상강이 지나 입동 전에 벌레들은 겨울잠에 들어갑니다. 

봄부터 가을까지가 일로 바쁜 계절이라면 겨울은 쉬면서 다음해를 준비하는 계절입니다. 겨울로 접어드는 첫 절기는 입동(立冬; 11월 7일)입니다. “입동에 날씨가 따듯하지 않으면 그 해 겨울바람이 독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입동이 지나면 배추가 얼어붙을 수 있고, 입동을 전후해 김치를 담가야 제맛이 나기 때문에 “입동이 지나면 김장도 해야 한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 무렵에 여자들이 냇가에서 김장 배추와 무를 씻는 모습이 장관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입동에 이어지는 소설(小雪; 11월 22일)에는 살얼음과 함께 땅이 얼기 시작하며, 바람이 심하게 불고 날씨가 추워져 겨울 기분이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소설 추위를 겪어야 보리농사가 풍년이 든다는 “소설 추위는 빚을 내서라도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대설(大雪; 12월 7일)은 눈이 많이 내리는 절기를 의미하지만, 실제로는 눈이 많이 오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눈은 보리의 이불이다.”라는 말이 전해져오고 있는데, 이는 대설에 눈이 많이 내려 보리를 덮어주면 보온이 되어 추위로 인한 피해가 줄어들어 보리 풍년이 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동지(冬至; 12월 22)는 연중 밤이 가장 긴 날로 다음 날부터 낮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기 때문에 고대 사람들은 이날을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되살아나는 날로 여겨 태양신에게 제사를 올렸다고 합니다. 동짓날은 ‘작은 설’이라고도 부르며,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겨울의 막바지 절기는 작은 추위를 의미하는 소한(小寒; 1월 6일)과 ‘큰 추위’를 뜻하는 대한(大寒; 1월 20일)입니다. 중국에서는 겨울 추위가 입동에서 시작해 소한으로 갈수록 추워져 대한에 최고에 이른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대한보다 소한 때가 더 추운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래서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 갔다가 얼어 죽었다.”는 속담과 함께 “춥지 않은 소한 없고, 포근하지 않은 대한 없다.”, “소한의 얼음 대한에 녹는다.”는 말들도 전해져오고 있습니다. 

한자로 표기하는 절기에 대한 관심이 예전에 비해 많이 낮아져 있지만, 우리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는 절기는 세월의 흐름을 타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다가옵니다. 새로이 열릴 무술(戊戌) 해의 입춘(2018년 2월 4일)을 떠올리며, 입추로 열린 가을과 대한으로 마감하는 겨울의 절기들에 꿈과 희망을 가득 담아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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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방재욱

양정고. 서울대 생물교육과 졸. 한국생물과학협회, 한국유전학회, 한국약용작물학회 회장 역임. 현재 충남대학교 명예교수, 한국과총 대전지역연합회 부회장. 대표 저서 : 수필집 ‘나와 그 사람 이야기’, ‘생명너머 삶의 이야기’, ‘생명의 이해’ 등. bangjw@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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