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의 아킬레스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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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의 아킬레스

2017.07.31

문재인 대통령의 후보 당시 공약들이 새 정부 정책으로 구체화하면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이해관계를 놓고 논쟁이 크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동안 정권이 바뀌어도 큰 논쟁이 없었던 분야가 에너지 정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정부에서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탈(脫)원전 정책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월 19일 고리 1호기 영구폐로 기념식에 직접 참석하여 작심한 듯 ‘탈핵시대’를 선언했습니다. 탈원전 정책은 원자력 산업계와 학계의 반발과 전력요금 상승 우려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러나 그 파장은 훨씬 크게 일어날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마음속에 탈원전 구상을 품게 된 동기는 무엇일까요.’ 내 주위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문 대통령이 시민운동권 사람들에 둘러싸여 정책을 결정하고 있으며 탈원전 정책도 그렇게 나왔다고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신문은 문 대통령이 가상(假想)의 원전 사고 이야기를 다룬 영화 ‘판도라’를 보고 탈원전을 생각했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국가의 운영을 책임지게 될 대통령 후보가 단지 픽션 영화 하나에 그런 마음을 가졌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재생에너지, 기후변화와 환경보전, 탈원전 주장은 우리 사회의 주류가 아니었습니다. 경제성장과 효율성 논리에 밀리는 비주류였습니다. 내부 사정은 모르겠으나 문재인 정부의 이너서클에는 이런 비주류가 어느 정파보다 많이 포진해 있고, 대통령도 그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탈핵 선언 연설을 보면 탈핵 구상의 기저에 ‘안전’ 의식이 강하게 깔려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는 한국인들 특히 원전이 분포한 경상도 지역 주민들의 가슴 속에 트라우마를 남겼던 게 사실입니다. 공교롭게도 근년에 경주 일대에 잦은 지진활동이 생기며 더욱 원전의 안전에 대한 불안감을 고조시켰습니다. 부산에서 학교를 다니고 변호사 활동과 국회 의정활동을 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이런 지역정서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2014년 5월 부산 지역 언론사와 대학이 공동으로 주민 1,000명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했던 게 내 기억에 있습니다. 그때 부산 지역 사람들이 원전에 대해 민감할 것이라고 짐작했지만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서울 사람들보다는 원전의 위험을 훨씬 더 심각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여론조사 응답자의 56.4%가 고리 원전을 폐쇄할 때 발생하는 비용을 환경세 방식으로 부담하겠다고 응답했습니다. 구체적인 부담액을 질문한 결과 월 평균 7,727원을 부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조사에서 정부의 원전 확대정책에 반대한다는 응답이 45.2%, 찬성한다는 응답이 25.9%였습니다.
이 조사가 실시될 때는 후쿠시마의 충격이 남아 있었고 양산단층대 지진 가능성에 대한 보도가 자주 등장하는가 하면 세월호가 침몰하면서 국민이 안전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일 때였습니다. 원전 밀집도가 세계 최고인 부산, 울산, 경주를 비롯한 경상도 동부 해안 지역 주민들의 공포감이 매우 컸던 게 분명합니다. 이런 불안감을 문 대통령은 공감했음직도 합니다.

탈핵정책과 관련하여 지금 논쟁이 불붙고 있는 이슈는 신고리원전 5호기와 6호기의 공사 중단 사안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정률 28%인 두 개의 원자로 건설을 완성할지 중단할지를 놓고 공론화를 거쳐 결정하도록 하겠다고 천명했습니다. 이에 따라 한수원 이사회는 공론화가 끝날 때까지 공사를 잠정 중단하기로 결정했고, 정부는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하였습니다. 대통령이 밝힌 것을 보면, 공론화위원회가 여론조사, 시민배심원단 선발 및 숙의 등 공론 과정을 관리하고 최종적으로 시민배심원단이 결론을 내리면 정부는 이에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이제 공론화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공론화위원회와 시민배심원단의 법적 지위 문제가 제기되면서 논쟁은 계속 갈래를 치고 있습니다. 탈원전 문제는 정파 대결과 이념 논쟁으로 번질 것 같습니다. 원자력 산업계와 학계 등 소위 원전 기득권역에 속하는 사람들은 보수 언론의 지원 아래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다만 권력이 탈원전 편에 있는 것을 의식하여 목소리를 자제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에너지 정책을 둘러싸고 인류가 안은 문제는 매우 복합적입니다. 원자력 에너지 문제에서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점은 원자력 에너지는 이념이나 선악(善惡)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라는 점입니다.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는 지구온난화의 원인입니다. 원자력은 확률은 낮지만 방사능누출사고가 일어나면 후쿠시마에서 보았듯이 그 피해와 파장이 무섭습니다. 게다가 사용 후 핵연료를 영구 관리하는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도 않고 있습니다. 태양에너지와 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아직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키기엔 획기적인 기술발전과 막대한 투자가 요구됩니다. 

따라서 에너지원 혼합(MIX)이 대단히 중요한 선택 과제입니다. 환경, 안전, 경제성, 대체성, 지속성, 국민 정서까지 반영된 종합적인 선택입니다. 공론화위원회의 공론 수렴 과정은 단순히 원자로 2기 공사 재개 여부를 넘어 한국 에너지 수급 문제의 본질 문제를 국민과 함께 해결하는 기회로 운용되었으면 합니다. 
탈원전은 혁명적인 정책 변화입니다. 자칫 신고리 5, 6호기가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의 아킬레스건이 될지도 모릅니다. 좀 더 정교하고 치밀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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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수종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 생활. 환경과 지방 등에 대한 글을 즐겨 씀.
저서로 '0.6도' '다음의 도전적인 실험' 등 3권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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