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미시간대 교수가 본 "원전이 계속 필요한 4가지 이유"
원전이 계속 필요한 4가지 이유
글 | 이재승 미국 미시간대 핵공학 및 방사능학과 교수·미국 원자력학회 석학회원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탈원전(脫原電)선언 전후로 한국 원자력산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1959년 서울대 원자핵공학과에 입학한 이후 평생을 원자력 연구에 힘쓰고 있는 학자의 입장에서 21세기 한국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원자력 에너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를 4가지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source Greentech Media
항공기 충돌에도 안전
첫째, 원전의 안전성이다.
원자력발전소 격납건물 내의 모든 안전시설 및 기기는 다중 안전 원칙에 기반을 두고 설계되며, 설계된 대로 건설되어 운영되고 있다. 다중 안전 원칙은 원자로 노심(爐心)의 손상을 방지하고 격납용기를 보호하여 사고 영향을 감소시킨다. 나아가 방사능 물질이 외부로 누출되는 것을 차단하여 주민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함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구현된 다중 안전성과 더불어 국내의 모든 원전은 자동차의 에어백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고유 안전성을 확보하고 있다. 1986년 발생한 최악의 원전 사고였던 체르노빌(Chernobyl) 원전에서는 이러한 고유 안전성이 없어서 사고가 확대되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원전에서는 고유 안전성에 의해 사고 상황에서 냉각수의 온도가 상승하면 자동적으로 핵연쇄반응 속도가 줄어들어 원자로 출력이 감소된다.
하지만 이러한 다중 및 고유 안전기능에도 불구하고 원전에서는 원자로 노심이 녹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운전원의 실수로 인한 1979년 미국의 스리마일(Three Mile Island) 사고와 고의적으로 안전수칙을 위반해서 발생한 체르노빌 사고에서는 핵연료가 손상되고 노심이 녹는 중대사고가 발생하였다. 또 2011년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 사고는 천 년에 한 번 발생 가능한 대형 쓰나미에 대비한 안전방벽을 준비하지 못한 탓으로 발생한 것이다. 쓰나미 범람 40분 전에 발생한 지진으로는 원전에 별 피해가 없었으나 쓰나미 범람에 의한 비상발전기 침수로 발전소 전력이 장시간 상실된 탓에 원자로에 냉각수를 정상적으로 공급하지 못한 결과 다량의 방사능 물질이 대기로 방출되는 중대사고가 발생하였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국내 원전에서는 장시간 전원상실에 대비해 이동형 발전차 확보, 방수문 설치 등 자연재해 대처 설비를 대폭 보강하여 운영하고 있다.
2016년 9월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은 리히터 규모 5.8이었는데, 국내 가동 중인 원전의 지진 설계기준은 6.5다. 이를 구조물 진동폭으로 환산해 보면 최소한 5배의 안전 여유를 가지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런데 실제로는 원전에서 사용된 자재가 설계치 강도보다 약하다는 보수적인 가정하에 안전성 분석을 하므로 실제 여유는 더 크게 된다. 또 최근 일시 건설 중단이 결정된 신고리 5·6호기에는 대형 민간 항공기가 충돌해도 격납건물 내 안전시설이 잘 보존되도록 구조물의 콘크리트 두께를 증가시켰다.
원자력 발전 50년을 돌이켜보면 앞서 언급한 3번의 중대사고가 있었고 그 교훈을 바탕으로 미래에 다른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의 대비를 다하고 있다. 원자력의 안전성을 말할 때, 사고 발생으로 인한 인명피해 및 재산손실과 함께 동시 사고 발생 확률도 같이 고려한다. 한편 원전 사고가 다른 사고에 비해 인명 손실이 현저하게 적은 사실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예로 들면 지난 한 해 국내에서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약 5000명이었고 1984년 인도 보팔(Bhopal) 화학공장 사고에서는 최소한 2500명의 사망자가 있었다. 반면 1979년 스리마일 사고 때 인명피해는 없었고, 1986년 체르노빌 사고에서는 소방인원으로 투입된 군인 중 31명의 사망자만 발생했다. 2011년 후쿠시마 사고에서도 방사능 피폭에 따른 사망자는 없었고 해일에 인한 사망자가 1만7500명이었다.
독일과 같은 결정은 무모
둘째, 신재생에너지 관점이다.
재생에너지 개발도 한국의 에너지 안보를 위해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태양광 및 풍력은 특정 지역에서만 활용이 가능하고 아직도 경제성과 안정성이 원자력이나 화력에 비해 뒤처진다. 아울러 태양광발전 등에 필요한 토지 면적 등 부대 요인도 고려해야 한다. 세계 최대 태양광발전소인 미국 솔라데저트(Solar Desert)는 55만kW 출력을 내기 위해 800만개의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고 사막에 위치한 발전소라 평균 이용률은 27%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태양광발전 이용률은 그 절반인 13% 수준이다. 국내 원전 25기의 출력 2300만kW를 태양광발전으로 충당하기 위한 면적을 이를 통해 환산하면 부수시설을 제외한 패널 설치에만 4200㎢가 필요하다는 계산인데 이는 경상남도 전체 면적의 40%에 해당한다. 뿐만 아니라 태양광발전소는 밤이나 날씨가 흐린 날을 위해서 에너지 저장시설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태양광 설비에 필요한 경비의 2배 수준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에너지 자원으로 액화석유가스나 북한 경유 파이프라인을 통한 천연가스도 함께 고려되고 있는데, 가스는 석탄이나 원유보다는 공기오염도가 낮지만 여전히 많은 온실가스 를 발생시킨다. 또 국가 안위에 매우 중요한 에너지 자원을 북한 경유 파이프라인에 의존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독일의 탈(脫)원전은 석탄자원이 풍부하고, 필요 시 프랑스 원전에서 생산된 전기를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원자력을 제외하면 에너지 자원의 97%를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한국으로서는 독일과 같은 결정은 무모한 것이다.
셋째, 세계 신규 원전 건설 관점이다.
99기의 원전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원전 몇 기가 면허기간이 남았음에도 영구 정지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는 낡은 원전의 경우 발전단가가 천연가스에 비교해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반면 새로 건설되거나 가동되는 원전도 많다. 미국 와츠바(Watts Bar·경수로) 2호기가 2016년에 가동을 시작했고, 웨스팅하우스사의 AP1000형 원전 8기(미국 4기, 중국 4기) 건설이 진행되고 있다. 건설계획 지연에 따라 건설비용이 증가되었지만 중국 산멘 원전 역시 2017년 가동되리라 예측된다.
최근 미국 서던컴퍼니의 최고경영자인 토머스 패닝은 경비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AP1000 원전인 보글(Vogtle)원전에 대한 지속적인 건설 투자를 선언했는데, 이는 원전을 60년에서 80년 운전 가능한 투자로 계산한 결과이며, 이를 통해 미국 내 AP1000 및 신형 원전의 건설이 촉진될 것으로 예측된다. AP1000 원전은 발전소 전원 상실 시 별도의 외부전력 공급 없이 중력에만 의존하여 72시간 냉각수를 공급할 수 있는 피동안전 기능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형 APR+ 모델에서도 이것과 유사한 피동안전 기능이 보강되어 있어 한층 더 발전소를 안전하게 운영할 수 있도록 하였다. 원자력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중국은 현재 가동 중인 35기 외에 30기를 추가 건설하고 있고, 동남아 국가에도 원전 수출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그 외 인도 총 29기(21기 가동, 8기 건설 중), 러시아 총 44기(34기 가동, 10기 건설 중) 등 독일을 제외하고 전 세계적으로 원전 확대가 한창이다.
마지막으로 원자력산업계의 임무이다.
최근 몇 년 사이 국내 원자력산업에서 발생된 비리와 과오,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및 경주지진 등으로 인해 원자력에 대한 국민 수용성이 많이 저하되었다. 특히 고리원전의 발전소 전원상실 사건의 은폐, 케이블 시험결과 위조 및 원자력연구원의 방사능물질 불법폐기 등은 성숙해가는 한국 원자력산업계로서는 실망스러운 사건들이었다. 이런 사건들은 사회의 안전과 국민의 건강에 끼치는 실제 영향이 적었다 하더라도 원자력 안전 문화에 대한 숙지가 부족했던 결과로 판단되어야 한다. 이는 꾸준한 노력을 통해서 개선해 나가야 한다. 원전 직원, 건설업체 종사자, 연구자 및 정부 규제기관 책임자 모두가 원자력 안전 기준을 최고 수준으로 향상시키도록 노력해주기를 부탁한다.
출처 | 주간조선 24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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