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 혼술로 지새는 잔인한 5월 [신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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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 혼술로 지새는 잔인한 5월

2017.05.10

가정의 달 5월입니다. 
2017년 가정의 달은 역대 가정의 달 중에서 가장 가정의 달답지 않은 가정의 달이 아닐까 싶습니다. 존재했던 가정이 해체되고, 좀처럼 새 가정이 만들어지지도 않는 이른바 ‘혼밥, 혼술, 혼행, 혼영’의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에 ‘혼’으로 시작되는 신조어는 들불 번지듯 번지면서 이제 1인 가구는 이 시대의 키워드, 트렌드로까지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한 생명이 세상 속으로 들어와 경험하는 최초의 관계이자, 사회의 최소 단위가 붕괴된 황량한 빈터에 독거 노년, 독거 중년, 독거 청년들이 오도카니 단자(單子, Monad)로 서 있습니다. 이렇게 가다간 ‘독거 영아’까지 나올 판이라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도 사람이 독처(獨處)하는 것은 좋지 못하다 했건만 언제나 하나님을 실망시키는 인간존재답게 독신, 독처는 우리 사회의 대세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요즘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주여, 때가 왔습니다.’로 시작하는 시 <가을날> 2연을 이렇게 패러디해 보곤 합니다.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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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오래도록 홀로 남아서 
잠들지 않고, 글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그리고 나뭇잎이 떨어져 뒹굴면 
초조하게 가로수 길을 헤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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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 가정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

.

.
가족이 없는 사람은 이제 가정을 만들지 않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오래도록 홀로 남아서
잠들지 않고, 게임을 하고, 긴 먹방을 연출할 것입니다.
그리고 돈이 떨어져 빈 술병이 뒹굴면
초조하게 골목길을 헤맬 것입니다.

어떤가요? 혼자 사는 사람들을 죄다 사회 부적응자로 매도하면서 조롱하며 빈정대고 있다고요? 그냥 웃자고 해 본 소리입니다. 실은 저도 혼자 사는 처지이니 불쾌하셨더라도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길. 

제가 사는 신림동 고시촌은 저를 비롯해서 혼자 사는 사람들이 아예 대놓고 살 수 있는 곳입니다. 혼자 사는 것이 숨길 일은 아니지만 저마다 사연이 있겠거니 할 뿐, 굳이 묻지도 궁금해 하지도 않는 동네 분위기 속에 누에고치처럼, 독방 수감자처럼 각자 작은 방에서 살아갑니다. 제 방은 맨 끝 방이기 때문에 복도를 죽 지나 올 때면 굳게 닫힌 10여 개의 방문을 일제히 열어젖히고 ‘고치 속 누에들, 독방 수감자들’의 안위와 상태를 묻고 싶은 충동이 이따금 입니다. 저야 묵언 수행 삼아 주야장천 책이나 읽고 글이나 쓰고 있지만  저의 ‘동료 수인들’은 도대체 뭘 하며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생각의 오지랖’을 펼치는 거지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그들의 일상을 엿볼 수도 있지만 그곳은 대부분 외로움에 ‘쩐’ 사람 특유의 세상을 향한 시기심과 우울이 일렁이는 공간, 모호한 허영심과 상처 입은 자존심을 자위하는 장소이기에 실상의 삶을 알기는 어렵습니다. 

도스또예프스끼의 대표작 <죄와 벌>은 요즘 말로 하자면 ‘혼밥, 혼술족’이 저지른 범죄심리소설입니다. ‘멋진 검은 눈동자에 짙은 아맛빛 머리털을 가진 미남, 약간 큰 키에 균형이 잘 잡힌 몸매를 지닌 22세의 지적인 법학도’ 라스꼴리니꼬프는 관 속처럼 작고 누추한 방에서 오랫동안 혼자 지내면서 자신도 모르게 마음에 곰팡이를 피워올리고 그런 음습한 심리상태에서 추악하고 저열한 살인을 저지르게 됩니다.

“그는 본래 겁이 많고 소심한 사람은 아니었다. 아니, 그의 성격은 오히려 정반대였다. 하지만 그는 언제부터인가 긴장과 초조 상태에 있는 우울증 환자처럼, 자기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서 어느 누구도 만나기를 꺼릴 정도로 사람들로부터 고립되어 있었다. 그는 가난에 찌들어 있었지만, 최근에 들어서는 그런 절박한 사정에 대해 괴로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는 일상생활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고, 또 쓰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아무 일도 하지 못하니까 지껄이기만 하는 거다. 이렇게 지껄이는 버릇이 생긴 것은 최근 한 달 동안 방구석에 처박혀 누워, 있을 수도 없는 일에 대해서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말 난 그 일을 할 수 있을까? 진정 그 일은 진지한 것일까? 전혀 진지한 일이 아니다. 이건 망상으로 자신을 위로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 장난이다!... 그는 자신의 생각이 뒤죽박죽이 되고 있으며, 몸도 쇠약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립된 방, 고립된 처지, 고립된 정신세계가 끔찍한 살인계획을 스스로 정당화하도록 만드는 소설적 허구를 현실에 빗대는 것은 물론 지나친 비약입니다. 독거인들을 마치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하는 것 같아 제가 말해놓고도 불쾌하고 황당합니다. 

하지만 혼자의 삶이 사람의 정서와 감정을 얼마나 피폐시키며 지치고 황량하게 하는지,  모래사막처럼 메마르고 거친 바람이 가슴을 얼마나 쓰라리게 훑고 지나가는지는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압니다. ‘혼자 산다’는 말은 ‘혼자 견딘다’는 말과 동의어입니다. 그러하기에 어떤 이유로든 가족 속에 있지 못하는 사람, 가정을 꾸리지 못하는 사람은 4월에 이어 5월도 잔인한 달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신아연

이대 철학과를 나와 호주동아일보와 호주한국일보 기자를 거쳐, 현재는 자유칼럼그룹과 자생한방병원 등에 기고하며 소설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장편소설 『사임당의 비밀편지』를 비롯, 『내 안에 개있다』 『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마르지 않는 붓(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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