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은 어떻게 키워야 하나 [오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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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은 어떻게 키워야 하나

2017.05.08

첫 번째, 이런 어머니가 있습니다. 
홀로 어려운 환경에서 외아들을 기른 여성입니다. 아들은 기대 이상으로 공부를 잘하여 명문대학에 들어가 졸업한 후 군 복무를 위하여 훈련소에 입소하게 됩니다. 어느 날 어머니는 아들이 훈련하고 있는 논산 훈련소로 찾아갑니다. 훈련을 받는 동안 면회가 허락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말입니다. 노심초사 아들 걱정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던 탓이었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아들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볼 수 있을까, 하고 연구 끝에 한 가지 꾀를 냅니다. 훈련소 안에 들어갈 수 있는 민간인들은 훈련병들이 잠깐 휴식할 때 여러 가지 먹을 것들을 파는 상인들이었는데 어머니는 떡을 팔러 들어가는 떡장사로 자신을 위장합니다. 결론은 아들과 감격에 겨운 상봉을 합니다. 떡장사인 줄 알았던 노파가 자신을 만나기 위해 떡장사로 변장한 어머니였음을 알고 얼마나 감동했겠습니까? 그 아들은 후일 그 사건은 평생 잊지 못할 감동이었다, 어머니의 큰 사랑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 이런 어머니가 있습니다.
비만인 어머니였는데 아들딸을 데리고 중국 식당에 들어와 푸짐하게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딸과 아들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로 먹성이 좋아서인지 모두 어머니처럼 심각한 비만이었습니다. 넉넉하게 보기 좋은 비만이 아니라 문제성 비만아동으로 보여 내가 괜히 걱정스러운 유형이었지요. 

그런데 옆 식탁에 앉은 내가 음식을 주문하여 맛있게 먹고 있는 모습을 보더니 그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저 음식 맛있어 보인다. 우리 하나씩 더 주문해 먹을까?” 라고 하더니 이미 포만에 가깝게 식사를 한 세 사람이 한 그릇씩 더 시켜 먹어 치우고서는 식당을 떠났습니다. 

아연했고 아이들이 정말 걱정이 되었으며 가여워졌습니다. 아이들의 건강 문제뿐 아니라 시각적 미적 문제도 컸기 때문입니다. 그들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 괜히 남의 걱정까지 하게 되었지요.

세 번째, 이런 어머니가 있습니다.
딸이 자신의 기대만큼 공부를 하지 않고 말썽을 부리자 대학에 보내기 위해서 음대 레슨을 단기간에 받게 해 이름 있는 대학 기악과에 합격을 시킵니다. 어머니는 악기에 소질도 없는 딸을 1년 동안 호른 연습을 하게 하느라 딸과의 전쟁을 치릅니다. 때리기도 하고 욕설도 하면서 딸을 끌고 다니며 어머니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음대 교수에게 엄청난 레슨비를 지불했습니다. 그 덕분이었던지 어쨌든 딸은 합격하여 주변을 놀라게 합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딸이 자신의 합격을 위하여 금전으로 음대 교수와 불법적인 거래를 한 어머니를 존경한다고 훗날 내게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어떤 어머니였던가? 
이런 질문이 내게 몇 년 간 화두처럼 지워지지 않고 따라다녔습니다. 내 교육관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에 대한 회의가 심해진 것입니다. 위에 예를 든 세 어머니는 자식에 대한 사랑이 넘치게 드러납니다. 그런데 나는 어떤 사랑을 쏟았는지, 자신이 없어진 것입니다. 

첫 번째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규정을 어겼지만 그 사랑은 자식을 감동하게 합니다. 그러나 나는 결코 그런 사랑을 보여주진 못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원칙에 벗어난 행위를 싫어했으며 사소한 일이라도 불법적인 것을 싫어했던 만큼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내 자식만을 위한 행동은 하지 않았으니까요. 하다못해 일상적인 공중도덕이나 법규라도 지키지 않는 걸 싫어했으니 자식들 눈에는 깐깐한 어머니로 비쳤겠지요. 

두 번째 어머니는 자식이 먹고 싶은 것은 서슴없이 자식이 요구하기도 전에 미리 알아서 먹입니다. 사실 그런 모정이 아름다워 보이고 행복해 보였고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그 어머니가 부럽기도 했지요. 그렇다 하더라도 미래 자신의 모습과 건강에 문제가 생길 경우를 알지 못한 아이들이 자라서는 어머니를 원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어머니의 푸근한 사랑을 느꼈을 것입니다. 나라면 그런 경우에는 어떻게 했을까요. 떼를 쓰고 울어도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푸근한 모성을 못 느낄 테지요. 

그렇다면 나는 세 번째 어머니처럼 공부라도 죽을 만큼 시켰는가, 그래서 아이들이 남들이 선망하는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가? 그게 아니라면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립하여 잘 살고는 있는가? 아니었습니다. 죽기 살기로 자식을 끌고 다니며 모든 수단을 동원해 좋은 대학을 보내고 보기 좋은 혼인을 시키고 금전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도록 밀어붙이는 힘과 끈기가 내겐 없었기 때문입니다. 

매일 자식과 공부 문제로 싸우고 윽박지르고 하기 싫다는 것을 억지로 시키며 투쟁을 해야 하는 것은 너무 괴로운 일이어서 나는 아이들이 싫다고 하면 밀어붙이려다가도 그만 두 손을 들어버리고는 했습니다. 개인 학습 교습이나 피아노 레슨, 미술학원 교습도 하다가 싫어하면 그만두라고 했지요. 싫어하는 것을 해야만 하는 것은 지옥이라고 생각했고, 내 어머니가 나를 교육했던 그 방법대로 하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내게도 변명의 여지는 있습니다. 
자식을 위해 아무것도 안 한 게 아니라 그래도 어렵게 대학까지 입학시켰습니다. 그리고 불법 체류자가 되지 않도록 미국과 캐나다 시민권을 쥐어주었습니다. 시민권을 갖게 했던 것은 오직 등록금을 줄여보자는 의도가 컸으며 그것은 내 노력으로 얻을 수 있었던 것이기에 아이들을 힘들게 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자신의 의지와 능력 노력으로 취득한 것이 아니고, 부모가 시민권자이기에 자동으로 시민권을 부여받은 것이니 무임승차한 것과 다름없어 시민권의 효용가치를 몰랐던 것 같습니다. 내가 어렵게 취득했듯이 그것을 얻기까지 매우 어렵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이지요. 공짜로 얻은 것이니 귀중할 리가 없고요. 그래서인지 투정하거나 말썽만 부리다가 이제 스스로 밥벌이를 하려니 얼마나 고될 것입니까? 

주변의 지인들은 위안의 말로 내가 최선을 다했다고 합니다. 다른 어머니들은 하기 어려운 환경을 조성해주었다고 합니다. 그걸로 만족하고 아이들의 운명은 아이들에게 맡기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큰아들이 왜 그때 자신을 때려서라도 잘못된 길을 가지 않도록 붙잡지 않았냐고 항의합니다. 작은 아이는 훈련소에서 불법으로 아들을 상면한 어머니의 얘기를 듣더니 감탄하며 그런 어머니를 부러워하는 듯 보였습니다. 

솔직히 슬펐습니다. 아무리 아는 이들이 그 어떤 위안의 말을 하여도 나는 해마다 어버이날이 오면 마음이 쓸쓸해집니다. 주변의 지인들은 기념일이나 명일이면 자식들이 선물하거나 해외여행도 시켜준다고 하는데 나는 뭔가, 하고 회한이 깊어지지요. 이제 와서 돌이켜보아도 어떻게 교육을 시키는 게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방법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대개의 부모가 그러하듯 나는 자식에게 큰 보상을 바란 적이 없는 어머니입니다. 그저 남들처럼 그런 날이면 문안 인사와 작은 선물, 예쁜 카드, 엎드려 절 받기가 아닌 진심 어린 정성을 원하는 것인데 그것도 자식들에게는 버거운가 봅니다. 어쩌다 일 년에 한두 번 자기네들이 필요할 때나 전화를 자선처럼 하지만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이 시대 풍속이 ‘혼술’'혼밥’이라는데 외롭고 슬플 것도 없다고요. 그래서 터득한 것이 마인드 컨트롤입니다. 자식을 낳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이렇게 사는 어머니 아버지가 저 혼자만은 아닐 테니까요.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오마리

미국 패션스쿨 졸업, 미국 패션계에 디자이너로 종사.
현재 구름따라 떠돌며 구름사진 찍는 나그네.

박대문의 야생초사랑

분꽃나무 (인동과) Viburnum carlesii Hemsl

강화군 교동도, 강화 나들길 10번 코스를 따라 걷습니다.
바로 앞바다 건너 북한의 대남 방송 스피커 소리가 
시끌벅적 귓전을 때리며 윙윙거립니다.
  
북한의 연안군이 내려다보이는 수정산 오솔길,  
남북 대치 상황의 접경지역이라 시국은 수상할지언정
이곳 역시 봄날의 햇살은 그지없이 따사롭습니다.
   
아기자기 피어나는 들꽃과 담록의 새잎이 곱습니다.
언뜻 스치는 갯바람 속에 
맑고 달콤한 향이 코끝을 지나 가슴까지 덥힙니다.
이 산중에 무슨 향이 이리도 강할까?
짙게 화장한 아리따운 여인의 스침이 방금이었던 것처럼 
곱고 향긋한 분(粉) 냄새가 감미롭습니다.
   
분 내음 따라 발길 좇아 주변을 둘러보니 
연둣빛 너풀대는 숲우듬지 사이로 
살랑대는 하얀 꽃 무더기가 눈에 들어옵니다.
   
라일락보다 향이 더 강하고 꽃송이도 탐스러운
분꽃나무 하얀 꽃이 한창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꽃다발 묶음이 주저리주저리 매달려 있었습니다.
   
분꽃나무는 내염성이 강해 
경기도, 충남, 전남북 등 주로 서해안 산기슭에 
광범위하게 자랍니다.
꽃 하나하나 모양이 마치 초본의 분꽃을 닮아서
분꽃나무라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꽃 모양보다는 진하게 배어나는 향이
여인이 사용하는 화장 분 냄새처럼 곱고 강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꽃망울은 약간 분홍빛을 띠지만
꽃이 활짝 피면 꽃잎은 새하얗게 변합니다.
꽃이 아름답고 무더기로 피어나 관상 가치가 뛰어나며
맹아력이 좋아 줄기가 포기를 형성하며 자랍니다.
   
추운 곳에서도 잘 자라며 향이 매우 좋아 
관상용, 조경용으로 유망한 우리 꽃나무입니다. 
    
(2017. 4. 30. 강화나들길 10코스 수정산에서)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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