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는 왜 군자가 아니었을까? [정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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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는 왜 군자가 아니었을까?

2017.04.25

사군자로 불리는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梅, 蘭, 菊, 竹) 못지않게 옛 선비들의 사랑을 받은 소나무는 왜 군자에 들지 못했을까? 이런 의문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아서였는지 소나무를 볼 때마다 각별한 눈길을 주게 됩니다. 매, 난, 국, 죽은 각기 덕목으로 치는 특성이 뚜렷한 데 비해 소나무는 그렇지 않다는 것일까요? 계절을 가리지 않고 어디서나 눈에 띈다고 그만큼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한 것일까요? 쓰임새로만 본다면 소나무가 사군자에 훨씬 앞섭니다. 목재로도 훌륭하고, 땔감으로도 좋고, 방풍(防風)으로도 든든하지요. 낙엽 진 솔잎도 모닥불을 피울 때나 부엌 불쏘시개로 유용합니다. 그뿐입니까? 송편을 빚을 때도 솔잎이 없어서는 안 되지요. 솔잎은 효소로 만들기도 하는데 솔향 그윽한 차 한잔에 일상의 긴장을 잠시 내려놓을 수도 있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소나무는 사철 푸르름으로 인해 어디서나 우리의 시선을 즐겁게 합니다. 애국가에도 나오듯 소나무가 없는 산과 들을 생각할 수도 없는 게 우리의 금수강산(錦繡江山)입니다.

대부분의 나무는 둥치가 위로 바르게 뻗는 데 비해 소나무는 구부러져 크는 특성이 있습니다. 다른 나무들은 가지도 옆으로 바로 뻗어 나가지만 소나무 가지는 대부분 구부러진 모습입니다. 땅속에 돌이나 바위가 많으면 가지가 더 심하게 구부러지는 경향이 있다고도 합니다. 어릴 때, 한국인이 소나무를 좋아하는 것은 굽은 소나무처럼 심성이 구부러진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런가 보다 하고 지냈지만 이 말은 한국인을 폄하하기 위해 일본인들이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무를 가꾸다 보면 열심히 돌본다고 해도 이따금 죽는 나무가 생기는데 아직껏 소나무가 절로 죽는 것은 보질 못했으니 그만큼 생명력이 강한 것도 소나무의 또 다른 특성이라고 하겠습니다. 한국인이 소나무를 좋아하는 것은 오히려 이런 강인한 생명력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 소나무를 심을 때는 겨울철 특히 눈이 오는 시기여야 한다는데 추위를 마다하지 않고 버티는 그 굳셈이야말로 소나무의 자랑이라 하겠습니다.. 

우리 집 뒤뜰은 오름으로 불리는 작은 산의 발치에 연해 있어 소나무의 세가 강한 편입니다. 앞뜰에는 씨가 굴러와 절로 자라난 소나무들도 있지만 몇 그루는 뜰의 멋을 더하기 위해 일부러 심기도 하였습니다. 모든 생명들이 다 그러하듯 소나무의 번식력 또한 대단합니다. 여름에 맺는 푸른 솔방울은 가을 지나 겨울 되면 거멓게 변해 땅에 떨어져 바람에 구르다가 밟히기도 하고 제자리에서 썩기도 할 것입니다. 그렇게 겨울을 나고 따사로운 봄날 바깥에 나가보면 작은 고슴도치 모양의 어린 솔이 여기저기 돋아 있습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십상입니다. 가녀린 아기 솔들은 담벼락 아래도, 돌밭에도, 또 무슨 힘인지 바위 표면을 뚫고서도 솟아납니다. 한 줌도 안 되는 어리디어린 솔이 어찌나 귀엽고 대견한지 모릅니다. 씨알에서 생명이 싹트고 성장한다는 것, 세상 그 무엇보다 경이로운 일입니다. 새 소나무가 탄생하는 것은 어머니 뱃속에서 잉태된 아기가 세상에 나오는 일과 다를 게 없습니다. 

무릇 생명에는 사멸(死滅)이 따릅니다. 인간을 비롯한 동물의 삶에 종말이 있듯이 식물인 나무의 삶에도 종말이 있습니다. 소나무는 보통 수백 년을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적송이다, 홍송이다, 백송이다, 금강송이다, 등 종류에 따라 다르기는 할지라도 언젠가 죽음을 맞는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습니다. 얼마나 오래 사는가는 조건에 따라 제각기 다를 것입니다. 제주에는 한라산 신령에게 제사를 지내던 산신단(山神檀)이란 곳에 6백 년이 훌쩍 넘는 곰솔(海松)들이 있어 근처에만 가도 경건함이 느껴집니다. 우리나라 방방곡곡 어디를 가건 신비로운 노송들이 있어 사람들의 우러름을 받고 있지요. 노송이 수명을 다하기 전에 무수한 새 생명들을 낳아 종을 잇는 일 또한 인간과 다르지 않습니다.

인간이 병으로 앓다가 죽듯이 강인한 소나무라도 병 앞에서는 버틸 수 없나 봅니다. 아직 예방법을 모르는 가운데 수많은 소나무가 재선충병으로 죽어갑니다. 제주만 해도 한 해에 수십만 그루가 벌겋게 변하면서 죽는 것입니다. 숲길을 지나다 붉게 변색된 소나무를 보면 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만큼 크기까지 온 힘을 들이고 갖은 풍상을 겪었을 이 귀한 소나무들이 어찌 속수무책으로 죽어 간단 말인가, 하고 말입니다. 우리 집이 있는 중산간(中山間)은 기온이 낮아 재선충병이 피해 갈 줄 알았는데 작년에 벌겋게 죽어가는 소나무들이 군데군데 눈에 띄어 절망감이 들기까지 했습니다. 집 주위의 나무들과 집 마당에 키워온 나무들은 아직껏 그런 기미가 없어 참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던 중 서귀포 지역에서 재선충병이 수그러진다는 소식이 있어 한결 마음이 놓이긴 합니다. 죽어 없어진 소나무들의 자리에 다른 나무들을 심는다고 하지만 저 왕성한 생명력으로 소나무는 다시 태어나고 자라날 것이기에 저는 그리 걱정하지 않습니다. 

아내와 저는 나무 가꾸기를 즐겨 하면서도 분재(盆栽)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분재는 우리보다 일본인들의 기질에 맞는 취향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무를 자연스럽게 자라게 해야지, 왜 화분에 가두어 제대로 크지 못하게 할까요? 한때 중국 여인들이 전족(纏足)을 해야 했던 것처럼 생명체의 자유를 억압하고 성장을 억제하는 것이 아닐까요? 모순일진 몰라도 우리는 분재와는 달리 땅에 서 있는 소나무의 가지를 조금씩 휘어서 보기 좋게 하는 것에는 특별히 개의치 않습니다. 약간의 자유는 제한할지라도 성장을 막는 것은 아니니까요. 앞뜰에 나란히 심어 놓은 두 그루도 세한도(歲寒圖)의 소나무들 흉내를 낸다고 아래로 자못 구부리길 했으니 말입니다. 인근의 소나무 조경 농장에서는 작은 소나무들을 줄로 당기고 비틀고 해서 보기 좋게 구부린 모습으로 키우고 있습니다. 잘 구부러진 소나무가 비싸게 팔린다고 하는데 우리의 심미안(審美眼)이 그런 모양입니다. 세상에 곧은 나무만 있다면 얼마나 단조로울까요? 서울 시내를 돌아봐도 건물이나 아파트에 심어놓은 소나무들은 한결같이 구부러진 모습입니다. 수직의 고층 빌딩들 사이에서 부드럽게 휘어져 서 있는 모습이 오히려 마음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소나무는 선비나 화원들의 그림에 사군자 못지않게 자주 나옵니다. 아마도 소나무 그림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추사(秋史)의 세한도일 것입니다. 세한도의 소나무는 왕성한 소나무가 아니라 겨울을 나고 있는 초췌한 소나무로, 마치 유배 중의 추사 자신을 빗대 그린 것 같다는 인상을 줍니다. 단원(檀園)의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도 뛰어난 작품으로 알려져 있지만 소나무가 아닌 그 어떤 나무가 맹호와 어울리겠습니까? 그렇게 사랑을 받은 소나무가 왜 군자의 반열에 들지 못한 것일까요? 제멋대로의 추론이지만,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사대부(士大夫) 지배 체제에서 매, 난, 국, 죽이 사(士)에 걸맞은 것들이라면 소나무는 농(農)이나 공(工) 또는 상(商)에 가까운 존재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농업이나 상공업은 먹고사는 일, 즉 인간의 실용에 이바지하는 것으로서 신분상 낮은 곳을 차지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으니 말입니다. 실용이 지배하는 오늘날에는 군자가 따로 없습니다. 매, 난, 국, 죽보다도, 소나무처럼 품격 있고 수형(樹型) 좋은 나무들이 고귀한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은 훌륭한 모양의 소나무 한 그루가 억(億)을 호가하는 시대이니 세월의 무상함을 알겠습니다.

* 매, 난, 국, 중 가운데 대나무는 사실 실용으로서도 나무랄 데가 없는 나무입니다. 베어내도 그 뿌리에서 새 나무가 나와 번성하므로 따로 심을 필요도 없는 나무입니다. 대바구니를 비롯한 여러 가지 생활용품의 재료로 많이 쓰입니다. 우리 집에서는 대나무를 베어서 다른 나무를 심을 때 바람에 흔들리지 않도록 지지목으로 사용하기도 하며 잘 마른 대나무는 난로의 불씨로도 유용하게 씁니다. 그렇게 실용적 가치가 크면서도 대(竹)는 그 곧은 성품 때문에 선비들의 아낌을 받아왔다고 하겠습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정달호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줄곧 외교관으로 일했으며 주 파나마, 이집트대사를 역임했다. 은퇴 후 제주에 일자리를 얻는 바람에 절로 귀촌을 하게 되었고, 현재 제주평화연구원 객원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한라산 자락에 텃밭과 꽃나무들을 가꾸며 자연의 품에서 생활의 즐거움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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