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감각` 떨어지는 에너지 공약
박상덕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 수석연구위원
요즘 학생들은 판타지 소설이나 판타지 영화를 통해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즐거움을 맛본다. 판타지는 도피문학이라고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내고 창의력을 자극하면서 재미도 얻을 수 있는 분야로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높다.
판타지가 유행하기 전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게는 무협소설이 그런 역할을 했다. 상상도 못했던 신공으로 악의 세력을 물리칠 때는 스트레스가 날아가고 새로운 힘이 충전되곤 했다. 무협소설을 밤새워 읽고 마지막 장을 덮으면 그 여운으로 현실감각이 무뎌진 적도 있지만 한잠 자고 나면 곧바로 리포트와 시험 준비 등 바쁜 학창생활로 복귀할 수 있었다.
요즘 정치권이 에너지와 관련해 내놓는 공약을 보면 무협소설에 나오는 신공 같은 느낌이 든다. 에너지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볼 때는 그럴 듯하게 보일지 몰라도 에너지와 함께 살아온 사람에게는 모래성을 쌓겠다는 소리로 들려 걱정이 앞선다.
에너지 정책은 기본적으로 세 가지 요소 즉, 안보·경제·환경을 고려해 이 요소들이 최적화되는 방향으로 결정해야 한다.
안보라 함은 해외에서 에너지 자원을 어떻게 국내로 조달하고 국내에선 여하히 이것을 원활하게 유통하며 효율 높은 소비를 유도할 것인가이다. 경제라 함은 가정이나 산업에 미치는 경제적 부담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고 환경이라 함은 에너지의 생산과 유통에서 발생하는 오염물질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는 서로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동시에 풀어야 하는 방정식이며 한 가지만 강조하면 절름발이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확보할 수 있는 에너지원의 장점과 단점을 분석하고 이것을 어떻게 엮어내는가가 에너지 정책이 되어야 한다.
논란의 중심은 원자력에너지에 있다. 원자력은 안보, 경제, 환경에서 모두 우수한 점수를 받는 에너지이다. 안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지만 그것은 국내 원자력발전의 안전성이 지속적인 투자에 의해 높아졌다는 사실은 잘 알지 못하거나 무시하기 때문이다.
국내 원전은 후쿠시마 원전보다 태생적으로도 안전하지만 꾸준한 안전성 증진 조치를 취해 더욱 안전해졌다. 더구나 가장 낮은 가격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으며 최저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에너지원이다. 원자력에너지를 축소한다면 전기요금 인상을 어떻게 막을 것이며, 37%의 이산화탄소 감축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
그동안 재생에너지 보급에 많은 노력을 해왔고 지금도 애쓰고 있는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쓰나미 사고의 직격탄에도 불구하고 왜 원전의 재가동을 추진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왜 스위스에서는 원전 조기 폐쇄 국민 투표가 부결됐는지, 왜 미국과 영국이 원전을 대체에너지에 포함시켜 지원하는 법을 만들었는지 등 다른 나라 정책을 눈여겨봐야 한다. 95%의 에너지 자원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고, 에너지 측면에서는 섬나라이기에 비상시 이웃 나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상황을 깊이 있게 돌아보며 에너지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일부 정당의 에너지공약은 이런 것들이 균형 있게 고려되지 않고 한쪽으로 치우쳐 있기에 무협소설의 신공처럼 그럴 듯하게 보일 수는 있지만 현실에 뿌리를 내릴 수 없는 공약이다. 실현 불가능한 공약으로 유권자를 기만해온 예는 수두룩하기에 그 폐해를 여기서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일부 시민단체의 주장만을 바탕으로 공약을 만들어서는 안된다. 우리나라의 백년대계를 내다보고 공약을 만들어야 한다. 눈앞의 표(票)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을 진실로 사랑하는 지도자, 집권을 마친 후에도 오랫동안 존경받는 지도자의 출현을 기대한다.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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