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요마, 카살스, 새들의 노래 [허찬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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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마, 카살스, 새들의 노래

2017.02.14

설날 연휴 미국의 새 대통령이 중동지역 출신 난민과 여행자들의 입국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려 큰 혼란을 일으켰습니다.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 공식화에 이어 나온 조치였습니다. 난민과 이주민들의 후손이 대부분이어서 가장 열린 나라로 여겨졌던 미국의 모습을 추하게 하는 사건입니다. 다행히 법원이 제동을 걸어 시행이 무산되었습니다. 

경제적 동기가 중요한 이주민(immigrant)과 구별하자면 난민(refugee)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생명의 안전을 위해 피난처를 찾는 사람들인데, 약 60년 전 이 나라에도 피란민이 넘쳐났었습니다. 폭파되어 앙상한 철골만 남은 한강다리를 위태로이 건너던 사진 속 사람들, 12월 엄동설한의 흥남부두에서 우방국의 선박을 얻어 타 남하한 약 10만 명 가까운 피란민들이 아직도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이들은 새 삶터에서 혼신의 노력으로 나라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얼마 전 유튜브에 올려진 첼로 연주자 요요마 (Yo-Yo Ma)의 6개의 바흐 무반주 첼로조곡 연주실황을 보았습니다. 필자는 중국계 미국인 요요마를 좋아해 미국과 한국에서 여러 번 공연장에서 연주를 직접 보았습니다. 세계적인 명성의 천재적 음악가인 그를 더 친근한 모습으로 기억하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미국서 대학원 재학 시절 어린 딸과 아침에 보던 공영방송 PBS의 아동 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Sesame Street)에 그가 종종 출연하였는데, 깡통을 두들기는 머펫 인형들과 우스꽝스런 연주를 하며 웃던 모습은 천진난만했습니다. 요요마가 2015년 BBC 프롬에서 연주한 이 바흐의 음악과 앙코르 곡 ‘새들의 노래 (El cant dels ocells)’는 정치적 이유로 모국을 떠난 전설적인 첼로 연주자 카살스와 인연이 깊습니다.

1973년에 97세로 사망한 카살스(Pablo, 또는 카탈루냐식 표기로 Pau Casals)는 어린 시절 첼로 신동으로 알려져 심지어는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 (1901년 사망)이 초청해 연주를 하게 했다고 합니다. 1930년대 스페인의 정치적 갈등과 내전 기간 카살스는 공화파 지지자였는데, 독일의 나치와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정권의 적극 지원을 받았던 프랑코 장군의 왕당파가 승리하자 프랑스로 망명합니다. 승리 후 수만 명의 반대파를 처형하는 만행을 저지른 프랑코독재를 반대하며, 먼저 타계한 부인을 묻기 위해 잠깐 카탈루냐를 방문했던 것을 제외하고 죽을 때까지 스페인을 외면합니다. 

요요마 영상 속 공연장은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먼저 죽은 부군을 기리기 위해 런던 시내에 세운 로얄 알버트홀입니다. 상당히 넓은 돔 형태의 건물인 이곳에서 수십 년째 여름마다 BBC 프롬 연주회 시리즈가 열리고 있습니다. 필자도 여름에 런던을 방문했을 때 연주회에 여러 번 참석했습니다. 이 연주회 특징 중 하나는 보통 공연장에서 제일 비싼 자리인 무대 정면의 큰 반원 공간이 입석 전용이라는 것입니다. 저렴한 입석표는 현장에서 선착순으로 판매됩니다. 그래서 공연을 서서 관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중간휴식 시간에는 바닥에 발을 뻗고 앉아 휴식을 취할 수 있습니다. 필자도 좌석과 입석을 모두 이용해 보았습니다. 이 영상은 로얄 알버트홀의 무대와 관객석 모습, 그리고 프롬 연주회의 실제 분위기를 생생하게 잘 전달해주고 있습니다. 

요요마는 2시간 반 정도에 걸쳐 중간휴식 없이 연주가 어렵다는 곡을 전곡 악보 없이 연주합니다. 각 곡 사이에 잠시 일어서서 물을 마시고 팔, 다리를 뻗으며 코앞에 서있는 관객들에게 대단하다는 손짓과 웃음을 보낸 뒤 다시 연주를 이어갑니다. 과거보다 이마가 훨씬 넓어졌지만 여전히 순진하고 친근한 얼굴이었습니다. 

연주를 마친 뒤 관중의 박수와 환호에 무대에 다시 나온 요요마는 이례적으로 마이크를 잡고 짧게 발언을 합니다. 바흐의 첼로 음악을 세상에 소개한 카살스에 고마움을 표하고, ‘자유를 갈망하는 울음’이어서 카살스가 특별히 사랑했던 카탈루냐 민요에 바탕을 둔 ‘새들의 노래’를 연주하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난민사태를 의미하며 ‘엄청나게 혼란스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살 곳을 선택할 자유’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에게 이 곡을 바친다고 합니다. 그리고 심각한 표정으로 짧지만 아름다운 곡을 연주합니다. 

2015년 당시 유럽은 시리아 정부와 광신도들의 도륙(屠戮)질을 피해 도망치듯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던 난민들의 쓰나미가 밀려오며 중심을 가누지 못했습니다. 두려움과 부정적 반응이 각국에 확산되는 가운데 백만 명의 난민에게 독일의 국경을 개방한 용감한 인도주의자 메르켈 총리는 지금까지도 자신의 결정에 대한 혹독한 비난을 감수하고 있습니다. 이듬해에는 저급한 배타적 인종주의 정서를 자극하는 선동가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인터넷 기술이 가짜 뉴스와 극단주의 집단들의 혐오를 널리 확산시킬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아름다움의 변경을 넓히는 뛰어난 음악가의 연주를 시공을 뛰어넘어 감상할 수 있게도 합니다. 앞으로 첫 번째 종류의 쓰임이 많아 인터넷에서 피난가고 싶게 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요요마 2015년 BBC Prom 연주 실황 영상 인터넷 주소: 
(https://www.youtube.com/watch?v=1e2SQMOpW60).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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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허찬국

1989년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후 미국 연지준과 국내 민간경제연구소에서 각각 십년 넘게 근무했고, 2010년부터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 중. 개방 경제의 통화, 금융, 거시경제 현상이 주요 연구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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