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수석’은 ‘안 전 수석’으로 말해야 [황경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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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수석’은 ‘안 전 수석’으로 말해야

2016.11.09


세계 각국의 언론매체가 고객이어서 24시간이 마감시간인 미국 통신사 기자였을 때부터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뉴스시간은 빼놓을 수 없는 취재원의 하나였습니다. 약 15년 전 취재활동에서 완전 은퇴한 뒤에도, 필자는 방송의 주요 뉴스시간에서 해방되지는 못했습니다.

얼마 뒤 한글과 글쓰기 공부를 시작하자 방송이 좋은 교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때부터인지 방송 뉴스 앵커와 취재기자들이 쓰는 우리말에 관심이 끌렸습니다. 그들이 뉴스를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과정에도 신경을 쓰게 되었습니다.

필자는 방송 저널리즘을 공부한 사람도 아니고 한글학자도 아닙니다. 오직 일반 시청자로서 느낀 소감을 전하고 싶습니다. 특히 소위 ‘최순실 게이트’ 뉴스가 거의 종일, 국내 방송사 중 어느 한 곳에서는 틀림없이 흘러나오는 요즘, 이 생각이 더욱 간절해졌습니다.

뉴스를 들으며 가장 귀에 거슬리는 것이 방송인의 발음입니다. 한글에서 띄어쓰기는 가장 어렵고 중요시되는 문법 과제 중 하나입니다. 이 띄어쓰기 원칙은 말을 전달하는 데 있어서도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요즘 방송에 자주 나오는 청와대 전(前) 비서관들이 관련된 뉴스에서 많은 아나운서들이 이 띄어쓰기 원칙을 무시한 발음을 하는 것이 귀에 거슬립니다. 예를 들어 안종범 전 수석비서관을 ‘안전 수석’이라고 말할 때가 많습니다. ‘우전 수석’ ‘안전 비서관’ ‘전전 대통령’ 등 그 예는 많습니다.

종이 신문의 경우 제목이나 기사에서 지면 형편 상 띄어쓰기를 무시할 때가 가끔 있습니다. 그러나 공간에 구애를 덜 받는 방송에서, ‘안전 수석’이나 ‘전전 대통령’은 ‘안 전 수석’ ‘전 전 대통령’이라 띄어 발음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비슷한 예는 사자성어(四字成語) 발음에서도 가끔 들립니다. 阿修羅場을 ‘아 수라장’으로, 語不成說을 ‘어불 성설’로 발음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또 ‘아수라 장’은 교통참사의 현장 보도에서, ‘역부족’은 화재나 홍수의 현장 보도에서 천편일률(千篇一律)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아, 듣기 거북합니다.

사건현장 보도에서 ‘상황’ ‘상태’ ‘모습’ 등의 낱말 남발(濫發)에 식상(食傷)하는 시청자도 많습니다. 이것은 방송기자가 가지는 시간제약 때문도 있겠지만, 대체로 우리말 어휘가 일본말 또는 한자어 극복에 큰 성과를 보지 못한 결과 같아서 마음 아픕니다.
공작(工作)이나 요리 관련 프로에서 ‘xxx 하면 완성!’ 하고 한 문장을 맺는 것도 듣기 거북합니다. ‘xxx 하는 상태’ 라고 말을 끝내는 경우도 자주 있습니다. ‘확인’이라는 낱말을 자주 사용하는 것도 방송의 특징입니다. "지금 곧 확인하십시오"라는 표현이 아나운서의 입에서, 심지어 광고 글귀에도 나옵니다. “지금 곧 소개합니다”도 자주 쓰입니다.

한글 표기법에서는 장음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 젊은 층이 쓰는 말에서는 장음이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습니다. 우리말을 사용할 때엔 이 장음이 필요 없겠습니다. 그러나 장음을 사용하는 외국어를 우리말로 옮길 때 문제가 생깁니다. 일본어나 영어에는 장음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KBS를 발음하는 아나운서나 기자 중에는 장음으로 발음해야 할 ‘B’를 짧게 발음하는 바람에 ‘케이베스’에 가깝게 들릴 경우가 있습니다. ‘K' 'B' 'S' 각 알파벳 문자의 음가(音價)는 같은데 유독 가운데 있는 ’B'만 짧게 발음하니 이렇게 들릴 경우가 생기는 것입니다. SBS와 YTN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유명사이니 우리말로 고쳐 쓸 수도 없습니다. 오래전 유행한 ‘아리조나 카보이’ 노래가 생각납니다.

뉴스 앵커가 현장 취재기자와 대화할 때, 보도하는 기자가 “예, 그렇습니다”라고 시작하는 것도 너무 자주 들으니 귀에 거슬립니다. 앵커가 “xxx 기자, 지금 많이 춥지요”라고 물으니 광장이나 강가에 나가 있는 기상 캐스터는 “예, 그렇습니다”로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화재 현장에 나가 있는 기자에게 “xxx 기자, 이제 불길은 거의 잡혔다지요”라고 묻는 대신 “현장에서 취재하는 xxx 기자 보도해 주세요”라는 식으로 유도하면 "예, 그렇습니다"라고 시작하는 상투적 보도형식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앵커가 패널 토의에 참석한 자사(自社) 기자에게 “수고하셨습니다. 더욱 좋은 취재 부탁합니다”라고 하는 것도 좀 낯간지럽게 들렸습니다. 이와 비슷한 인사말을 보도 끝에 꼭 해야 하는 지 궁금합니다. 기자가 “앵커님께서 말씀하신 대로...”하고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도 듣기 거북합니다.

우리나라가 동방예의지국이라서 그런지 비슷하게 경어를 사용하는 일본보다 더 남용하는 듯합니다. 일본말에서는 자기 남편이나 직장 상사를 외부에 소개하거나 언급할 때엔 존댓말을 쓰지 않습니다. 과공(過恭)은 불공(不恭)이란 말도 있습니다.

우리말 경어의 남용 또는 오용은 비단 방송에서뿐 아니라, 병원이나 백화점 직원들이 손님에게 쓰는 문법에 맞지 않는 높임말도 많이 지적됩니다. 이에 관해서는 우리말 달인들의 깊이 있는 글을 기대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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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황경춘

일본 주오(中央)대 법과 중퇴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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