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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 무임승차’ 의식
2016.03.07
1989년 11월, 무너지는 베를린 장벽 앞에 서 있던 필자는 몇 달 뒤 처음 실시한 자유 총선거로 구성된 동독 의회가 서독과의 흡수 통합을 결의하면서 이루어지는 독일 통일 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통독을 목격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북한의 통일도 길어야 20년 걸릴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코리아는 하나다(Korea ist Eins)’라는 염원의 글귀도 베를린 장벽에서 보았습니다.그러나 동서독의 동질성과 너무 다른 남북의 이질성을 의식 못 한 환상은 깨졌고 지금은 북의 으르렁대는 소리만 요란합니다. 우리는 민중이 초근목피로 살아도 세습 독재체제는 유지돼 개혁과 개방이 불가능한 북한의 실체를 알지 못했습니다. 두터운 겨울옷을 벗기자고 북을 무차별 지원한 햇볕정책은 핵과 미사일로 돌아왔다는 비판 속에 지금 야당 대표급들의 입에서조차도 실패했다거나 보완해야 한다는 말이 나옵니다.통일이 입으로 되는 것이 아니죠. 작년 8월 북한군이 비무장지대를 넘어와 목함 지뢰를 몰래 매설했고 이를 모르는 우리 수색요원들이 밟아 부상했을 때 우리가 대응이라고 내놓은 것은 늘 말하던 ‘원점 타격’이 아니라 휴전선 확성기 방송 재개였습니다. 진실을 알리는 방송이 북 정권에게 꽤 아플 테지만 무력에 맞서 스피커로 대항하는 나라는 지구상에 우리가 유일할 것이라고 비아냥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물론 실시간 사건이 아니니 대응이 어려웠던 것이죠. 북한의 “안됐다”라는 말은 ‘그런 사고가 있어서 안됐다’는 것인데 우리는 사과로 해석했습니다.4차 핵 실험과 인공위성이라는 미사일 발사 도발로 유엔 안보리가 강력한 대북 제재 결의안을 의결하자 북한은 호전적인 발언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김정은은 “실전 배치한 핵탄두들을 임의의 순간에 쏴버릴 수 있게 항시적으로 준비해야 한다"라는 지침을 내렸다는 것이죠. 박근혜 대통령은 핵무기가 체제를 보장한다는 망상을 버리라고 촉구했고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체제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도록 해야 한다"라고 경고했습니다,북은 남한 주요 시설을 강타할 수 있다고 위협합니다. 북한은 200여 개의 미사일 발사대에 1,000여 기의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고 다연장포는 5,000문 이상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에는 동해로 신형 방사포를 발사했죠. 북극성 1호라는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도 실험했습니다.우리 군은 물론 다른 재래식 전력의 우위도 있지만 500킬로미터 급의 탄도미사일을 비롯하여 사거리 1,500킬로미터로 북한 전역이 사정권이라는 현무 3-C 순항미사일을 실전 배치했다는데 노동당 중앙당사의 창문도 뚫을 수 있다고 합니다.또 2023년경까지는 예방적 선제 타격이 가능한 한국형 킬 체인을 구축한다는 목표입니다. 킬 체인은 적의 도발 징후가 보일 때 1분 내에 탐지, 1분 내에 위치 확정, 3분 내에 타격 결심, 25분 내에 공격 실행 등 모두 30분 내에 도발 의지를 무력화한다는 것이죠. 킬 체인으로 사전 제거에 실패했을 경우 고도 15~30킬로미터에서 북 미사일을 요격한다는 것이 KAMD(한국형 미사일 방어)입니다. 이는 현재 한미 양국이 주한미군에 배치하려는 종말 단계(고도 40~150킬로미터)의 미사일 요격인 사드와 함께 주목되는 방어 체계입니다.이런 물질적 대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정신적인 준비 태세죠. 도발의 징후 포착에서 타격의 결행까지 순식간에 이뤄져야 우리의 피해를 막을 수 있는데 과연 지금 우리가 이런 본능적인 탐지와 대응이 가능할지 걱정이 앞섭니다. 사드 배치만 해도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는지 모르는 야당과 외세가 반대하고 있습니다.혹시 우리는 미국이 우리나라를 지켜주겠지 생각하는 ‘안보 무임승차’ 의식에 매몰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요. 물론 우리나라는 최근 매년 1조 원 가까운 주한미군 방위비를 분담하고 있으니 미 공화당 대선주자인 트럼프가 주장하는 돈 문제로서의 ‘안보 무임승차’는 아니죠. 필자는 우리의 정신 상태를 말하려는 것입니다. 고위층의 자제까지도 병역 면탈 논란이 일어나고 야당이 테러방지법도 반대하는 이상한 나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방을 적이 둘러싼 이스라엘 정치에 이런 정신이 가능하겠습니까?뉴스에 현대화한 북한의 로켓 군과 다연장포 발사 장면이 나올 때마다 우려가 커집니다. 육해공군에 이은 제4군, 얼마나 크길래 군인가 하고요. 이제는 상대를 일거에 무력화하는 미사일 단추 전쟁입니다. 북의 이동식 미사일 발사는 징후도 포착하기 어렵죠. 우리는 1970년대 박정희가 자주국방을 위해 북을 제압하려고 야심차게 개발한 미사일을 발전시키지 못했죠. 미국과 약정한 미사일 지침 때문에 지연된 공백을 최대한 단축하여 국민들이 편안히 발 뻗고 잘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섣부른 통일성금이 아니라 킬 체인과 KAMD 완성을 앞당기고 특단의 국방 대책을 강구하는 방위성금이 필요한 시간이 아닌가 합니다. 통일은 말이 통하는 합리적인 정체가 들어서야 진전할 수 있다고 봅니다. 분단 60년이 넘도록 상호 내왕은커녕 편지도 오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불바다 위협 발언이 휩쓰는 호전적인 체제와 무슨 통일 프로세스가 가능하다는 말인가요? 그 전단계로 밟아야 할 길이 너무 멀다는 생각입니다. 통일보다 안보 강화입니다. 자유민주주의를 강인하게 지키고 그 여세로 북한 주민도 자유를 맛보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서울경제 근무. 동유럽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 과학부, 뉴미디어부, 인터넷부 부장등 역임. 우리사회의 개량이 글쓰기의 큰 목표.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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