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금리가 변동금리보다 더 싸다고?...재테크 시장 상식파괴 확산
“경제학에서 말하는 제로금리는 물리학에서 말하는 무중력 상태에 가깝다. 모든 환경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새로운 환경에서 나타나는 행동들은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앨런 블라인더 프린스턴 대학교 교수)
초저금리 기조가 오랜 기간 지속하면서 국내 금융 소비자들의 재테크 지형에도 기존 상식을 뒤집는 현상들이 점차 두드러지고 있다.
주요 시중은행 대출 상품의 변동금리가 고정금리보다 낮아졌고, 월급통장 등으로 사용되는 수시입출금 상품의 금리가 일정 기간 돈을 묶어 놔야 하는 정기예금 금리보다 높아졌다.
경기 침체로 시중에 갈 곳을 잃은 부동 자금은 900조원을 넘어설 정도로 넘쳐 나는데, 각국 중앙은행은 돈을 풀어 금리를 억지로 더 끌어내리려다 보니 발생하는 기현상이다.
고정금리 대출 금리, 변동금리보다 낮아져
현재 대다수 은행의 변동금리 대출 상품 금리는 미국의 금리 인상 이후 연 3%대까지 올라선 반면, 고정금리 대출 상품의 최저 금리는 연 2% 후반대까지 떨어졌다.
은행은 고정금리로 돈을 빌려줄 땐 미래의 금리 상승에 대비해 변동금리 상품보다 더 비싼 이자를 받는 게 보통이다. 때문에 금리 역전 현상은 언뜻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자금 사정에 따라 개별은행의 변동·고정 금리가 일시적으로 역전되는 현상이 가끔 나타나기도 하지만, 지금처럼 전(全) 은행권에서 변동·고정금리가 일제히 역전되는 것은 이례적이다.
주요 시중은행의 고정·변동 금리 추이/그래픽=이진희 디자이너
지난 22일 기준 신한은행 고정금리 상품의 최저금리는 연 2.94%로, 변동금리 상품의 최저금리(3.1%)보다 0.2%포인트 낮고, 우리은행 고정금리 상품의 최저금리도 연 2.75%까지 낮아져 변동금리 상품보다 금리가 0.3%포인트 가량 낮다. 국민은행도 고정금리 상품 금리가 연 2.96%까지 떨어져 연 3%대의 변동금리 상품보다 금리가 낮다.
은행들의 변동금리와 고정금리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작년 12월부터다. 고정금리는 하락세로 돌아선 반면, 변동금리는 꾸준히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두 금리의 격차도 점차 벌어지는 추세다.
고정금리 하락세는 고정금리의 기준인 은행채나 금융채 등 주요 중·장기 채권의 금리가 떨어지는 반면, 변동금리 대출의 기준인 코픽스 금리는 상승세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금융채 5년물 금리는 작년 11월 연 2.14%에서 최근 연 1.7%까지 떨어졌고, 같은 기간 은행채 5년 물 금리도 연 2.14%에서 연 1.71%까지 떨어졌다. 많은 투자자들이 경제 성장 전망을 어둡게 보고, 주식과 같은 위험 자산보다 채권과 같은 안전 자산에 돈을 묻어 두려고 하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자금부 관계자는 “미국의 금리 인상이 가시화되는 시점에 채권 금리가 오르기 시작하면 변동·고정금리의 역전 현상도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고정금리가 변동금리가 낮아진 상황에선 고정금리로 돈을 빌리는 것이 유리하다고 조언한다.
송두한 NH금융연구소 소장은 “미국이 금리 인상을 예고한 만큼 장기적으로 볼 때 금리는 이미 상승 사이클에 진입했다”며 “지금의 상황에선 고정금리로 돈을 빌리는 것이 무조건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수시입출금 통장 금리가 정기예금보다 높아져
국내 금융권의 또 다른 새로운 현상은 일부 수시입출금 상품의 금리가 정기 예금 금리보다 높아졌다는 점이다.
한국씨티은행의 대표 수시입출금상품인 ‘씨티자산관리’은 10억원 이상의 돈을 맡긴 고객에겐 연 1.7%를 주는 반면, 대표 정기 예금 상품인 ‘프리스타일예금’과 ‘원더풀라이프적금’의 금리는 각각 연 1.35%(1년 만기 기준), 연 1.2%다.
한국SC은행도 대표 수시입출금상품인 ‘마이플러스통장’에 최고 연 1.6%의 금리를 주고 있지만, 정기예금 금리는 연 1.3~1.65% 수준이다. 두 은행 모두 수시입출금 상품으로 1조원 넘는 자금을 유치했다.
보통 은행들은 돈을 일정 기간 맡겨두는 정기 예금에 더 많은 이자를 주고, 돈을 자유롭게 빼서 쓰는 수시입출금 상품에는 페널티를 적용해 예·적금보다 낮은 이자를 준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예금 금리와 대출 금리의 차이인 예대 마진이 축소되면서 은행 입장에선 기존 방식으로는 수익성을 확보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시장금리가 내려가면 예금금리와 대출금리의 차이가 줄어서 은행 수익성은 떨어지게 된다.
예를 들어 대출 금리를 예금 금리의 2배로 한다고 할 때, 예금 금리가 3%라면 대출 금리로 6%를 받아 3%포인트의 마진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예금 금리가 1%로 떨어지면 대출금리도 2%대로 떨어져 마진 폭이 1%포인트 수준으로 줄어든다.
때문에 일부 은행들은 정기예금 유치 대신 월급통장 등으로 사용되는 수시입출식 예금에 금리를 더 얹어주는 방식으로 정기예금 수요를 수시입출금 예금으로 돌리고 있다. 수시입출금에 돈을 넣은 고객을 상대로 펀드·카드·보험 등을 ‘부가 금융상품’을 팔아 수수료 수입을 확대해 수익성 악화를 막겠다는 전략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준 인하 이후 많은 은행들이 예금 금리는 대폭 내렸지만, 수시입출금 상품 금리는 비교적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며 “은행 간 수수료 수입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예·적금과 수시입출식 예금의 금리 차이는 더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선비즈 남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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