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의 쾌거가 이어지려면 [이성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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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의 쾌거가 이어지려면

2015.11.17


근래 전해온 기쁜 소식 중에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우리에게 선사한 쾌거는 실로 으뜸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사회가 노벨상 증후군으로 속앓이를 하던 터라 더욱 그런가 봅니다. 그런데 사실 조성진의 쾌거는 노벨상 수상 소식보다 훨씬 더 값진 것입니다. 

조성진이 음악계의 거장 쇼팽(Fryderyk Franciszek Chopin, 1810~1849)을 기리는 바르샤바 피아노 콩쿠르에서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에게 주는 상을 받은 것입니다. 이는 매년 여러 명에게 주는 노벨상과 달리 5년에 한 번 수상의 영예를, 그것도 오직 한 연주자에게만 주는 상으로 희귀성이나 명성에서 가히 노벨상에 버금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조성진의 수상 소식을 듣는 순간 필자의 머릿속에 몇 가지 단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냉전이 한창이던 1958년 미국의 젊은 피아니스트 하비 레이번 밴 클라이번(Harvey Lavan Van Cliburn, Jr., 1934~2013)이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1회 차이콥스키 국제음악콩쿠르에서 피아노 부문 최우수 수상자로 선정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당시 소련공산당 서기장 니키타 흐루쇼프(Nikita Khrushcev, 1894~1971, 재임 1955~1964)는 “그가 최고야?(Is he best?)”라는 코멘트로 ‘왜 하필 미국인이야?’라는 아쉬운 뉘앙스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상식장에서는 활짝 웃는 모습으로 미국 출신 수상자를 마음껏 축하했고, 그 장면이 서방에 전해졌습니다. 냉전 시대의 아이콘이던 흐루쇼프가 이처럼 미국 출신 우승자를 축하하자 정치 외적인 여러 가지 해석과 함께 왠지 어색하다는 반응까지 나왔습니다.

우승자 밴 클라이번이 귀국하자 미국 사회는 크게 들떠서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카퍼레이드를 하는 등 성대한 잔치를 벌였습니다. 이는 음악가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고, 어떤 노벨상 수상자도 이런 ‘브로드웨이 환영’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자료 사진 참조)

그런데 4년마다 열리는 차이콥스키 국제음악콩쿠르에서 2009년 우리나라의 바리톤 최현수(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1958~ )가 성악 부문 1등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어냈습니다. 하지만 당시 우리 사회는 그의 성공 스토리에 잠시 떠들썩했을 뿐 곧 무덤덤해졌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웠지만 필자는 이런 세태를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에 비하면 이번 조성진의 쾌거에 대한 우리 사회의 뜨거운 반향은 훨씬 괄목할 만한 변화를 보여줍니다. 물론 또다시 일회성 이벤트로 끝날까 봐 왠지 불안하긴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인으로서 국립중앙박물관장직을 역임한 혜곡 최순우(兮谷 崔淳雨, 1916~1984) 선생님이 생각납니다. 

선생님은 파리에서 <한국보물전>(1961.11.26~1962.1.29)이 열리고 있을 때의 일화를 이렇게 전하셨습니다. 
“……1962년 1월 29일 전시 마지막 날에는 프랑스 문화부 장관 앙드레 말로가 전시가 끝난 후에 와서 두 시간을 감상했고, 금동반가사유상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불상’이라는 말을 남겼다.”(《혜곡 최순우 한국미의 순례자》 중에서)

앙드레 말로(Andr Malraux, 1901~1976)는 잘 알려졌다시피 《인간의 조건(La condition humaine)》(1933)의 저자이기도 하고, 진보성 강한 정치 사상가이기도 합니다.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 1890~1970, 재임 1959~1969) 대통령 밑에서 조각 초부터 끝까지 문화부 장관을 역임하며 드골 대통령을 보필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런 그가 <한국보물전>에 와서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는 사실도 흐뭇하기 그지없지만 장관 신분으로 두 시간 동안이나 여유롭게 문화유산을 감상하며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이 필자에겐 더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리 사회의 지도층은 혜곡 선생님이 이런 글을 남긴 깊은 뜻을 헤아려야 할 것입니다. 

조성진 현상을 보며 벌써부터 ‘일회성’을 걱정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마도 다른 분야의 ‘취준생’처럼 열악한 상황에서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는 문화예술 취준생들이 많아도 너무 많아서일 것입니다. 요컨대 건전한 예술인들이 마음껏 활동할 ‘마당과 유통 시스템’이 열악하다는 뜻입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시급히 나서서 해결해야 할 과제이기도 합니다.

요즘 국내 대기업에서는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습니다만, 같은 맥락에서 사회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음악회에, 전시회에, 연극 같은 문화 행사에 직접 찾아가 ‘돈을 내고’ 감상한다든가, 작은 작품이라도 직접 구매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문화 취준생’ 문제를 해결하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십시일반 국내 문화예술계에 힘을 보태는 것입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쾌거는 분명 우리 국민 모두에게 낭보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우리 사회가 문화 융성의 길을 모색하도록 촉구하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일회성이라는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면 몇몇 천재에 의존하는 외화내빈의 사회라는 비판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이성낙

뮌헨의과대 졸업. 프랑크푸르트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
현재 가천대 명예총장, 의ㆍ약사평론가회 회장, (사)현대미술관회 회장, (재)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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