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고발자 아무개 [박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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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고발자 아무개

2015.09.22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 별명이 ‘득팔이’였습니다. 이웃 학교에서 전근 오신 선생님이어서 별명이 없었는데, 촌지를 너무 자주 그리고 많이 받으시는 바람에 아이들이 똥파리 대신 선생님 존함 중에서 ‘득’자 하나를 넣어서 득팔이로 부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득팔이라는 별명이 학생들의 공감을 얻으면서 급속도로 퍼져서 우리 반뿐만 아니라 전교생이 아는 별명이 되었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이 별명을 한동안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운명의 날이 찾아왔습니다. 한 친구가 아이들이 담임 선생님을 득팔이라는 별명으로 부른다고 고자질을 한 것입니다. 화가 나신 선생님은 당신이 맡은 반 아이들뿐만 아니라 다른 반 아이들까지 불러다가 별명을 만든 진원지를 캐고 다니셨습니다. 하루 종일 반 분위기는 쑥대밭이 되었고 점심시간쯤, 학생들은 선생님께 고자질을 한 친구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얘들아, 아무개가 고자질한 거래!” 
“뭐? 그 새끼 미친 거 아냐?” 

학생들이 아무개에게 우르르 몰려갔습니다. 겁이 난 아무개는 교무실로 도망을 갔고 분이 풀리지 않은 학생들이 서로 입을 맞췄습니다. 득팔이라는 별명을 처음 만든 친구가 다름 아닌 선생님께 고자질을 한 아무개였다고 거짓말을 하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다시 수업시간이 되어 교실에 들어온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심문을 이어갔습니다. 
“너희들 아직도 정신 못 차렸구나. 누가 처음 내 별명을 불렀는지 빨리 말해!” 

우리 반 학생들은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아무개를 손으로 가리키며, “아무개가 시작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이후의 상황은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습니다. 필자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선생님의 체벌이 당연시되던 때였고, 화가 난 선생님은 몽둥이를 들 새도 없이 손과 발이 먼저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안 그랬어요. 선생님!” 
“아니에요. 아무개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선생님.” 

아무개가 아무리 자신의 결백을 주장해도 무리를 지어 죄를 뒤집어씌우는 반 학생들 전체를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득팔이 선생님께서는 하루 종일 흥분해 있었던 터라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심신미약의 상황이셨고 진실이야 어떻든 분풀이의 대상이 필요했던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은 아무개를 마구 구타하기 시작했습니다. 교단 구석에서 쭈그린 채로 선생님의 계속되는 발길질 세례를 받던 아무개는 “살려주세요. 선생님.”을 외치다가 실신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고자질을 한 아무개를 무고(誣告)했던 학생들이 방과 후에 이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우리가 거짓말을 해서 아무개가 너무 많이 혼났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하지만, 아무개가 처음부터 고자질을 하지 않았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 아냐?” 설왕설래 끝에 ‘아무개에겐 다소 미안하지만 이번 일의 발단이 아무개로 시작된 거니, 아무개 역시 이번 일에 책임을 져야 하고, 다만 너무 많이 맞은 것 같으니 우리가 좀 다독여 주자’로 결론을 맺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그 당시 아무도 “우리가 잘못했다. 미안하다.”라는 얘기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촌지를 받으면서 학생들을 차별했던 담임 선생님 편에 서서 우리를 고자질한 아무개를 우리는 배신자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개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 필자는 그때의 선택에 계속 후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왜 우리는 그렇게 무서운 생각을 했을까요? 고작 초등학교 5학년밖에 안된 우리들이 어떻게 그런 극악한 생각을 하게 됐는지 그 이유를 당시에 알기는 힘들었겠지만 적어도 그 일이 있고 며칠 후에는 아무개에게 우리가 잘못했다고 얘기를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흘러서 어른이 된 후, 동창회 모임에서 “야, 아무개야. 그때 우리가 미안했다.”라고 얘기하며 수십 년 묵은 아픔을 서로 털어내고 치유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아무개는 기다려 주지 않았습니다. 같은 해 여름 뚝섬으로 물놀이를 갔던 아무개가 영영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필자는 아무개를 기억할 때마다 늘 가슴 한 편이 시립니다. 

우리는 왜 그렇게 잔인했을까요? 사실 득팔이라는 별명을 처음 지은 학생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너 나 할 것 없이 이 별명이 너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삽시간에 별명이 퍼져나갔기 때문에 그 진원지를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사실 중요한 것은 '왜 담임 선생님 별명이 득팔이가 됐는가?'하는 것이지 '누가 처음 담임선생님 별명을 불경스럽게 득팔이로 불렀는가?'가 아닙니다. 

아무개는 아무리 부도덕한 선생님이지만 ‘득팔이’라고 부르는 것을 용납하지 못해서 담임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을 겁니다. 이런 아무개를 우리는 배신자라고 생각했던 거였고 다수의 힘으로 배신자를 궁지에 몰아넣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 지었던 것이었습니다. 

득팔이 선생님은 2학기에도 열심히 촌지를 받았고 여전히 학생들을 차별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담임 선생님이 노발대발하며 별명의 진원지를 찾으려고 했을 때, “자신을 돌아보세요.”라고 용기 있게 얘기하지 못하고 당장 이 난리의 계기를 제공한 친구에게 화살을 돌린 우리는 비겁하고 못난 친구였습니다. 결국 세상은 변하지 않았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선생님에게 “아이들이 선생님을 ‘득팔이’라고 부릅니다.”라고 얘기한 그 친구만 억울한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지난 달 하나고등학교의 입시 비리가 알려졌습니다. 하나고가 입학생의 성비(性比) 조정을 위해 성적을 조작했으며 이를 알게 된 교사들의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학교는 무시와 은폐로 일관했던 것입니다. 당시 고발을 한 전경원 교사는 정의로운 학교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어려운 일에 나섰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곤경에 처했습니다. 하나고의 학부모들이 공익제보를 한 교사를 겨냥해 교무실에서 “교단을 떠나라”라며 시위를 한 것입니다. 

하나고의 부적절한 행위가 여러 곳에서 드러나고 있는데 학부모들은 그런 부정행위를 들춘 선생님을 오히려 질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 학부모는 학교 내부 게시판에 “만일 그것이 진실이었어도 지금 공부하는 학생들, 특히 앞으로 입시가 코앞에 있는 고3들, 졸업생들을 생각하면 꼭 그런 방법으로 해결을 보고 싶었을까, 진정한 선생님이라면 그렇지 않았을 것 같은 마음이 들어 답답했다”고 심경을 썼다고 합니다. 

10여 년 동안 열심히 공부시켜 전교 1등도 들어가기 어렵다는 명문 고등학교에 자녀를 입학시킨 학부모들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십 년 동안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선생님의 교권을 지켜주는 인내심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영국의 이튼 스쿨이 명문인 이유는 570여 년의 역사 속에 훌륭한 인재들이 배출된 학교이기도 하지만 1,2차 세계대전 때, 한 해 졸업생의 절반이 전사했을 정도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지켰기 때문입니다. “불의를 보고도 너만은 눈감고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가 가훈인 집은 없을 겁니다. “남의 곤란에 처했을 때가 네가 약진할 수 있는 기회다.”가 가훈인 집도 없을 겁니다. 그런데 혹시 우리는 은연중에 자녀들에게 이렇게 가르치고 있지는 않은지요? 

우리나라에서 직장인을 대상으로 중산층을 판단하는 기준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입니다. 1. 부채 없는 아파트 30평 이상 소유, 2. 월 급여 500만원 이상, 3. 2,000 CC급 중형차 소유, 4. 예금액 1억 원 이상 보유, 5. 해외여행 1년에 한 차례 이상 다닐 것. 반면에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에서 중산층을 판단하는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페어플레이를 할 것, 2. 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가질 것, 3. 독선적으로 행동하지 말 것, 4.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대응할 것, 5. 불의, 불평, 불법에 의연히 대처할 것. 

필자는 내 자식들이 영혼 없는 중산층으로 성장할까 두렵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필자는 친구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짐을 평생 안고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득팔이 선생님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개과천선을 할 기회를 우리가 놓쳤기 때문입니다. 하나고 문제 역시 다를 바 없는 것 같습니다. 정작 방귀 뀐 사람은 냄새만 피우고 전쟁터에서는 사라졌는데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외면하는 건지 정말 모르고 있는 건지…..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박상도

SBS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현재 SBS TV 토요일 아침 '모닝와이드'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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