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세와 민생경제 [김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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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세와 민생경제

2015.09.18


올해 초 14년 타고 다니던 SUV 애마를 팔았습니다. 자동차등록 이전 절차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너무 서운해서 매입자의 양해를 얻어 내가 마지막으로 몰았습니다. 매입자의 주차장에 도착해 손때가 묻은 검은 자동차 열쇠를 건네줄 때는 비록 무생물이었지만 애환을 함께한 세월이 생각나 잠간 목이 메었습니다. 귀에 익은 디젤차의 소음도 마지막으로 들었습니다. 이제 헤어질 시간이야, 그동안 고마웠어라고 속으로 되뇌면서 “잘 타세요”라고 새 주인에게 부탁하고 한참 차를 바라다보다가 돌아섰습니다.

그동안 발이 되어 전국의 곳곳을 다닌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출고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주말에 아내가 강릉고속도로에서 한번 달려보자고 해서 속도제한을 무시하고 가속하여 회전하다가 코너에 숨어 있던 사이드카 경찰관의 단속에 걸렸고 사정사정하여 노란 경고장으로 끝낸 일도 있었습니다.

경유 가격이 1리터 600원대였던 좋은 시절에 사서 1,300원을 넘은 시대에 팔았습니다. 지나간 겨울에 배터리도 새것으로 갈아 폐차 때까지 타려고 했지만 폐차 보조금을 준다는 조건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보조금을 목표로 한 사람들로 인한 예산의 누수를 방지하기 위해 일정 기간 이상의 소유자가 탄 차로서 잘 굴러간다는 보증을 차량검사기관에서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잘 굴러가면 왜 폐차를 할까요, 그대로 타고 다니지. 폐차 보조금 정책에 이해가 갈듯 말듯 했습니다.  

차를 판 이유는 무엇보다 자동차세가 터무니없이 비싸서 울화통이 터졌기 때문입니다. 자동차 제조 기술의 향상도 눈부시지만 6개월마다 한 번도 거르지 않는 엔진 오일 교환 등으로 관리를 철저히 하여 잔 고장 없이 20만 킬로미터 이상을 무사고로 친환경 운동인 '자동차 10년 타기'도 초과달성했는데 차량의 감가상각에 반비례하여 자동차세의 비중은 점점 높아져 급기야 한 해의 자동차세가 10퍼센트도 넘게 되었단 말입니다. 그러니 몇 년 지나면 자동차 값이 자동차세로 저절로 사라질 판이었습니다.

자동차세가 재산가치에 대한 과세냐, 아니면 운송수단 보유에 대한 과세냐의 논란이 있지만 자동차의 감가상각에 비해 장기보유 경감율은 너무 인색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고물차를 인터넷 직거래로 팔고 다시 연식이 새로운 차를 판 가격의 일곱 배를 주고 샀는데 세금은 놀랍게도 고물차의 두 배일 뿐이었습니다. 건강보험료 부과 점수는 아주 조금 올랐습니다. 

자동차세는 가격이 아니라 배기량에 비례하는 세금을 매겨 소득수준에 대한 역진성이 있죠. 아직도 서민 아파트를 방문해보면 서울 00 XXXX , 인천 00 XXXX 등의 지역 번호판을 단 단종 승용차가 적지 아니 보입니다. 어쩔 수 없이 절약하려고 고물차를 끌고 다니는 서민과 중산층의 등살이 휘는 셈입니다. 이런 사안의 개선은 당연히 “입법부는 만능이다” 라는 사고방식을 자랑하는 국회가 나서줘야죠. 그런데 운전기사를 대동하고 어디서나 즉각 출발하도록 미리 시동을 걸어놓은 고급차에 앉아 차량유지비까지 국민의 세금으로 보조받으며 젠체할 사람들이 민생경제니 뭐니 외치면서도 이런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자동차세 하나를 보더라도 입과 몸이 따로 노는가라고 비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이런 사정을 뻔히 알 텐데 왜 개선을 하려 들지 않았는가. 머리를 굴려봅니다. 국회의원들이, 호의호식하는 가족들이 비싼 차를 타고 다니니까 세금이 늘어날까 두려워하여 가격에 비례하는 세제의 도입에 미온적인 것은 아닌가, 아니면 외제차의 로비가 있나 하는 막연한 의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경제민주화니 1 대 99니 편 가르기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지만 막상 자신들이나 권속들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에 대해서는 세금을 더 내기를 주저한다면 1퍼센트에 들고 싶어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드는 것이죠. 쉽게 말해 자동차세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우리 사회에 구현하기를 싫어한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또 있습니다. 우리나라 자동차보험의 수지를 보면 외제차가 국산차의 보험금을 좀먹고 있습니다. 2014년 국산차는 7조 원을 보험료로 내고 4조 원의 보험금을 받았는데 외제차는 9천억 원을 내고 1조1천억 원을 받아 사고차 수리비 등으로 썼답니다. 서민 대중에게 해로운 이런 불합리를 시정하려면 외제차만 적용하는 자동차 보험이라도 새로 법제화해야 하지 않을까요. 

과거에도 아파트 재산세 같은 불합리가 존재했으나 10여 년 전에 거센 조세저항에 부딪혀 개선되었습니다. 재산세를 가격이 아닌 평형으로 매겨 지방보다 몇 배의 고가주택을 소유한 서울의 납세자들이 지방 중소도시의 주민들보다 훨씬 적은 세금을 낸 것이죠. 자동차세의 경우도 다른 요소도 있겠으나 시가를 우선적으로 고려하여 과세하는 합리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부유해서 목소리도 클 부자들의 조세저항이 만만치 않겠지만 서너 배 비싼 고급 외제 승용차를 가진 사람들이 배기량으로만 쳐서 서민대중적인 국산차와 비슷한 세금을 내게 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봅니다. 

요즘 여당의 중진 심재철 국회의원이 자동차세 관련 지방세법 개정안을 마련하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벌써 외제차를 중개하는 사이트에서는 심 의원에게 누구를 대변하느냐고 비난하는 글이 올라옵니다. 19대 국회의원들은 자동차와 민생이 무엇인가를 숙고하여 자동차세의 합리화에 힘써 주기 바랍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서울경제 근무. 동유럽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 과학부, 뉴미디어부, 인터넷부 부장등 역임. 우리사회의 개량이 글쓰기의 큰 목표.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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