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그린빅뱅'의 도전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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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그린빅뱅'의 도전

2015.09.02


최근 제주특별자치도청 주변에는‘제주그린빅뱅’(Green Big Bang)이라는 말이 등장했습니다. 파격적인 이 단어를 정책 용어로 띄운 사람은 원희룡 제주도지사입니다. 

빅뱅은 원래 우주 생성의 대폭발 이론으로 획기적 변화를 의미하는 파생어로 쓰이기도 합니다. 환경을 상징하는‘그린'을 앞에 붙여 만든 ’그린빅뱅‘은 제주 섬 전체를 ‘녹색산업’의 융합 메카로 왕창 바꿔놓겠다는 원희룡 도지사의 정책 구상입니다. 

제주도는 ‘제주그린빅뱅추진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정책 구상을 구체적 프로그램으로 추진할 엔진을 단 것입니다. 과거 정부의 녹색성장을 조율했던 인사, 전기공학자, 산업계와 학계의 에너지 전문가, 건축가, 기업분석가, 투자전문가, 법률학자, 국제회의전문가, 신재생에너지 회사 최고경영자가 망라되어 있고 제레미 레프킨 등 외국 전문가들도 자문합니다. 

제주도는 2030년 ‘탄소 없는 섬’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2030년 약 37만 대로 예상되는 운행 차량을 모두 전기자동차로 전환하고, 제주도가 쓰는 전력도 전부 풍력과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는 정책 목표가 설정되어 있습니다. 원희룡 지사 이전부터 중앙정부와 제주도는 스마트그리드 실증단지, 전기자동차보급시범지역, 육상 및 해상풍력단지, 가파도프로젝트 등 저탄소 녹색성장의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자체의 비전 부재와 참여 주체들의 소통 부재 및 시스템 부재로 프로그램은 파행되거나 시행착오를 되풀이했습니다. 작은 섬 가파도 풍력발전 사례가 시행착오의 상징입니다.  

그린빅뱅추진위원회는 ‘탄소 없는 섬’ 구현 방안으로 전기자동차, 신재생에너지, 스마트그리드, 전기저장장치(ESS) 등 관련기술과 산업을 융합 발전시키는 일종의 실리콘밸리 스타일의 녹색산업 생태계 형성을 제시합니다. 12월 파리에서 열리는 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21)에 제주그린빅뱅을 글로벌쇼케이스로 보여줌으로써 자체 추진력도 얻을 요량입니다. 

인구 60여 만 명, 동중국해의 북단에 자리잡은 지정학적 위치, 약 1천800평방킬로미터의 섬 넓이 등으로 제주도는 21세기 의제인 저탄소 사회의 모범 사례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국내외 전문가들이 그린빅뱅에 관심을 가지는 요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프로그램이 성공한다면 기후변화시대에 나라 안팎으로 긍정적 파장을 일으킬 것입니다. 

그러나 그린빅뱅의 그림은 그럴듯하지만 실행은 도전적 과제입니다. 

제주그린빅뱅의 핵심 개념은 신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한 산업 생태계 조성입니다. 전기자동차 37만 대가 굴러다녀도 화석연료로 생산하는 전력에 의존한다면 그린빅뱅의 의미는 퇴색합니다. 

첫 번째 풀어야 할 과제는 주민의 에너지 인식체계입니다.
제주도민은 다른 지역 주민과 마찬가지로 한국전력에 의한 중앙전력공급체계 속에 살아왔습니다. 값싼 전기를 불편 없이 소비합니다. 전기는 한국전력이 주면 받아쓰면 되는 것이지 주민이 생산할 수 있는 상품으로 인식하지 않습니다. 농업과 관광업이 주요 산업인 제주도에서는 공산품이나 에너지를 생산해서 판다는 것은 생소한 개념입니다. 

신재생에너지 산업이 발전하고 있는 덴마크 독일 영국과 미국의 동북부지역을 보면 모두가 과거 제조업이 번창했던 곳입니다. 주민들이 산업에 대한 인식이 깊고 성장 동력에 목매어 있는 곳입니다. 기술에 대한 주민 인식도 높을 뿐 아니라 미래를 위해 오늘의 높은 전기료를 감수합니다. 

건물 밭 야산 바다에서 전기를 생산해서 소득을 올릴 수 있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 그러나 그게 하루아침에 돈방석이 되지 않는 장기 계획이어야 한다는 인식을 주민에게 교육하고 실제로 다양한 파일럿 프로젝트를 통해 경험할 수 있게 하는 일은 절실하지만 쉽지 않은 과제입니다. 신재생에너지 생산을 큰 기업 위주로만 추진하는 방법도 있으나 주민이 소외된 그린빅뱅은 의미도 약하고 갈등의 소지를 키울 것입니다. 

두 번째 풀어야 할 과제는 전력공급체제를 독점하고 있는 한국전력으로부터 협력을 얻어내는 문제입니다. 
제주도가 풍력과 태양광발전에 의한 그린에너지 생태계로 가려면 스마트그리드는 필수적이며 에너지저장장치, 연료전지생산, 전기자동차 운행 등이 융합되는 그야말로 그린빅뱅이 되어야 합니다. 그게 가능하려면 한국전력의 시스템이 움직여줘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기술전문 인력과 산업정책을 총괄하는 중앙정부 부처의 관료 전통이 결합된 한국전력이 제주도의 그린빅뱅 구상에 맞춰 유연성을 발휘해줄지 의문입니다. 중앙정부의 정책적 지원 의지와 한국전력의 시스템 변화가 수반되지 않으면 '그림의 떡'으로 끝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원희룡 지사가 이 두 가지 도전을 어떻게 풀어 가느냐에 따라 제주도의 신산업생태계가 팽창하는 그린빅뱅이 될 수도 있고, 바람 빠진 고무풍선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한 가지 긍정적 신호는 바로 12월 파리에서 열리는 기후변화당사국총회에서 합의가 예상되는 신 기후변화체제입니다. 한국은 2030년 예상 탄소배출량을 기준해서 37% 온실가스 감축안을 유엔에 제출했습니다. 협정이 타결되면 한국의 에너지 정책은 큰 변화가 불가피합니다. 지금까지 국가 에너지정책의 액세서리에 불과했던 신재생에너지 분야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합니다. 이때 제주그린빅뱅 프로젝트는 저탄소 에너지정책의 실증적 사례로 조명받게 될 것입니다. 

7년 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토마스 프리드먼은 그의 저서 ‘뜨겁고 평평하고 붐비는 세계’에서 "청정 에너지 해법을 개념화하고, 디자인하고, 생산하고, 공급하고, 고취하는데 앞서나가지 못하면 기후변화시대에 세계의 리더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미국의 신재생에너지 정책의 더딘 진행을 질타하며 그 성공 열쇠를 시스템 변화라고 지적했습니다. 기존의 전력공급시스템의 경직성이 저탄소 사회의 방해물이 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오바마 미국정부가 에너지정책의 대변화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프리드먼의 지적은 바로 한국의 현실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기후변화시대에 그린빅뱅 개념은 제주도에만 한정된 현안이 아닙니다. 지금은 에너지혁명 전야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김수종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 생활. 환경과 지방 등에 대한 글을 즐겨 씀.
저서로 '0.6도' '다음의 도전적인 실험' 등 3권이 있음.

박대문의 야생초사랑

까치고들빼기 (국화과) (Youngia chelidoniifolia Kitamura)

올해는 한여름 더위가 참으로 사납게 기세를 부렸습니다. 지난달 처서를 하루 앞둔 주말에 지리산 청학동을 찾았습니다.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시는 배달겨레의 성전이자 수도장을 구축할 일념으로 40년 동안 한결같이 솟대 돌탑을 쌓아 올렸다는 청학동 삼성궁을 둘러보고 나서 청학동을 감싸고 있는 명산 삼신봉을 올랐습니다.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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