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기억하는 앨리슨 파커의 마지막 순간 [박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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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기억하는 앨리슨 파커의 마지막 순간

2015.09.01


끔찍한 여러 발의 총성이 울려 퍼지고 여성의 비명이 이어졌습니다. 범인이 찍은 영상을 보면 한 여성 리포터가 총성이 울려 퍼진 후 깜짝 놀라 도망을 치는 모습이 잡혀 있습니다. 아마도 총상을 입은 것도 모르고 현장을 피하기 위해 필사의 탈출을 시도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생방송 중 사상 초유의 살인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 소식은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전파됐으며 우리나라도 공중파와 케이블, 종편 할 것 없이 당시 상황을 여과 없이 방송했습니다.  

미국 버지니아 주 지역 방송사의 24살 파커 기자가 생방송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카메라기자 27살 워드가 현장을 촬영하던 중 갑자기 총성이 울려 퍼집니다. 

누군가 두 기자를 향해 총을 쏜 겁니다. 

바닥에 떨어진 카메라가 현장을 비추는 사이에도 비명이 이어졌고 스튜디오에 있던 앵커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잠시 뒤 자세한 내용 전해드리겠습니다."(당시 스튜디오에서 방송을 하던 킴벌리 맥브룸, WDBJ 앵커의 멘트) 

총에 맞은 두 기자는 현장에서 숨졌습니다. 

용의자는 같은 방송사에서 기자로 일하다 해고된 41살 베스터 플래네건. 

총을 쏜 뒤 달아난 플래네건은 스스로 찍은 범행 장면을 SNS에 올렸습니다.  

대부분의 국내 방송사는 위와 같은 내용의 뉴스를 사고 당시의 영상과 함께 보여주었습니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시청자들에게 사건 당시의 영상을 보여주는 것이 장황한 설명을 해 주는 것보다 더 이해가 빨리 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건의 영상이 확보되었다면 그것을 보여 주는 것이 시청자에 대한 최고의 서비스라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보도 행태가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해 고민한 흔적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죽기 직전 공포에 떠는 피해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과연 윤리적일까요? 당신이 피해자의 가족이라면 피해자의 마지막 모습이 대중에게 여과 없이 공개되는 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세월이 흐른 뒤, 어느 날 당신이 인터넷 서핑을 하다 사건의 동영상을 다시 접하게 되어, 잊었던 기억을 되살리게 된다면 고통스럽지 않을까요? 

필자는 필자의 생각이 항상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필자에게 “대중의 궁금증 해결을 위해 이런 잔인한 사건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것이 과연 옳은 일입니까?”라고 물어본다면, 단호하게 “아니요.”라고 대답할 겁니다. 

미디어 종사자들의 윤리적 선택에 관한 가장 기초적인 사고의 틀을 제공하는 포터박스(Potter Box)라는 모델이 있습니다. 하버드대학교 신학대학의 랄프 비 포터주니어(Ralph B. Potter, Jr.)교수가 고안한 모델로, 미디어 보도에 있어서 아래 도표와 같은 과정을 거쳐 윤리적 판단을 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이 모델은 매우 단순합니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1. 그 사건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2. 그 사건의 보도에 있어서 어떠한 가치 판단에 근거하여 결정한 것인지 즉, 논리적, 사회문화적, 미적인 가치 판단에 의해 보도할 내용과 장면을 취사선택하는 단계를 거쳐, 3. 이러한 단계를 거친 결정이 잘 알려진 철학적 원칙들 예를 들면, 공자의 중용의 법칙, 칸트의 정언명령, J. S.밀의 공리주의 원칙에 적합한지를 살펴보고, 4. 누구에게 충성하여 보도를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네 단계의 과정을 거치면, 논리적으로 완성된 결정을 내리게 되며 결과적으로 판단의 실수가 적어진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번 사건의 분석은 

1. 생방송 중 일어난 살인사건의 범인은 인종적 차별과 성 소수자로서의 차별에 대한 복수심으로 범행을 저지름. 방송사와 신문사는 생생한 현장화면을 입수한 상태임. 동료 기자들이 살해당하는 장면은 이미 WDBJ를 통해 보도됨. 여기에 범인이 SNS에 올린 가해자의 시각에서 찍은 더욱 폭력적인 영상이 확보됨. 

2. 이러한 폭력적인 영상을 보도하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인가? 이 영상을 보여줌으로써 얻는 사회적인 이익과 이 영상이 보도 됨으로써 어떤 특정 개인이 상처를 입을 수 있는 잠재적인 요소는 없는가? 

3. 칸트의 정언 명령, “너 자신과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을 결코 단순히 수단으로 취급하지 말고,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대우하도록 행동하라.” 또는 공자의 중용의 원칙에 입각하여 보도에 대한 판단의 근거를 만듦. 특히, 방송사 또는 신문사마다 갖고 있는 윤리강령 중 사건의 피해자에 대한 배려 사항을 고려한다. 

4. 언론은 시청자 또는 독자에게 충성하여 진실을 보도해야 하지만, 진실은 모든 것(특히 폭력적 영상)을 다 보여주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며, 보도의 내용 중 취사선택하여 공공의 선을 달성하도록 한다. 따라서 가해자가 SNS에 올린 동영상은 보도하지 않는다. 

이러한 논리 구조를 따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가해자의 시각에서 바라본 영상을 시청자들이 보게 될 경우, 단순히 폭력적인 영상에 노출되는 것 뿐만 아니라 사건을 보는 시각을 자칫 가해자의 위치에서 이해하게 되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습니다. 즉, 생방송 중 송출된 영상을 본 사람은 ‘누가 저런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을까?’를 생각하게 되지만, 가해자가 SNS에 올린 영상을 본 사람은 ‘왜 저 두 사람을 죽였을까?’를 생각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보도한 대부분의 언론들은 그 어떤 윤리적 판단도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뉴스에서 가해자가 직접 찍은 영상을 보여주었으며, 뉴욕 데일리 뉴스는 지난 달 27일 신문의 1면에 가해자가 찍은 영상 3컷을 ‘처형(Executed)’이라는 단어와 함께 실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신문과 뉴스 시간에 가해자가 찍은 영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보도 행태를 보고, 사람들은 ‘죽음의 포르노(Death Porno)’로 장사를 하는 저속한 언론이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이는 언론사가 숭고한 공공의 이익을 위한 집단이 되는 것을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무한 경쟁 시대에 생존이 우선시되는 사기업의 성격이 강해지면서, 자본의 논리에 사명의식이 잠식당하면서 벌어진 필연적 결과입니다. 

오늘날 언론사의 보도 행태의 윤리적 판단 과정을 포터박스 모델에 적용하면 아래 도표처럼 됩니다.

1. 사건이 벌어지면 이 사건이 얼마나 큰 사건이고 충격적인 사건인가를 판단한다. 

2. 쇼킹한 사건일수록 심층보도를 준비한다. 타사의 편집 동향을 예의 주시하면서 우리의 보도가 더 경쟁력을 갖도록 모든 자료를 확보한다. 경쟁력은 돈이다. 

3. ‘피해자를 처형하는 듯한 가해자의 영상을 보여주는 것이 옳은 일일까?’를 잠시 고민한다. 하지만 ‘우리가 안 쓴다고 해도 어차피 다른 곳에서 분명히 쓸 것이다’라는 생각이 밀려온다. 회사가 어렵다. 우리만 안 쓴다면 회사는 더 어려워질 것이다. 

4. 독자들은 모든 것을 볼 권리가 있다. 따라서 피해자와 그 가족과 친지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독자의 궁금증은 해결되어야 한다. 시청률은 당연히 올라갈 것이다. 

대충 이 정도의 결정과정을 거쳤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결정 과정의 이면에는 공공의 선이라든가 정의, 도덕, 휴머니즘 같은 가치 대신 ‘돈’이 추악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The RTDNA Code of Ethics라고 하는 라디오 텔레비전 디지털 뉴스를 담당하는 사람들을 위한 윤리 강령이 있습니다. 이 윤리 강령에는 ‘보도에 따른 개인의 피해를 최소화하여야 하고 특히, 어린이와 재난의 희생자 그리고 상처받기 쉬운 개인에 대한 각별한 배려를 해야 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보도 행태를 보면서 도대체 이런 강령들은 지키라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우리는 이런 강령이 있습니다’라고 장식용으로 보여주려고 있는 것인지 헛갈립니다. 

이 끔찍한 사건은 여과 없이 전 세계에 보여지면서 우리 모두에게 ‘이렇게 배려심 없는 끔찍한 사회에 살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 주었습니다. 24살 앨리슨 파커와 27살 아담 워드가 생방송 중에 전직 동료인 플래네건의 총격으로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신중하지 못한 보도행태와 무분별한 인터넷 질서에 의해 앨리슨 파커의 겁에 질린 마지막 순간을 너무 많이 자주 보게 됐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 비극으로 돈을 벌었을 것입니다. 

희생자들의 직장 동료인 숀 레이놀즈가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사진과 설명은 우리의 언론이 앞으로 어떤 보도 행태를 보여줘야 하는지를 일깨워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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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끔찍한 비디오 대신 앨리슨 파커와 아담 워즈가 기억되길 바라는 자신들의 모습입니다.-----숀 레이놀즈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박상도

SBS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현재 SBS TV 토요일 아침 '모닝와이드'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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