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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틱 자본과 매력 자본
2015.07.30
영화 <관상>에서는, 한 기녀가 사내들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왜 그런지 관상을 봐 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천재 관상가는 “동그스름하게 고운 얼굴이기는 하나 남들의 눈에 띄지 않으니 이러면 사내들이 줄줄줄”이라 말하면서 능청스레 수박씨 하나를 그녀의 코에 붙여 놓습니다. 이후 기녀는 수박씨 대신 돼지 피로 코에 애교점을 만들어 한양에서 잘 나가는 기녀가 됩니다. 콧등 왼쪽에 있는, 일명 ‘미인점’입니다. 바로크시대 교태의 중요한 표현 중의 하나도 프랑스어로 무슈(mouche)라는 애교점이었습니다. 처음엔 여인들이 여드름이나 뾰루지, 마마 자국과 같이 피부에 보기 싫은 흠을 가리기 위해서 호박단이나 벨벳으로 패치를 만들어 붙였습니다. 그러다 나중에는 목덜미나 가슴 위와 같이 은밀한 곳, 남자들의 자극적인 시선을 받고 싶은 곳에도 붙입니다.애교점은 패치 위에 보석을 박기도 하며, 별, 나비, 토끼, 여우와 같은 모양으로 만드는 등, 자신의 외모를 위해 유희의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얼굴의 어디에 붙이느냐에 따라 표정이 달라지는 것을 이용하여, 눈 근처에 있으면 쾌활, 입술 주위는 장난기, 이마는 위엄, 볼 위는 친절, 입술 아래는 신중이라는 의미를 두기도 했습니다.검은 애교점은 하얀 피부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방법이었는데, 예나 지금이나 하얀 피부는 여인들의 한결같은 로망이었나 봅니다. 하얀 피부를 위해서 연백(鉛白) 성분의 백분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집어쓰고, 푸른 정맥이 드러나는 창백한 피부를 강조하기 위해 아예 정맥을 도드라지게 파랗게 그리기도 하였다니 말입니다. 그리스·로마시대에는 안티모니(antimony)에서 추출하는 콜(kohl)이나 오징어 먹물을 이용해 눈이 커 보이도록 아이라인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16세기에 베네치아 여인들은 가지과에 속하는 벨라도나(belladonna) 즙을 이용하여 눈동자가 커 보이도록 하였습니다. 동공 확장의 특징을 보이는 벨라도나 알칼로이드가 동공을 마비시키는 독성을 갖고 있어 위험한데도 말입니다. 요즘엔 주변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어디서든 셀카를 찍는 모습을 봅니다. 이른바 ‘얼짱’ 각도로 사진을 찍는데, 대개 눈이 크고 얼굴이 작게 나오도록 휴대폰을 높이 들고 턱을 아래로 당겨 찍습니다. 청소년을 비롯한 젊은이들은 사진이 맘에 들지 않을 때면 바로 디지털 성형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스마트폰에 깔린 앱을 이용하여 손쉽게 눈매를 보정하는데, 앞트임 뒤트임을 하고 아이라인도 그리고 쌍꺼풀도 만듭니다. 그러고 보면 예전이나 지금이나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은 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특히 현대사회에는 사회학자 캐서린 하킴이 말한, 에로틱 자본(erotic capital)이 도드라지는 양상입니다. 그녀는 미모, 성적 매력, 의상 감각, 활기, 몸매로 이루어진 에로틱 자본이 높을수록, 여성의 경우 승진에 도움이 된다고 말합니다. 젊은 세대들이 취업과 결혼을 준비하며 성형을 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에로틱 자본에 대한 추구는 이미 사회논리에 맞춰져 있다는 생각입니다. 개인의 선호와 취향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이미 보이지 않는 사회논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에로틱 자본의 위력에 포획되지 않는, 매력 자본의 힘을 새롭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에로틱 하나에 쏠리고 매몰되지 않는, 자신의 존엄성과 인품과 개성을 중시하는 사회이길 바라는 것입니다. 외양보다는 느낌과 분위기의 힘을 믿는 세대의 출현을 기대해 보는 것입니다. 미모, 성적 매력, 의상 감각, 활기, 몸매라는 에로틱 자본에 휘청대지 않는, 나의 매력 자본을 찾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아닌 가 생각해봅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안진의
한국화가. 홍익대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색채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홍익대에서 채색화와 색채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화폭에 향수 사랑 희망의 빛깔로 채색된 우리 마음의 우주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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