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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치 예찬(禮讚)
2015.07.29
제철 과일이란 말이 있듯이 생선도 제철에 먹어야 제맛입니다. 농어는 6월, 민어는 7월, 하는 식이지요. 여름철에 특히 즐겨 먹는 아귀도 실은 겨울에 주로 잡힙니다. 일본 사람들은 7월에 갯장어(‘하모’)를 먹지 않으면 여름을 제대로 보낸 게 아니라고까지 말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갯장어는 여수가 유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 여름철에 여수에 간다면 연전에 거기서 땀 흘리며 먹던 갯장어탕이 생각날 정도입니다. 제주가 자랑하는 어류로서 방어는 겨울이 제맛이며 자리돔은 3월 중순에서 6월에 먹어야 제대로 먹을 수 있습니다. 갈치는 남획으로 요즘 제주에서마저 귀하다지만 그래도 거의 사철 갈치가 잡힌다는 사실은 갈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축복일 것입니다.
7월도 끝날 무렵입니다. 이 한여름의 무더위를 잊게 해줄 제주 음식은 무엇일까요? 누가 뭐래도 저는 한치라고 하겠습니다. 한치 메뉴로는 한치 물회가 가장 인기가 높고 그 다음이 한치 회. 한치 회덥밥의 순일 것입니다. 6년 전 제주에 내려와 첫 여름엔 한치 물회, 그것도 잘 모를 때여서 냉동 한치 물회만을 먹어보았기에 한치에 대한 각별한 체험을 하지는 못하였던 셈입니다. 그래서 이듬해는 작심하고 한치 회부터 먹어보겠다고 중문의 한 유명 식당에 가서 한치 회를 시켰더니 한참 있다가 종업원이 투명한 유리쟁반에 담은 한치 한 접시를 담아 왔습니다. 빛이 어른거릴 정도로 가늘게 썰어 투명에 가까운 흰 빛깔로 반짝거리는 한치가 모양도 좋게 접시 위에 놓여져 있었습니다. 꿈틀거리기도 하는 것을 보니 산 놈임은 물론이고 아침에 들어온 놈, 소위 '당일바리'임에 틀림없었습니다. 우선 미끈한 몸통 살 한 점을 집어 초장에 찍어 입안으로 넣어보니 녹는다는 말이 딱 맞다고 하겠습니다. 다리 부분을 달랑 집어 입에 넣어 보니 세발 낙지처럼 혀와 잇몸에 달라붙습니다. 그래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부위는 얇게 우유 빛이 도는 머리와 그 바로 아래 부위입니다. 그 식감을 뭐라 표현할까요? 처음 닿을 때 좀 빳빳하게 다가오는 것이 특징인데 씹을수록 오돌오돌하고, 구수한 맛이 더 난다고 하겠습니다. 다른 생선도 마찬가지겠지만 한치는 더욱이 부위별로 식감과 맛이 달라 먹는 재미를 더해줍니다. 여름 한치를 먹는 방법으론 역시 한치 물회가 으뜸입니다. 한치 물회는 한치를 잘게 썬 각종 채소와 함께 고추장을 풀어놓은 물에 버무려 먹는 것인데 된장을 적당히 섞어 넣어야 이곳 특유의 한치 물회가 됩니다. 이 고장에서 한치 물회는 자리 물회와 함께 여름철 명물이요, 육지에서의 냉면에 버금가는 일등 계절 먹거리입니다. 요리라는 게 다 그렇듯이 한치 물회도 재료를 어떻게 섞느냐에 따라 맛의 차이가 크게 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치를 찾아 먹는 미식가들을 위해 어떤 집에서는 레몬, 사과, 배와 같은 입맛 돋우는 과일을 조금씩 갈아 넣어서 풍미를 더하게 합니다. 어쨌든 한치 물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한치가 그날 잡은 생(生)물이어야 하고 잘게 빛이 반짝반짝 나게, 그것도 내어오기 직전에 썰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쁘다고 미리 썰어놓은 한치를 국물에 버물려 내오면 면류(麵類)의 엉겨 붙은 면발처럼 생생한 맛이 떨어지게 마련이지요. 바깥에서 잘 살펴보고 그런 집은 미리 피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무성의한 집에서는 생물이 비싼 데다, 구하기도 그리 쉽지 않아 냉동 보관된 한치를 쓰기 때문에 이 점 또한 주의할 사항입니다.
한치는 오징어과의 연체류로서 오징어보다 크기가 작고 날씬하면서도 더 투명한 모양새이며 무엇보다 다리 길이가 한 치 정도로 짧아서 한치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합니다. 식감은 오징어보다 훨씬 부드럽지요. 동해에서도 한치가 잡히지만 제주 한치라는 이름이 따로 있을 만큼 이곳 한치의 맛이 특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치는 생각만큼 흔하진 않습니다. 여름 한철에 나는데 태풍이 불거나 바람이 심하면 한치 잡이 낚싯배들이 바다에 나갈 수가 없어 한치를 찾아볼 수 없게 됩니다. 태풍이 지나간 뒤에도 얼마간 한치가 나지 않을 수 있는데 태풍으로 인해 찬물이 위로 올라오면 온도가 맞지 않아서 연안으로 오지 않는다 하니 한치도 귀하신 몸인 것은 분명합니다. 뿐만 아니라 외부 스테레스로 인해 자극을 받으면 수조 속 한치는 먹물을 내뿜어 자신은 물론 다른 생물들까지 종말에 이르게 한다고도 합니다. 생선 시장에 가서 오징어와 한치가 나란히 있기에 값을 물어보았더니 오징어는 만원에 여섯 마리인데 한치는 3만원에 너덧 마리 정도를 준다고 합니다. 오징어에 비해 덩치가 훨씬 작은 데도 값은 두세 배가량 되는 셈이지요. 그렇다고 오징어를 폄하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술을 겸하건 아니 하건 사철 내내 오징어만큼 우리의 입을 심심하지 않게 해주는 것도 흔하지 않을 테니까요.
이곳에 와서 살아보니 물회를 좋아해야 진짜 제주 사람이 다 된다는 말이 있더라고요. 특히 제주 분들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자리(돔) 물회’를 같이 좋아하면 반가워하면서 동류(同類)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외지에서 온 사람 대부분은 자리돔의 잔 뼈 씹기와 또 그 특유의 비릿한 맛을 좋아하지 않는 듯합니다. 가장 많이 찾는 한치 물회, 자리 물회 외에도 제주에서는 모든 생선을 물회로 만들어 먹는데 광어 물회, 우럭 물회, 옥돔 물회 등도 유명하고 아주 싼 생선인 어랭이 물회도 별미에 속합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저에게는 물회 하면 한치 물회입니다. 채소와 과일과 된장과 고추장을 버무려 얼음까지 띄운 그 시원한 국물에 식감 좋은 한치를 버무려 놓으면 보기만 해도 더위가 가심은 물론, 어떤 미식가 시인의 말처럼, 한치 한 점에 "제주 풍경이 입 안에 가득한"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주 한치는 제주 갈치와 제주 고등와와 같은 반열에 올려놓아도 전혀 손색이 없다고 주장하곤 합니다. 독자들께서도 올여름 제주에 오시면 한치 잘 하는 집을 물어 찾아서 싱싱하고 식감 좋은 한치 물회를 꼭 들어보시기를 권합니다.
필자소개
정달호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줄곧 외교관으로 일했으며 주 파나마, 이집트대사를 역임했다. 은퇴 후 제주에 일자리를 얻는 바람에 절로 귀촌을 하게 되었고, 현재 제주평화연구원 객원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한라산 자락에 텃밭과 꽃나무들을 가꾸며 자연의 품에서 생활의 즐거움을 찾는다.
박대문의 야생초사랑
참나리 (백합과) Lilium lancifolium Thunb
여름을 대표하는 나리꽃류 중에서 키도 꽃도 제일 크고 화려한 참나리꽃입니다. 알뿌리와 열매로 늘려가는 다른 나리류와 다르게 열매를 맺지 못하고 줄기에 달린 주아(珠芽)가 땅에 떨어져 바로 싹이 트는 화끈한 식물입니다. 식물 대부분이 봄철에 꽃이 피고 나서 뜨거운 7월 햇살 아래 축축 늘어지는데...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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