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세까지 현역이고 싶다" [황경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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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세까지 현역이고 싶다"

2015.07.27


언론계의 친구 한 사람이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그의 고등학교 시절 미술 선생님을 우연히 만났는데 금년이 백수라 하여 기념 개인전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답니다. 문득 이웃 나라 103세 현역 의사 히노하라 시게아키(日野原重明) 박사가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그 히노하라 박사가 도쿄(東京)에 있는 한국인 특파원과 만났다는 뉴스가 국내 언론에 보도되었습니다. 

‘인생 50’에서 ‘100세 시대’로 바뀐 요즘, 100세를 넘어서도 왕성한 현역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히노하라 박사에게 저는 인생의 후배로서 특히 관심이 많았는데, 보도에 따르면 내달 초순 그가 테너가수 배재철 씨와 함께 우리 교포가 많이 사는 오사카(大阪)에서 공연을 할 예정이라는 흐뭇한 소식이었습니다.

아시아 최고의 테너 가수라고 명성이 높았던 배 씨는 2005년에 갑상선 질환으로 목소리를 잃었다가, 일본 후원자의 헌신적 도움으로 어려운 수술 뒤에 목소리를 되찾아 다시 무대에 서게 되었다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영화나 기사로 많은 음악팬을 감동시켰습니다. 

2년 전 친구가 마련한 생일잔치에서 배씨를 알게 된 히노하라 박사는, 배씨의 노래를 ‘신(神)의 소리’라고 극찬하고, 도쿄(東京)의 한국교회에서의 배씨 공연에서는 히노하라 박사가 작사ㆍ작곡한 ‘사랑의 노래(愛の歌)’를 합창할 정도로 가까워지고, 그의 고향인 고베(神戶) 등에서 같이 공연을 하기도 했답니다. 

한일관계(韓日關係)가 순탄하지 못한 요즘, 평화를 주창하고 일본사회에서 많은 존경을 받는 히노하라 박사의 이러한 행보는 두 나라 친선에 큰 도움이 되겠지만, 히노하라 박사의 한국과의 인연은 참으로 기구합니다. 그는 1970년 3월 31일 학회 참석을 위해 후쿠오카(福岡) 행 비행기를 탔다가, 그 유명한 JAL기 하이재크 사건의 희생자로, 하마터면 극좌 테러리스트에 의해 평양에 납치당할 뻔했습니다. 다행히 김포에 도중 착륙한 범인들과 협상 끝에 납치범 9명은 여객을 3일 후에 석방하고 자기네들과 비행기만이 평양으로 갔습니다.

일본 언론미디어를 통해 히노하라 박사 이야기를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그의 존재를 저에게 특별히 소개한 분이 다 같이 노후 생활을 걱정하던 일본인 친구였습니다. 히노하라 박사가 2001년에 쓴 ‘훌륭하게 살아가는 길(生きかた上手)’은 저를 결정적으로 그의 팬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책은 발행 얼마 후 백만 부를 넘는 ‘밀리언셀러’가 되었습니다. 

이 단행본은 50대 이상의 독자가 많은 ‘이키이키(싱싱)’라는 잡지에 연재한 글을 그의 만 90세 탄생일인 2001년 10월 4일에 맞추어 다시 정리하여 책으로 낸 것이었습니다. 이 책은 그의 생애 236권 째의 출판물로, 난생처음으로 출판기념회를 친구 분이 마련해주었다고, 책 후기에 쓰여 있었습니다. 

90회 탄생일 기념 책답게 그의 간추린 앨범도 실려 있었습니다. 그 앨범에 의하면, 그는 교토(京都)대학 재학 중 폐결핵으로 1년 동안 휴학을 했으며, 태평양전쟁이 일어난 1941년에 도쿄에 있는 성루가(聖路加)국제병원에 취직했습니다. 그는 이 책을 쓸 당시 그 병원 이사장이었으며, 현재는 명예이사장으로 있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건강이란, 수치(數値)에 안심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건강하다’고 느끼는 것이다.”라고 하고, “늙(老)는다는 것은 쇠약(衰弱)이 아니고, 성숙한다는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2000년에 75세 이상의 노인만이 회원이 될 수 있는 ‘신노인운동(新老人運動)’을 시작하여 전국적으로 활동을 개시했습니다.

저는 10여 년 전, 규슈(九州) 중심부에 있는 구마모토(熊本)에서 열린 이 지방 ‘신노인운동’ 창립대회에 초대되어 그의 30분에 걸친 열정어린 연설을 듣고, 개인적으로 대담하는 기회도 가졌습니다. 강연회장의 청중석 맨 앞줄에 앉아 있다가 연설 차례가 되자 좁은 나무 계단을 가볍게 뛰듯이 연단에 올라가는 그의 체력에 감탄했습니다.

우리 나이로는 104세가 되는 히노하라 박사는, 지금도 일년에 100회 정도의 강연을 하며, 그의 일정표에는 2년 치 예정이 꽉 차 있다고 합니다. 이사장, 회장, 고문 등 직책으로 관여하는 사회단체가 30을 넘는 그의 일과는 전처럼 바쁩니다. 작년부터 장거리 이동에 가끔 휠체어를 이용하지만 아직 건강에 큰 이상은 없습니다.

취미로 음악생활을 즐기는 그는 뮤지컬도 작곡하여 공연했으며, 피아노 연주도 좋아합니다. 현역 활동을 110세 될 때까지 계속하는 것이 희망이라는 그의 생활태도는 ‘100세 시대’에 돌입한 우리 사회 노인들에게 좋은 모범으로,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몇 살이 되어도 생활하는 방법을 바꿀 수 있습니다.”라는 말이 있는가 하면, “‘고맙습니다.’라는 말로 인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의미심장한 대목도 있는 그의 책 ‘훌륭하게 살아가는 길’을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2001년의 시점에서, 그는 4천명 이상의 환자 임종을 돌보았다고 합니다. 의사로서 연전연패(連戰連敗)였지만, 패배감은 없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최첨단 의료로써도, 죽음을 정복할 수는 없다.”는 게 그의 결론이었습니다. 그러나 “끝이 좋으면 만사가 좋다”는 셰익스피어 희곡 제목처럼, 인생이야말로 “‘고맙습니다’라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떠나고 싶다.”고 했으며, 플라톤의 “장수의 장점은 안락한 죽음을 가질 수 있다.”는 말로 맺었습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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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황경춘

일본 주오(中央)대 법과 중퇴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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