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무료급식소의 아침 풍경 [허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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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무료급식소의 아침 풍경

2015.07.24


며칠 전, 서울역 주변의 노숙자들을 위한 무료급식소에서 아침 도시락을 나눠주는 봉사활동에 참가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회사 차원에서 직원들의 봉사활동 모임이 새로 발족했기에 혹시 작은 일이라도 거들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곁다리로 쫓아갔던 것입니다. 서울시가 시설을 제공하고 급식은 민간단체들이 돌아가며 맡고 있는 ‘따스한 채움터’가 그 현장입니다.

봉사활동이라야 크게 힘쓰거나 어려운 일은 없었습니다. 자리에 나란히 앉은 노숙자들에게 도시락을 하나씩 나눠주면 되는 것이지요. 한 차례 식사가 끝나고 나가면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차례로 들어와 다시 자리를 채웠습니다. 그들이 식사를 하다가 밥풀이나 반찬을 흘려서 식탁이 지저분해지면 수건으로 깨끗하게 훔치는 것도 봉사자들의 몫이었습니다.

도시락 한 개로는 모자랐는지 추가로 더 받아서 먹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서너 개를 연달아 먹는 경우도 없지 않다고 합니다. 도시락 자체가 밥이 그렇게 많은 분량은 아니었습니다. 많이 먹건, 적게 먹건 그들에게는 무료급식소가 허기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창구인 것입니다. 걸음을 떼기가 불편한지 절뚝거리는 분들이 있었던 것으로 미뤄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들도 적지 않았으리라 생각됩니다. 

오전 여덟시부터 시작된 급식은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준비했던 200개의 도시락이 거의 떨어지면서 끝났습니다. 며칠씩 감지 못해 더부룩한 머리와 수염 그대로 허겁지겁 식사를 하는 노숙자들의 모습에서 우리 사회가 당면한 빈곤의 문제점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근처의 쪽방촌이나 고시방에 기거하는 사람들도 급식소를 이용한다고 하니 여간 다행스런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최근 메르스 사태가 이어진 탓에 자원봉사자들의 걸음이 끊어짐으로써 한동안 급식소 운영이 다소 차질을 빚었다고 하지요. 급식소에 끼니를 의지하던 사람들이 굶주릴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무료급식소 시설이 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지요. 급식소가 원활히 돌아가려면 누군가는 꾸준히 도시락을 지원해야만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무료급식이 지닌 문제점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도시락을 받아서는 기껏 한 젓가락이나 떴을까 하는 흔적만 남긴 채 잔반통에 밥 덩어리를 그대로 버리는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반찬이 썩 좋다고는 할 수 없었으나 김치에 어묵이나 생선가스라면 일반 직장인들 수준에서도 점심식사를 하면서 크게 타박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정도가 아닐까요. 잔반통에는 어묵 반찬이 수두룩하게 버려졌습니다.

자주 끼니를 거르다보니 뱃속이 쪼그라들어 소화를 못 시키는 사람이 있고, 그래서 한두 젓가락만 끼적거리고는 밥을 버렸을 것이라는 얘기도 있었으나 겉모습으로는 꼭 그런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옷섶에 버젓이 선글라스를 꽂고 여행용 가방에 핸드폰을 찔러 넣은 차림새로 급식소를 찾은 모습은 아무래도 꼴불견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마 여름휴가를 떠나는 서울역의 기차표 시간이 남은 사람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행색으로 미루어 노숙자가 분명한데도 음식을 거의 그대로 버린 경우에는 마음이 더욱 불편했습니다.

노인연금과 어린이들 유치원비 지원을 포함해 지금 정부에서 시행하는 복지제도를 놓고 퍼주기라느니 하는 논란이 없지 않지만 무료급식소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그대로가 아닌가 싶습니다. 무료급식소란 빈곤층을 위해 운영되는 시설이므로 제 돈 내고 밥을 사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원칙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도시락 하나 값으로 따지면 별것 아니겠지만 전국의 무료급식소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하면 그냥 넘길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혹시나 노숙자들이 무료급식소에 의지해 별다른 삶의 방도를 찾을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따스한 채움터’만 해도 요일별로 몇 끼니만 빼고는 거의 아침, 점심, 저녁식사가 제공되고 있으며, 바로 옆에도 ‘더불어 사는 세상’과 ‘드림시티’, ‘다시서기 진료소’ 등 빈곤층 어르신 및 노숙자 지원센터가 여럿 있습니다.

이 급식소 거리에 오락실이 있고, 오락실의 주요 고객들이 또한 노숙자라는 사실도 눈길을 끕니다. 그 옆에 '일당 잡부 모집'이라는 인력시장 간판이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노숙자들도 간간이 용돈을 벌고는 있지만 한 푼씩이라도 모으는 데는 등한한 게 아닌가 여겨지는 것입니다. 그날 아침 급식 활동을 끝내고 회사로 출근하는 서울역 광장에서는 벌써부터 노숙자들이 끼리끼리 둘러앉아 소주잔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이들 모두가 힘을 내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조속히 복귀할 수 있는 날이 그 언제일는지요.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허영섭

이데일리 논설실장. 전경련 근무. 경향신문과 한국일보에서 논설위원 역임.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대만, 어디에 있는가', '영원한 도전자 정주영'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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