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땅에 욱일기(旭日旗)가 휘날린다면 [방석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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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땅에 욱일기(旭日旗)가 휘날린다면

2015.07.22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안보 관련법이 지난주 중의원을 통과했습니다. 일본 자위대의 해외파견, 다시 말하자면 일본군이 남의 나라에 언제든 쳐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연립여당 자민당과 공명당은 헌법학자들의 위헌 의견, 야당과 많은 시민단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베 총리가 원하는 대로 '국제평화지원법' 등 안보 관련 법안들을 간단히 통과시켰습니다. 아베노믹스의 효과에 만족한 일본 국민들이 지난해 총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안겨준 덕입니다. 참의원 결의가 아직 남아 있지만 요식행위에 불과할 뿐입니다. 

집단적 자위권이란 일본이나 동맹국이 직접 공격받지 않더라도 그들과 밀접한 이해관계가 있는 나라에 군대를 파견하고 군사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말합니다. 아베 정권의 자의적인 헌법 해석에 따라 추진된 새 안보 관련법에 의해 전쟁에 나설 수 없다고 명시된 평화헌법이 거꾸로 허울만 남게 된 꼴입니다. 이제 일본은 구실만 갖추면 언제 어디서든 욱일기를 다시 흔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제 침략에 처참한 피해를 입었던 중국은 즉각 반발을 보였습니다. 중국 정부는 “중국의 주권과 안보 이익을 훼손하고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해를 끼치는 일을 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나섰습니다. 중국 언론들은 “평화라는 이름의 탈을 쓴 ‘전쟁법안’”이라고 비난했습니다. 

딱한 것은 우리네 사정입니다. 일제 침략의 피해자로서 느끼는 정서는 중국과 다를 바 없지만 한미일 방위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입장에서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겨우 내민 조건이 ‘한반도 출병 시 한국의 요청과 동의가 필요하다’는 정도입니다. 그것도 조건이냐고 꾸짖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조건조차도 제대로 내세우지 못했다고 따질 때가 올지도 모릅니다. 정말 한반도 유사시 주한 미군이 자동개입하고 일본에 군사 지원을 요구할 경우 과연 우리가 명시적으로 일본군의 한반도 진주를 반대할 능력이나 의지가 있을지 의문입니다.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의 회귀, 일본의 재무장은 사실 전범 후손들의 통치를 용납한 일본 국민의 선택이기도 하지만 미국의 요구이기도 합니다. 승전국 미국이 패전국 일본에 강제했던 소위 평화헌법을 스스로가 용도 폐기하도록 강력히 요청해왔던 것입니다. 일본의 새 안보 관련법 통과에 미국 국무부는 "지역과 국제 사회에서 일본의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한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습니다.

일본에 대한 군사적 역할 확대 요구는 미국의 재정 부담을 덜고, 점증하는 중국의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세계 패권 국가인 미국이 태평양 건너 중국의 성장을 왜 그렇게 두려워하고 저지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란, 쿠바와 그토록 어려운 과정을 거쳐 다시 악수하면서 새삼 왜 중국과 대결 구도를 만들어 압박하는지, 그게 뜻대로 될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미일 군사동맹 강화와 일본의 재무장은 중국과 러시아의 공동대응 태세를 불렀고 동북아의 긴장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백여 년 전 한반도 주변의 정세와 어두운 기억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승인했던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거론하며 미일 방위협약에 의혹의 시선을 보내기도 합니다. 

재무장한 일본군의 욱일기가 가장 먼저 휘날릴 곳은 어디일까요? 만에 하나 우리 땅 한반도에 그 욱일기가 등장하게 된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불량무기를 눈감아 주고 뇌물로 배 채운 사람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쩨쩨하게 군수품 바꿔치기로 푼돈을 모은 사람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런 군을 지휘 통솔해온 역대 정부에 묻고 싶습니다. 탁상공론과 정쟁으로 날밤을 새우는 소위 정치 지도자들에게도 묻고 싶습니다. 그때 당신은 무얼 하시겠습니까?

오랜 역사 과정에서 우리는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고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될 수 있음을 거듭거듭 확인했습니다. 지속적인 협력과 신뢰 관계는 상호 그러한 관계를 지속할 만한 가치와 실력이 있을 때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아무런 가치도 능력도 없는 상대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한미 군사동맹도 한중 경제협력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동북아의 새로운 긴장 속에서 우리는 북한과의 대치라는 가장 예민한 뇌관을 품에 안고 있습니다. 그 폭발의 여파는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세계 석학들이 들려준 조언에는 별반 다름이 없었습니다. “슈퍼 파워들의 틈바구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이다. 그들이 무시할 수는 없는 존재가 되는 수밖에.” ‘스몰 파워(Small Power)’가 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모두와의 관계를 지속하고 발전시켜 나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의 우리는 과연 그런 지혜나 자세를 갖추고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부국장, 경영기획실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 역임.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 국제경기 현장 취재. 스포츠와 미디어, 체육청소년 문제가 주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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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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