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재벌 특사' 2015 [박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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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재벌 특사' 2015

2015.07.20


광복 70주년 특별사면에 재벌 총수가 포함될지 여부를 두고 이야기가 많습니다. 청와대는 국가 발전과 국민 대통합을 위해 사면이 필요하다는 입장이고 여당은 사면 대상에 경제인을 포함할 것을 건의했습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재벌 총수를 사면하자는 것입니다. 당연히 야당은 재벌 총수 몇 명 사면한다고 경제가 살아나는 것은 아니라고 반발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번 정부는 사면에 매우 인색한 편입니다. 이번 광복적 특별사면을 하게 되면 두 번째 사면이 됩니다. 과거 노무현 정부는 8번, 이명박 정부는 7번의 특별사면을 단행했습니다. 권한이 생기면 호기 있게 그 권한을 휘둘러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하지만 이번 정부는 흐트러진 법질서와 권위를 바로 세우기 위해 사면권을 남발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시행되지도 않은 사면을 두고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는 경제인 즉, 재벌에 대한 사면이 거론되기 때문입니다. 사면은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고 정치적 판단은 대중의 마음을 읽어 내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대중의 마음에 반하는 결정을 내릴 때에는 대중을 설득할 만한 이유를 밝혀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선 대중이 재벌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이 프린세스>, <파리의 연인>, <욕망의 불꽃>, <로열 패밀리>, <시크릿 가든>, <상속자들>,<풍문으로 들었소>, <상류사회>는 모두 재벌이 등장하는 드라마입니다. 대한민국의 드라마는 재벌 드라마와 그렇지 않은 드라마 두 가지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드라마에 재벌이 너무 자주 등장합니다. 재벌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대략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선 산업적인 측면에서는 대중문화 평론가인 배국남 기자의 분석이 매우 정확합니다. 그는 “돈이 많고 소비를 많이 하는 재벌이 주인공 혹은 주요 인물 배역으로 등장해야 간접광고를 비롯한 PPL를 많이 할 수 있고 폭넓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재벌로 나오는 주인공의 집에서부터 자동차, 음식, 소비품 등이 거의 PPL로 채워지는 경우가 많습니다.”라는 이야기를 통해 재벌이라는 캐릭터가 드라마에 왜 필요한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재벌과 관련한 이야깃거리가 풍부하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단순하게 엿보기 식의 구성을 통해 대중들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재벌 드라마가 주류를 이뤘다면 최근에는 암투와 음모로 뒤범벅된 막장 재벌 드라마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형제간의 갈등, 탈세, 편법증여 같은 비윤리적인 행동들, 거대 권력으로 변질된 재벌의 전횡 등등이 드라마를 통해 고발당하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입니다. 사실 야구 방망이로 한 대에 100만원씩 쳐주면서 폭행을 한 사건이나 소형차가 길을 막는다고 벽돌로 폭행한 사건, 그리고 입에 담기도 싫은 땅콩회항 사건까지 재벌과 관련된 안하무인적인 사건들을 보면 오히려 현실이 드라마보다 더 충격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재벌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쉽게 엿볼 수 있는 곳이 드라마입니다. 드라마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대중과의 소통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대중의 생각과 동떨어진 설정을 하지 못합니다. 최근 재벌이 등장하는 드라마에서 착한 재벌이 등장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습니다. 드라마에서 착한 재벌이 등장하는 순간 시청자들이 '아무리 드라마지만 재벌을 너무 미화하는 것 아냐?'하며 외면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실버스푼을 입에 물고 태어난 재벌 2세와 3세들이 갖고 있는 선민의식과 비뚤어진 세계관이 드라마에 유난히 많이 등장하는 것도 이들에 대해 대중이 갖고 있는 반감을 교묘히 드라마에 이용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드라마는 조용히 세상을 바꿔왔습니다. 드라마에 나온 소품들은 중산층 소비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중년 회사원이 중형 승용차를 타고 다니면 대기업 부장인 나도 중형차를 타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습니다. 드라마 속에서 우리집과 비슷한 평수의 아파트에 사는 가정이 양문형 냉장고를 쓰고 있으면 오래된 우리집 냉장고는 별 문제가 없어도 바꿔줘야 할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드라마는 조용히 힘 안들이고 우리의 생활을 바꿔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드라마는 우리의 의식도 변화시켰습니다. 과거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사랑이 뭐길래>라는 드라마에 등장했던 대발이 아빠는 전형적인 가부장의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스스로 모순에 빠지며 그 권위를 잃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대발이 엄마의 반격에 당황해 합니다. 대발이 아빠의 과장된 캐릭터 설정을 통해 대발이 엄마의 반격에 당위성을 부여하고 그 결과 드라마의 마지막에는 대발이 아빠의 부권이 추락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모습을 고소하게 생각하며 보게 됐던 것입니다. 

드라마는 픽션입니다만 픽션과 실제가 너무도 유사해서 이 둘이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대중이 ‘재벌은 나쁘다’라는 프레임을 갖게 되면 그 영향은 막대해집니다. 기업들이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를 통해 기업의 평판을 좋게 만드는 데 열을 올리고 있지만 정작 드라마를 통해 재벌의 모습이 추악하게 비친다면 깨진 항아리에 물을 붓는 것과 다를 것이 없을 겁니다. 

2012년 <경제발전연구>에 발표된 <재벌의 실태와 경제적 파급효과>라는 논문은 재벌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즉, 재벌의 성장이 내수 시장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재벌 총수를 사면하자는 논리보다는 다른 이유를 대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차라리 사면 대상이 되는 재벌들이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들에게 사면을 간곡히 청하면서 “물의를 일으켜서 송구합니다. 기회를 주신다면 앞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 하는 착한 재벌이 되겠습니다. 우선 올해 하반기 신규 채용을 획기적으로 늘려서 청년 실업 문제 해결에 작게나마 일조하겠습니다.” 이렇게 얘기를 한다면 어떨까요? 

마트에 가면 ‘착한 가격’, ‘통 큰 할인’이라고 붙여서 파는 것들이 많습니다. ‘착한 재벌’이 많이 나와서 착한 재벌이 등장하는 드라마가 트렌드가 되어 진정한 국민 대통합이 이뤄지기를 바라봅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박상도

SBS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현재 SBS TV 토요일 아침 '모닝와이드'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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