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freecolumn.co.kr
"디바이스가 곧 꺼집니다"
2015.07.17
송철의 국립국어원장이 최근 기자간담회를 통해 ‘쉽고 편한 우리말 가꾸기’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에 대해 나는 '쉽고 편한 우리말 가꾸기'보다 '쉽고 바른 우리말 가꾸기'를 해야 한다는 글을 신문(이투데이 7월 14일자)에 쓴 바 있습니다. 지나치게 언중(言衆)의 시류에 영합하는 듯한 표준어 인정행정을 경계하고 비판하는 내용이었습니다.이번엔 좀 다른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공적 조직의 공공언어와 민간의 안내말에 관한 내용입니다. 언어는 논리와 문법을 떠나 유행을 좇아서 수시로 변합니다. 행정기관의 힘이나 노력으로 언어의 물길을 돌리거나 물을 막고 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쉽고 바른 언어생활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한껏 노력은 해야 합니다. 먼저 공공언어 문제입니다. 공공언어는 행정부와 지자체, 그 산하 공공기관 등이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공공의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언어(문어)입니다. 그런데 공공기관이 앞장서서 문법을 해체하고 우리말을 파괴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보건복지부 블로그의 이름은 '따스아리'인데, '따스하다'라는 형용사와 '메아리'라는 명사를 합쳐 만든 말이라고 합니다. 듣기 좋고 보기 좋고 멋진가요? 나는 영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서울경찰청이 운행하는 경찰차에는 '안전은 지키GO 사고는 줄이GO'라고 씌어 있던데, 경찰은 이게 재치 있는 표기라고 생각하나 봅니다. 또 “무엇무엇을 하실게요”라는 표현을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잠시만요! 옛 충남도청사 대전 근현대사 전시관에 들렀다 가실게요~!” 이런 식입니다. “~하실게요”라는 어법은 주체 높임형 선어말어미 ‘시’와 약속형 종결어미 ‘~ㄹ게’가 함께 쓰인, 잘못된 표현입니다. 상대방에게 어떤 행동을 해줄 것을 청유하는 경우라면 '~하세요' '~해주세요'라고 하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TV 개그프로그램이 이 잘못된 말을 유행어로 정착시키자 유행에 뒤질세라 공공기관이 그걸 받아 전파하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지요. 공공언어를 바르고 분명하게 사용하라고 막연하게 권유해서는 안 됩니다. 감사원이 각 부처의 행정사무를 감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립국어원은 각 부처의 언어와 어문생활을 주시하면서 개별 사례를 들어 잘못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시정을 촉구해야 합니다. 재빨리 유행을 쓸어 담고, 젊은이들의 감각과 정서에 맞추는 것이 친절하고 시대에 맞는 행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줘야 합니다. 다음은 안내말입니다. 몇 년 전 휴대폰을 끄는데, '디바이스가 곧 꺼집니다'라는 문구가 뜨기에 '디바이스가 뭐지? 내가 뭘 가지고 있나?' 하고 주위를 둘러본 일이 있습니다. 전화기가 꺼진다는 예고를 내가 바보 같아서 잠시 못 알아듣고 헷갈린 것이지만 전화기가 꺼진다고 하면 어디가 어때서? 얼마 전에는 이동통신 문제로 상담원과 통화를 하는데, "기타 요금제를 사용하시는 분들은 초대 건당 문자 발송 금액이 과금됩니다"라고 하더군요. 하도 녹음된 기계처럼 빠르고 인간미 없게 말을 해 짜증이 나던 판인데, 이 말을 들으니 더 짜증이 났습니다. 글을 그렇게 써 놓고 외워서 읽게 한 업체가 문제이지만, 그 안내원은 과금된다는 게 무슨 뜻인지 분명하게 알고 있을까 싶었습니다. 내비게이터의 안내말도 어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전방 300m에 오른쪽 출구입니다", "교통 변화를 탐색 중입니다. 기존 경로로 계속 안내합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 다들 아시나요? 바꿔 말하면 "300m를 더 가서 오른쪽 출구로 나가십시오", "지금 가는 길로 계속 가세요." 그 뜻입니다. 다 아는데 나만 모르는 것 같다고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얼마든지 알아듣기 쉽게 할 수 있는 말을 왜 그리 어렵고 애매하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먼저 사업체나 의료기관의 장들이 이런 문제에 신경을 써서 쉽고 분명한 말을 하도록 직원들을 이끌어야 합니다. 조직의 우두머리인 그들은 고객들이 안내말을 잘 알아듣게 해 주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국립국어원도 할 일이 있습니다. 민간의 어문생활까지 다 관리할 수는 없겠지만 잘못된 것, 불분명하고 애매한 것의 유행과 확산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방파제 역할을 해주어야 합니다. 그런 일을 하기 위한 방도를 찾으면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국립국어원은 2012년에 '표준 언어 예절'을 낸 바 있습니다. 지칭어, 인사말, 경어 등의 올바른 쓰임새를 알려 주고 잘못 쓰는 언어를 바로잡아 주는 권고의 의미를 담은 언어 규범입니다. 그런데 이게 1992년에 발간한 '표준 화법 해설'을 개정한 것이니 20년 만에야 개정판이 나온 셈입니다. 어문생활에 도움이 될 규범집을 더 자주 내고, 위에서 말한 안내말에 대해서도 지침이 될 수 있는 자료를 만들면 좋겠습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임철순
1974~2012년 한국일보 근무. 문화부장 사회부장 편집국장 주필 및 이사대우 논설고문을 역임했다. 한국기자상, 삼성언론상, 위암 장지연상 수상. 현재 이투데이 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자유칼럼그룹 공동대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한국1인가구연합 이사장.
Copyright ⓒ 2006 자유칼럼그룹.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freecolum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