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뛴 삶' [신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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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뛴 삶'

2015.07.15


오늘 해결하지 못한 고민들은
시간과 함께 스스로 물러간다
쓸쓸한 미소이건
회한의 눈물이건                        

하지만 인생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건너뛴
본질적인 것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담요에 싸서 버리고 떠난 핏덩이처럼
건너뛴 시간만큼 장성하여 돌아와
어느 날 내 앞에 무서운 얼굴로 선다

성공한 자에겐 성공의 복수로
패배한 자에겐 붉은 빛 회한으로

나는 내 인생의 무엇을 해결하지 못하고
본질적인 것을 건너뛰고 달려왔던가
그 힘없이 울부짖는 핏덩이를 던져두고
나는 무엇을 이루었던가

성공했기에 행복하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마라
아무도 모른다
성공을 위해 삶을 건너뛴 자에게는
쓰디쓴 삶의 껍질 밖에 남겨진 게 없으니

-박노해 ‘건너뛴 삶’



시를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주 스치는 중에 작열하는 불 화로를 머리에 얹는 형벌이라도 받은 듯 북반구의 여름 한가운데에서 박노해의 시, ‘건너뛴 삶’을 하릴없이 읊조리고 있습니다.  

굳이 ‘북반구의 여름’이라고 말하는 까닭은 몸은 비록 이곳에 있으나 마음은 남반구 어드메를 더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과는 정반대의 계절, 7월의 한겨울을 지나고 있는, 이른바 제게는 제2의 고향인 호주를 서성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달 말일이면 시드니를 떠나 서울에 온 지 꼭 2년이 됩니다. 저는 21년 간을 호주에서 살다가 지난 2013년 8월 1일,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만약 호주에서 계속 살았다면 내일 모레로 이민 24주년이 됩니다. 호주로 떠난 날과 한국으로 되돌아온 날이 얼추 겹치는 셈인데 제 개인에게나 중요한 날짜를 장황하게 짚어 송구합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싸하고 짠한 마음으로 오늘은 이 글을 쓸 수밖에 없겠습니다. 그러자니 겸연쩍어 박노해 시인의 손목을 슬쩍 끌어다 옆에 앉히게 되었습니다. 지난 2년간의 한국생활을 통해 ‘인생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건너뛴’ 것을 비로소 해결한 듯한 느꺼움이 밀려와 박 시인의 ‘건너뛴 삶’을 제 삶에 초대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초대는 했지만 그것이 하냥 기껍지만은 않기에 나름 과보를 받고 있다는 뜻에서 ‘형벌’이라는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결혼 생활을 25년만에 정리한 것이 건너뛴 미해결 과제를 비로소 마친 느낌이라면, 파경의 상흔과 잔해를 죄 없는 자식들에게까지 지워준 것은 지은 업에 대한 과보라 여기고 있습니다.  

자식이라는 핏덩이를 포대기째 던져두고 나오지는 않았기에 그 결과 저는 제 인생에서 아무것도 이루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그 핏덩이들이 제 앞에 무서운 얼굴로 서지는 않을 것이라는 안도는 있습니다. 그러기에 과제를 마쳤다는 것입니다. 

지금 제 곁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말 그대로 일용할 양식 외에는 가진 것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제 남은 삶이 쓰디쓴 껍질로 뒹굴 것이라는 절망적인 생각을 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비로소 꿈을 꿉니다. ‘건너뛴 삶’을 되짚어 그 틈을 다시 촘촘히 메울 꿈을. 그리고 앞으로의  삶은 여하한 이유로도 건너뛰지 않겠다는 다짐도 합니다.  저는 이미 성기지 않게 한땀한땀 인생의 새로운 바늘땀을 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기에 이 더운 날, 이 뜨거운 내면의 시와 독대를 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박 시인의 전력으로 보나, 작금의 사회상황으로 보나, ‘옳거니!’하고 누군가는 그의 시 ‘건너뛴 삶’을 정부와 재벌을 비난하는 용도로 앞세운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혼란스러운 정국과 막장 자본주의 체제에 살고 있는 국민이라 해서 각자의 인생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건너뛴 삶이 오롯이 정부 탓, 재벌 탓일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혹여 그렇다고 해도 ‘담요에 싸서 버리고 떠난 핏덩이’를 그들이 대신 찾아줄 리는 만무합니다. 이미 여러 번 경험했지 않습니까. 

그뿐만은 아니지요. 시인의 말처럼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며 성공한 자에겐 오히려 성공 그 자체가 칼날이 되어 복수를 해 주었지 않습니까. 물론 그들과 달리 패배하기 일쑤인 우리들은 ‘붉은 빛 회한’을 주로 마주해야 했지만요. 

글을 맺으려니 공연히 남의 시를 빌려 사사로운 참회의 변을 늘어놓은 듯하여 면구스럽습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신아연

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1992년 7월, 호주로 떠났다. 시드니에서 호주동아일보 기자, 호주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으로 일하다 2013년 8월, 한국으로 돌아와 자유기고가, 강연자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중앙일보, 여성중앙, 과학과 기술 등에 에세이를 연재하며, KBS 라디오에 출연 중이다.    
낸 책으로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이 있고, 2013년 봄에 <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를 출간했다. 
블로그http://blog.naver.com/shinayoun

박대문의 야생초사랑

복사앵도(장미과) Prunus choreiana Nakai ex Han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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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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