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 건네는 위로 [김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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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건네는 위로

2015.07.14


지난 5월과 6월, 두 개의 *문학상 시상식에서 거푸 수상소감을 말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글을 쓰게 된 동기, 글을 쓰는 이유, 어떤 글을 쓰려 하는가, 글을 쓰며 느낀 소회 등을 간추려보았습니다. 

대학시절 문학에 뜻을 두었다가 1973년 사회에 진출하며 끈을 놓았습니다. 살다보면 엎어진 김에 쉬어도 가고 마음을 두지 않는 곳에 오래 머물기도 한다지만, 20여 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겠지요. 그것도 잠깐 다니러 간 곳에서라면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또 15년이 지나 비로소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2008년 등단) 참으로 오랜 세월을 에둘러 온 셈입니다.

항공사에 재직하며 일찌감치 세계를 무대로 출장도 다니고 해외 주재 근무도 했지만, 남들이 짐작하는 것처럼 마냥 화려하지는 않았답니다. 주로 공항에서 근무했는데, 매일 상황이 발생하는 일선 업무의 특성상 항상 긴장해야 했어요. 일종의 직업병이랄까, 회사를 그만둔 지 오래지만 습관은 남아 아침에 일어나면 날씨를 점검하곤 합니다. 일종의 직업 후유증을 앓고 있는 것이지요.

항공기 운항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는 안개가 낀 날이면 마음이 갈 곳을 잃습니다. 날개 꺾인 비행기들의 거친 신음소리가 들리고 공항의 혼잡과 수선스러움이 3D 입체화면으로 펼쳐집니다. 청춘과 장년을 바친 직장생활을 폄하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황폐한 불모의 시기였던 것 같아요. 회사에서의 승진과 경력추구가 유일하고 가장 큰 관심사였으니까요. 그 시절은 '가장 구체적이면서도 가장 허구적인 나날'이었을 거예요.

오랜 기간 무위(無爲)의 편리함, 즉 '생각하지 않고 지내는 일상의 자연스러움'에 길들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사람 만나 이야기 하고 술 마시며 ‘탱자탱자’ 놀기를 좋아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순수하게 노는 일'이 그다지 재미있지만은 않음을 알게 됐어요. 야인(野人)으로서의 본능이 눈을 뜬 것일까, 10여 년 간 백수로 지내며 작은 깨달음이 있었다고나 할까? 언제부터인가 알 수 없는 그 무엇에 가위눌리고 쫒기는 느낌이 들어 초조하기만 했답니다.

어느 날 밤늦게 불콰한 얼굴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였어요.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흔들리며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데 낯선 얼굴이 보여 깜짝 놀랐어요. 차창에 비친 저 수상한 존재가 누구인가? 그 것은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을 좇느라 '페르소나'로서의 분식된 삶을 살아온 중년 사내의 모습이자 슬픈 자화상이었습니다. 차창에 되비친 얼굴은 나를 되돌아보게 했습니다. 허허로운 실존에의 인식이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동기가 된 것이에요.

마음 가는 곳에 길이 있다더니, 일단 글을 쓰기로 마음을 굳히니, 어디서 그렇게 쓰고 싶은 일들이 생겨나는지 신기하기만 했어요. 온갖 상념이 지그재그(Zigzag)로 뻗어나가고, 갖가지 이미지들이 형형색색의 나비처럼 날아오르며, 지하토굴에 가두어 놓았던 지난날의 기억들은 먼저 꺼내달라고 아우성을 치더라니까요. 

왜 글을 쓰는가를 자문합니다. 삶의 숨은 뜻을 찾아서? 삶의 형적(形跡)을 더듬어 보기 위해? 방황하는 한 노력하니까? 모험을 하려고? 모험하지 않는 것도 모험이므로? ‘그냥, 그저, 대책 없이!’라는 표현이 오히려 그럴 듯해 보입니다. 그렇더라도 이제 글을 쓰지 않는 삶은 상상할 수 없게 되었으니 병에 걸려도 중병에 걸린 것 같습니다. 글 쓰는 일이 ‘존재의 이유’가 됐으니 이것이 좋은 일인지 아닌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글을 쓰는 이유가 절실한 소통 욕구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결여된 것이 있고 부족함이 있어서인 것 같습니다. 글로써 기쁨은 물론이요, 결핍과 외로움도 나누고 싶어요.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소통이요 공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네게 부족한 부분이 무엇이냐고 물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것은 말씀드릴 수 없어요. 영업비밀이거든요. 어쨌거나 외로움과 고통을 한 자락씩 글로 펼쳐 보이고 싶습니다.

수필에는 삶과 관련된 해석이 따라야 한다고 믿습니다. 글을 쓸 때 늘 염두에 두는 것은, ‘지금, 여기, 이곳’의 문제입니다. 문화 현상이나, 추억의 명화, 오래된 팝 명곡('Oldies but Goodies')을 다룰 때도 현시성(現時性)의 맥락을 떠올립니다. 또한 인간에게 내재한 원형의 정서도 짚어봅니다.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주제야말로 임박한 관심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수필문학의 격을 높이는데 기여를 하고 싶은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일상의 경험에서 의미를 찾아내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글을 쓰려고 합니다. 인간성을 고양(高揚)하는 글, 지적인 성찰의 단초를 주는 글, 마음을 움직여 변화를 이끌어내는 글, 치열한 사유와 시적 서정이 어우러진 글을 쓰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여 같은 길을 걷는 문우는 물론, 다른 장르의 문인, 일반 독자와도 널리 소통하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 제7회 흑구문학상(5. 31, 호미곶 야외공연장)
  제8회 조경희 수필문학상 (6. 27, 포니정홀)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김창식

경복고, 외국어대 독어과 졸업. KAL 프랑크푸르트 지점장 역임.
한국수필(2008, 수필) 신인상 . 시와문화(2011, 문화평론) 신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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