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이 지구를 걱정하다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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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이 지구를 걱정하다

2015.06.29


오늘은 기후변화 이야기를 꺼내보려 합니다.

‘변화’(Change)라는 말은 매우 긍정적 뜻을 갖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가장 즐겨 쓰는 말이 ‘변화’라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변화’라는 단어가 ‘기후’라는 말 뒤에 붙으면 이미지는 확 달라집니다. 기후변화는  부정적인 뜻을 품고 있습니다. 지금은 좀 막연한 걱정거리로 생각되겠지만 10년 뒤 기후변화의 뜻은 재앙 수준의 의미를 갖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난 8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기후변화에 대한 행동을 강력히 촉구하는 회칙을 공표했습니다. 
교황청 홈페이지에 게재된 회칙의 영문 제목은 ‘Laudato Si, On the Care of Our Common Home’입니다. “찬미를 받으소서, 우리 공동의 집을 돌보는 일에 대하여”에서 ‘우리 공동의 집’이란 바로 지구를 말합니다. 

회칙(回勅:encyclical)은 교황이 전 세계 주교에게 보내는 공식 교서입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현실의 사회 및 윤리 문제에 적용하여 해석하고 행동 방안을 제시하는 최 상위 개념의 문서입니다. 주교뿐만 아니라 사실상 12억 가톨릭 신도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나 다름없습니다. 

회칙은 어원에서 보듯이 교회 내의 일을 알리는 일종의 회람이었다가 19세기 말 교회 밖의 문제를 들고 나왔습니다. 1891년 교황 레오 13세가 산업혁명으로 야기된 노동자와 빈곤 문제를 다룬 회칙 ‘새로운 사태’를 공표한 이후 전쟁이나 인종문제 등 시대 변화에 상응하는 회칙이 여러 차례 공표된 적이 있습니다. 

환경 문제에 대한 교황의 회칙은 이번이 처음으로 국제사회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킬 듯합니다. 기후변화 이슈는 진행형인 데다 교황이 갖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입니다. 기후변화 문제의 전개 과정은 처음에 과학적 논란을 거쳐 경제와 정치문제로 확산되어 왔습니다. 이제 교황이 환경 이슈를 종교윤리 차원으로 올려놓은 셈입니다. 

1992년 리우 환경정상회의를 기점으로 볼 때 기후변화로 신음하는 지구를 구해야 한다는 전 세계적 논의가 시작된 지 23년이 흘렀습니다. 당시만 해도 지구온난화가 화석연료를 쓰는 인간 때문에 일어나고 있다는 기후 및 지구 과학자들의 주장을 놓고 과학계에서조차 찬반 논쟁이 불붙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과학계의 주류는 인간 활동이 기후변화를 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심 없이 수용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의 과학적 예측을 대변하는 공식 기구가 유엔 산하 IPCC입니다. IPCC는 기후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지구 평균 기온을 산업혁명 이전을 기준으로 섭씨 2도 이하로 묶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이 선을 지키지 못하면 기후변화가 재앙이 될 수 있다고 예측합니다. 지구 평균 기온은 산업혁명 이후 이미 거의 1도가 올라 있습니다. 그런데 더욱 공포를 느끼게 하는 것은 현 추세로 인류가 화석연료를 쓴다면 금세기 말에 지구 기온이 섭씨 4도 이상 상승한다는 예측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상상하기 어려운 지구 생태계의 대혼란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일부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인간 멸종의 서곡이 시작되는 게 아니냐는 논의도 일고 있습니다. 마지막 빙하기가 후퇴한 지난 1만 년은 지질학적 연대로 충적세(沖積世)로 불립니다. 기후가 크게 안정되어 인류 문명을 꽃피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류가 화석연료를 과다하게 사용하면서 지구 생태계에 엄청난 타격을 주고 있는 현재의 상태를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로 분류하여 인간세(人間世)로 부릅니다. 인간세는 인류가 흥하는 것이 아니라 망해가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비관적 예측을 하는 학자들은 중생대 공룡이 멸종하듯 인류도 멸종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보수적인 IPCC의 예측에 의거하더라도 기후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온실가스 감축을 무지무지하게 해야 합니다. 지난 20여 년간 교토의정서 체제를 통해 감축을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발전하여 온 자본주의 경제가 화석연료에 너무 중독되어 대안을 찾는 노력보다는 현실에 안주하고 싶어 했기 때문입니다. 중국과 인도 등 개도국은 화석연료에 의존하여 경제발전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서유럽 일부 국가를 제외한 대부분 국가들이 30년, 50년 후의 불확실한 재앙을 걱정하기보다 지금 당장 먹고살거나 국가경제를 부강하게 만드는 일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위기감을 더 느끼는 선진국들이 교토의정서 체제가 끝나는 2020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이 시급해졌고, 개도국들도 기후변화를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작년 페루에서 열린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에서 교토의정서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원칙이 합의되었습니다.세계 모든 국가가 올해 9월까지 자발적인 온실가스 감축안을 유엔에 제출하고 오는 12월 파리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에서 대합의를 이룬다는 목표입니다. 특히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작년 11월 중국과 감축안에 합의하고 파리 대타협을 위해 외교력을 총동원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공표는 이런 시점에서 나왔습니다. 현실참여적인 성향이 강한 교황은 어쩌면 파리 기후변화 협상에 영향을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 시점에서 회칙을 발표한 것 같습니다. 

교황의 회칙 발표에 비판도 쏟아집니다. 논란은 미국에서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유력시되는 젭 부시는 가톨릭 신자이지만 교황의 회칙을 사회문제를 교회로 끌어들였다는 이유로 비난했습니다. 공화당을 지지하는 보수적인 기독교 신자들이 반발이 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들은 신이 인간을 창조하면서 만물을 다스리는 권한을 인간에 부여했다는 창세기 해석에 근거하여 개발을 제한해야 한다는 교황의 주장을 반박합니다. 
또한 교황이 회칙에서 자본주의의 탐욕과 기술문명에 대해 혹독한 비판을 한 것을 놓고 이를 거북하게 느끼는 지식인들도 많습니다. 기술이 인류문화를 발전시켰고, 환경문제를 해결할 열쇠도 기술에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이런 비판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교황의 회칙은 파리 당사국 협상을 타결시키는 데 큰 압력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캘리포니아의 4년 대가뭄, 남극과 그린랜드 빙하의 대규모 붕괴, 북극해 얼음의 급속한 소멸 등 재앙 수준의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황의 회칙이 주는 메시지가 한국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지 관심거리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얼마전 스스로 공언했던 온실가스 감축 계획보다 훨씬 후퇴한 정책을 내놓았습니다. 세계 14위 경제력과 7위의 온실가스 배출국으로서의 의무와 지구환경에 대한 비전과 전략이 빈곤하기 이를데 없어 보입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김수종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 생활. 환경과 지방 등에 대한 글을 즐겨 씀.
저서로 '0.6도' '다음의 도전적인 실험' 등 3권이 있음.

게스트칼럼 / 유능화

암에 걸린 의사, 암에 걸린 의사의 유언

병원 단골 어르신 중 한동안 못 보아 다른 사람을 통해서 안부를 여쭤보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양쪽 귀가 거의 안 들려 본인이 하고 싶은 말만 하시고는 “와까리마스까?” 하고 묻던 K 어르신, 하얀 피부에 늘 미소를 머금고 항상 “수고하시네요…” 라고 인사하시던 P 어르신, 젊었을 때 고스톱으로 밤을 새웠다고 자랑하시던 L 어르신… 모두들 기억에 생생한데.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에 때가 되면 이 세상을 떠납니다. 그런데 남의 병을 고쳐 주는 의사가 죽게 되면 묘한 감정을 가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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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직업이 의사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동료의식은 물론 다른 이들보다 더 측은지심이 생기곤 합니다. 또 그들이 죽음을 앞두고 인생과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쓴 글은 그 어느 철학자의 것보다 더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뉴욕타임스에 실린 한 미국 의사의 글은 나 스스로를 좀 더 관찰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폴 캘러너시(37)는 미국 스탠퍼드 의과대학 신경외과 의사였습니다. 돌도 지나지 않은 딸의 아빠인데, 전이성 폐암에 걸렸습니다. 다음은 지난 4월 '떠나기 전에'라는 제목으로 그가 남긴 글입니다.

선배들은 '우선 빨리 하는 걸 배워라. 훌륭하게 하는 건 나중에 배워도 된다'고 가르친다. 모두의 눈은 시계에 가 있다. 얼마나 마취 상태에 있었는지 촉각을 곤두세운다. 신경·근육이 손상되거나 신부전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오늘은 몇 시에 병원에서 나갈 수 있을까' 전전긍긍한다. 시간과 다툴 때는 토끼와 거북이, 두 방법이 있다. 토끼는 서두르다 보니 실수를 한다. 수술 절개 지점을 1㎝만 달리했어도 좋았을 것이라고 뒤늦게 후회하기도 한다. 거북이는 두 번 가늠하고 한 번만 절개해 실수는 적지만 시간이 걸린다.

그렇게 6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런데 체중 감소, 열, 수면 중 식은땀, 끊임없는 요통 등 한 무리의 증상이 나타났다. 폐암이었다. 레지던트 과정을 겨우 마쳤지만, 화학요법을 받으며 오랜 기간 입원을 견뎌야 했다. 집에서 요양을 하게 됐다. 시간이 멈춰 선 것처럼 느껴진다. 수술실에선 그리도 정신없이 돌아가더니 움직이지 않는 존재가 됐다. 퇴원 며칠 후 딸이 태어났다. 하루하루가 나를 죽음에 더 가까이 떠민다. 달리다가 지쳐버린 토끼… 누구나 유한성(有限性)에 굴복하게 된다. 야심이란 것은 성취되거나 버려진다. 어느 쪽이든 모두 과거에 속하게 된다. 돈, 지위, 모든 허영은 바람을 좇는 것처럼 허망하다.

딸이 나를 기억할 수 있을 만큼 조금만 더 살 수 있다면 좋겠다. 하지만 그러지 못할 것이니 한마디만 녀석에게 남기련다. '네 인생에서 너 자신에 대해 설명해야 할 순간이 있을 때, 어떻게 살아왔고, 무엇을 했으며, 세상에 어떤 의미였는지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돼 다오.'

나는 닥터 폴 캘러너시보다 30년은 더 살았고, 내 자녀들은 성인이 되어 자기 몫을 하고 있기에  어린 딸을 두고 세상을 떠나는 괴로움 같은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나의 삶이 세상에 어떤 의미였는지를 말할 수 있을까?’ 자문하면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이라도 좀 더 진지하고 충실하게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필자소개

유능화


경복고, 연세의대 졸업. 미국 보스톤 의대에서 유전학을 연구했다. 순천향의대 조교수, 연세의대 외래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서울시 구로구 온수동에서 연세필 의원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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