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폐로" -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안전성·경제성 기반 사회적 신뢰회복 중요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등 시설부터 갖춰야




  정부가 고리원전 1호기의 수명 연장을 포기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부쩍 악화된 원전에 대한 지역사회의 거부감을 외면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1978년 완공된 고리 1호기는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기술과 미국의 차관으로 건설한 58만7000킬로와트급 가압경수로다. 우리에게 '제3의 불'로 알려진 원전 시대를 열어준 주역이 가동 39년 만인 2017년 6월 18일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폐로는 더 사용할 수 없게 된 원전 가동을 종료하는 작업이다. 원전 부지에 설치된 모든 구조물을 물리적으로 해체한 후에 부지를 다른 용도로 활용할 수 있도록 복원하는 작업으로 마무리된다. 방사성 오염 물질을 방출하는 시설에 대한 제염(decontamination) 작업도 해야 하고, 해체 과정에서 나오는 방사성 물질도 안전하게 처분해야 한다. 상당한 수준의 첨단 기술과 적지 않은 비용이 필요한 어렵고 위험한 일이다.


폐로가 사회적으로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절대 외면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일이다. 세월이 흐르면 원전의 경제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발전 효율도 떨어지고 유지보수 비용도 늘어난다. 안전성도 보장하기 어려워진다. 시설이 낡으면 고장과 사고의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안전성에 대한 사회적 기대치가 높아지는 것도 부담이 된다.


폐로 결정의 일차적 기준은 '설계수명'이다. 원전 건설 당시 공학적으로 예상했던 수명이 바로 설계수명이다. 그러나 원전의 경제성과 안전성이 설계수명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건설이나 운전 과정에서의 관리 수준에 따라 실제 수명은 크게 짧아질 수도, 훨씬 늘어날 수도 있다. 설계수명이 끝나도 기술적 개보수를 통해 수명을 연장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폐로가 결정된 원전의 실제 수명은 다양하다. 설계수명을 넘겼지만 계속 가동 중인 원전도 많다. 현재 세계적으로 운전 중인 434기의 원전 중 82기가 그런 상황이다. 계속운전을 준비 중인 원전도 155기나 된다. 물론 사고·고장·설계오류·지진 등의 이유로 설계수명이 끝나기도 전에 가동을 포기한 원전도 있다. 미국의 TMI-2(1979), 피쿠아(1966), 캐나다의 젠트리-1(1977) 등이 그런 경우였다. 


설계수명이 끝났으니 무조건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지만, 기술적 보완만 해주면 얼마든지 계속 운전할 수 있다는 주장도 합리적이라고 볼 수 없다. 특정한 사례나 어설픈 평균을 앞세운 극단적 주장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원전 폐로는 객관적인 기술적 판단과 안전성·경제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기반으로 냉정하고 합리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물론 지역 주민 설득도 중요하다. 적정한 수준의 보상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원전 전문가들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장기 전력수급 정책에 대한 심각한 고민도 필요하다.


원전 재가동이나 폐로를 결정하기 위한 사회적 의사결정 구조를 확립해야 한다. 앞으로 15년 동안 재가동이나 폐로를 결정해야 하는 원전이 무려 12기에 이른다. 현재 가동 중인 23기와 건설 중인 13기도 언젠가는 폐로를 시켜야 한다. 지금도 월성 1호기가 설계수명이 끝난 상태에서 재가동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고리 1호기 폐로 작업이 당장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폐로에 필요한 기술도, 경험도 없다. 장난감 수준이었던 트리가마크2와 3의 폐로 경험을 자랑할 상황이 아니다. 폐로에 필요한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도 없다. 지금까지 폐로 준비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랍다. 2021년까지 1500억을 투자해서 세계 폐로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정부의 주장은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우리는 원하기만 하면 모든 꿈이 이뤄지는 동화 속 세상에 살고 있지 않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후에야 마지못해 허둥거리는 것은 선진국의 모습이 아니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디지털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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