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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전교조 재판
2015.06.18
‘겨레의 교육 성업(聖業)을 수임받은 우리 전국의 40만 교직원은 오늘 역사적인 전국교직원 노조의 결성을 선포한다. 오늘의 이 쾌거는 학생 학부모와 함께 우리 교직원들이 교육의 주체로 우뚝 서겠다는 엄숙한 선언이며, 민족 민주 인간화 교육 실천을 위한 참교육 운동을 뜨겁게 전개해 나아가겠다는 굳은 의지를 민족과 역사 앞에 밝히는 것이다’
1989년 5월 28일 발표된 전교조 창립선언문의 앞부분입니다. 마치 기미독립선언서를 연상케 하는 자못 비장한 어조입니다. 이 선언문의 기초작업에 참여한 40만 교직원의 대표자들이 독립선언서의 민족대표 33인처럼 이름을 남기지 않은 게 아쉬울 지경입니다.이처럼 숭고한 정신으로 창립된 전교조임에도 그 조합원인 교사들은 학생과 학부모 또는 일반인에게 자신의 조합원 신분이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꺼립니다. 누구든 조합원 이름을 밝히려 했다가는 전교조의 고소로 알거지 될 각오를 해야 합니다. 지난 2010년 당시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과 9명의 한나라당 의원들은 교육부에서 넘겨받은 전교조 교사명단을 공개한 사건으로 4년 넘게 전교조와 법정공방을 벌였습니다. 3심까지 끝난 1차 소송과 작년 10월의 2차 소송 2심 판결까지는 전교조가 이겼습니다. 1차 소송 때 원고인 전교조 노조원이 3,000여명이었으나 2차 소송에서 8,000여명으로 늘었다는 것 외에 쟁점은 같습니다. 형량도 1차 소송의 1심 판결과 같아 의원들은 명단을 공개당한 교사에게 1인당 10만원씩 11억원 등 모두 18억원을 배상하라는 것입니다. 이 재판과 동시에 진행되던 정부와 전교조 간의 법외노조 재판 결과가 지난달과 이달에 잇달아 나왔는데 여기에선 전교조가 졌습니다. 법외노조 재판은 ‘조합원 자격은 현직교사로 한다’는 교원노조법 2조를 어기면서까지 해직교사 9명을 노조원으로 두고 있는 전교조를 합법 노조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고용노동부의 법외노조 통고조치에서 비롯됐습니다.원래 이 재판은 1심에선 정부가 이겼는데, 2심 재판부가 1심 판결을 번복해 정부의 법외노조 통보의 효력을 정지시키고, 헌법재판소에 교원노조법 2조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함으로써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지난 5월 28일 헌법재판소는 2심 재판부의 위헌법률심판제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데 이어, 6월 2일 대법원은 고용노동부가 법외노조 통보의 효력을 정지시킨 2심 판결이 부당하다고 낸 재항고 사건에서 원심결정을 파기환송함으로써 법외노조 통고가 적법한 조치임을 확인했습니다. 이로써 전교조는 해직교사를 전교조에서 ‘해직’하지 않는 한 법외노조로 지위가 떨어져 불이익을 받게 될 것입니다. 헌재나 대법원의 판결은 전교조가 현직교사들의 단체여야 한다는 일반인들의 법감정에 부합하는 결정입니다.전교조는 5만3,000명의 조합원 가운데 단지 9명의 해직교사가 있다고 법외노조로 몰아가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이지만, 반대로 9명을 보호하려고 5만3,000명의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격하시키는 전교조 집행부의 처사는 더 부당해 보입니다.두 재판의 쟁점은 달라보여도 전교조의 조직운용이 비밀주의적이라는 점에서는 같고, 따라서 두 재판이 가져올 결과가 전교조 위상의 하락이라는 점도 같아 보입니다. 전교조는 태동기였던 1970년대 후반부터 10여년동안 정부로부터 불법단체로 규정됐다가 1989년에야 합법단체로 인정됐습니다만,대정부 강경투쟁으로 존재감을 확보해온 탓에 일반 국민들에게는 투쟁적인 이미지로 각인돼 있습니다. 초기에 2만명 수준이던 가입회원은 합법화 이후 50만 교원 중 20%인 10만명 이상으로 확대됐으나 200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줄어 지금은 10%대인 5만여명에 불과한 실정이라고 합니다. 탄압을 받던 시절이야 어쩔 수 없었다지만 요새 같은 개방시대에 가입자 수가 줄고 있는 현실은 전교조가 정체 내지 후퇴하고 있는 증거라고 하겠습니다.전교조가 조합원 명단 공개에 저항하는 것도 이같은 조직의 침체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고 여겨집니다. 전교조 교사는 학생과 학부모는 물론이고, 가족에게도 조합원임을 알리기를 꺼린다는 얘기까지 있습니다.전교조 창립선언문이 표방한 거룩한 목표를 보면 모든 교사들이 전교조에 가입하고, 스스로 조합원임을 자랑스레 밝혀야 마땅합니다. 교사 교수들이 단편적인 시국선언문에도 이름을 올리는 세태에 비추어 더욱 그렇습니다.법원은 조 의원 등의 전교조 교사명단 공개가 교사 개인정보 자기결정권과 노조의 단결권 및 사생활의 침해라고 했습니다. 노조 가입 사실이 드러나면 사용자로부터 급여나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을 염려가 있고, 그것이 회원들의 노조가입 기피나 탈퇴의 이유가 됨으로써 노조의 단결권을 침해한다고 보았습니다.조 의원이 명단 공개의 이유로 제시한 학생과 학부모의 알 권리 주장에 대해서 법원은 교사의 전교조 가입 자체로 학생의 수업권과 부모의 교육권이 침해된다고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법원의 이같은 판단에도 논란의 소지는 있습니다. 우선 공무원 신분인 교사는 회사로부터 월급을 받는 일반 근로자와는 다릅니다. 사용자로부터 불이익의 염려가 있다지만 보통 노조는 사용자에게 조합비 일괄공제를 위해 조합원의 명단을 제출합니다.사용자와의 관계에서 노조원의 명단 공개는 애당초 별 문제가 없고, 학생과 학부모 외에 일반 공개한 것에 대해서도 유죄로 판결했습니다만 일반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극히 제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국회의원들이 전교조 명단을 공개키로 한 것은 전교조의 불법이나 일탈을 견제하자는 데 목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공무원 노조로서 단체행동권에 제약이 있음에도 전교조는 출범 이후 줄곧 불법적인 정치투쟁을 예사로 했고, 편향적인 이념교육으로 논란을 빚기 일쑤였습니다. 이런 점들에 대한 고려가 있었다면 법원은 1심에서 상고심까지 일사불란하게 같은 판결을 내리진 않았을 겁니다. 1인당 배상금 10만원의 근거가 무엇인지도 아리송하지만, 법원이 전교조란 거대 단체가 개인들을 상대로 청구한 징벌적 배상을 용인하는 것이 정당한가를 생각하게 됩니다.원래 이런 징벌적 판결은 수많은 개인들이 거대 기업을 상대로 하는 송사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인 한사람에게 돌아가는 몫은 작아도 전체로선 큰 금액이어서 일벌백계의 효과를 노립니다. 그 점에 비추어 1인당 금액은 적어 보여도 전체로는 개인이 부담하기에 과도한 이 사건은 ‘역 징벌적 판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명단공개 사건에서는 입법부와 사법부 간의 감정대립의 징후도 있었고 그 빌미는 먼저 의원들이 제공했습니다. 법원은 의원들의 명단공개에 앞서 법원의 명단 공개 불허 결정에도 불구하고 공개를 강행하면 1일 3,000만원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겠다고 밝혔음에도 조 의원은 공개를 강행했습니다.그는 법원이 이행강제금을 부과하자 ‘조폭결정’이라고 비난하면서 “어마어마한 이행강제금으로 인해 국회의원을 떠나 개인적으로 양심의 자유가 결박당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동료의원 9명이 ‘법리보다 의리’라며 조의원의 명단을 동조 공개하고, 법원이 ‘국회가 사법부를 기망하고 법치주의를 훼손했다’고 격앙된 반응을 보인 것도 그때였습니다. 국회의원들이 ‘조폭’이니 ‘의리’니 하는 감정적 언사가 아니라 보다 공익적인 논리로 법원을 설득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전교조는 조 의원을 알거지로 만든 것을 고소해 할지도 모릅니다. 법원은 개인의 사생활 정보 보호에 기여한 판결이라고 자위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 대한 진실은 시민들의 반응에서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이 두 재판에서 일반인들은 결코 전교조에 우호적이지 않았습니다. 국회의원들은 무슨 일을 하던 욕을 많이 먹지만 명단 공개 사건에서만은 희한하게도 여론은 국회의원들 편이었습니다. 조합원 명단 공개를 두려워하고, 전체 조합원을 볼모로 소수 해직교사를 감싸는 조직으로 남는 한 여론은 결코 전교조 편이 아닐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전교조는 창립 이후 26년 동안 교육현장에서 전교조가 한 일이 무엇이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면서 창립선언문의 다음 구절을 다시 읽기를 권합니다.
‘가혹한 입시경쟁교육에 찌들은 학생들은 길 잃은 양처럼 헤매고 있으며 학부모는 출세지향적인 교육으로 편협한 가족이기주의를 강요받았다.’
필자소개
임종건
필자는 1970년 중앙대 신문학과를 나왔으며 한국일보사와 자매지 서울경제의 여러 부서에서 기자와 데스크를 거쳤고, 서울경제 논설실장 및 사장을 지냈습니다.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 위원 및 감사를 지냈고, 일요신문 일요칼럼의 필자입니다. 필명인 드라이 펜(Dry Pen)처럼 사실에 바탕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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