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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 승냥이
2015.06.04
아래 이야기는 함께 수필 공부를 하는 문우인 S 씨가 들려준 것입니다. 사람이 아닌 식물이나 동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편인데, 사연을 듣고 마음에 작은 물결이 일었습니다. 그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도 되었고요. 문우의 허락을 얻어 내용을 소개합니다. S 씨는 동물을 특별히 좋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승냥이(길고양이 이름)’를 만나기 전 까지는 말이죠. 아들과 함께한 산책길에서 추레한 몰골의 승냥이와 조우했다고 합니다. 불쌍해서 과자 부스러기를 주었더니 설레설레 따라오더라나요. 이후 같은 동네에 사는지라 오다가다 얼굴을 익히고 한동안 ‘썸’을 타고 ‘밀당’을 하다 마음을 트게 된 것이에요. 그들의 사귐에는 점진적인 관계 진행을 선호하는 문우의 성격과 고양이의 까칠한 기질도 좋은 면으로 작용했나봅니다. S 씨는 결혼 전 남편과 사귄 이야기를 언뜻 털어놓아 다른 문우들을 미소 짓게 하였습니다. 결혼 전 S 씨의 남편 역시 서두르지 않고 착실히 진도를 나가는 타입이었다고 합니다. 만일 남편이 처음부터 들이대는 스타일이었다면 결혼이 성사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하네요. 설마 그렇기야 하겠어요? S 씨와 남편은 ‘어쨌거나!’ ‘여하튼!’ 함께 가정을 이루었을 것이에요.아이를 낳아본 엄마로서의 마음 때문인지, 군 입대 전 승냥이를 특별히 보살펴주기를 바라는 큰 아이의 특별한 당부가 있어서인지는 모르지만 S 씨는 수시로 사료를 주며 한층 승냥이를 챙기게 되었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오곤 하는 승냥이 때문에 현관문을 몇 번씩 여닫으며, 비가 내리는 날은 안 보여서 걱정하고, 집이라도 비우게 되는 날은 배고플까봐 걱정하며 서로에게서 기다림을 배우며 우정이 점차 깊어갔다는군요. 그러던 차 문제라면 문제가 생겼습니다. 승냥이가 볼록해진 배를 하고 나타난 것입니다. 새끼를 밴 것이죠. 문우와 남편은 걱정거리를 안게 됐습니다. 습성과 행동의 패턴이 다른 길고양이를 집에 들일 수도 없는 일인 데다 승냥이를 알고 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지인의 권유로 새끼 고양이 ‘대박이’를 입양한 상황이었거든요. 하루가 다르게 불거지는 승냥이의 배를 보며 출산이 임박함을 느낀 문우는 집 부근 골목 한쪽에 간이 해산소(解産所)를 만들었습니다. 널빤지와 비닐포대로 비바람을 피할 수 있을 정도의 엉성한 시설이었지만요. 간간히 비가 흩뿌리는 날 승냥이는 애비(무전취식 고양이겠죠)가 누구인지 모르는 새끼 세 마리를 낳았어요. 눈도 못 뜨는 귀여운 새끼들을 보며 기특한 생각이 들면서도 S 씨의 심란함 또한 극에 달했습니다. S 씨는 난처함을 하소연하며 승냥이 가족사진을 카톡에 올렸습니다. S 씨를 위로하거나 격려하는 동아리 회원의 답글이 이어졌음은 물론입니다. 그중에는 필자의 댓글도 포함되어 있답니다.ㅡ 우선, “승냥아, 니 시껍했제? 욕봤다!” 상냥하게 물으며 노고를 치하한다 (S 씨는 오랜 기간 부산에 거주하여 사투리 구사에 능함)ㅡ 어미에게 생선뼈(대가리 포함)가 든 미역국 같은 특식을 제공한다ㅡ 대문에 ‘Hello Kitty' 스티커를 부착하고, 안전을 위한 CCTV 설치를 검토한다ㅡ 주위를 청결히 정리정돈하고 새끼들이 건강하게 크는지 수시로 관찰한다ㅡ 새끼들이 어느 정도 자라면 수필반 회원들에게 경매방식으로 분양한다위에 제시한 시답지 않은 처방은 길고양이 문제로 ‘고심’하는 S 씨에게 웃음을 선사하고싶어서 ‘고심’ 끝에 건넨 것입니다. 필자 역시 뾰족한 방도를 찾지 못하였는지라 답답한 마음을 투사하여 S씨의 고민을 가중케 한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이래저래 무심한 세월은 가고 승냥이 역시 마냥 눌러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인지 새끼들을 데리고 임시 거처를 떠났습니다. 한동안 보이지 않던 승냥이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두 달여 시간이 흐른 어느 날이었어요. 제법 틀이 잡힌 새끼 두 마리를 달고 찾아왔다고 합니다. 왜 두 마리냐고요? 다른 한 마리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필자소개
김창식
경복고, 외국어대 독어과 졸업. KAL 프랑크푸르트 지점장 역임.한국수필(2008, 수필) 신인상 . 시와문화(2011, 문화평론) 신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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