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기록 의무화? 쓰는 사람 못봐”
25개 기관 중 14개 서면 연구노트 사용
서면과 전자 연구노트 병행하기도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전자연구노트를 도입해 연구과정을 기록
하는 데 이용하고 있다. 전자연구노트는 기록을 장기간 안전하게
보관하고 검색을 통해 이전 기록에 접근하는 데 유리하다. 신용범
책임연구원(왼쪽)이 지난달 29일 전자노트를 작성하고 있다.
대전=김재명 동아일보 기자 ba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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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연구기관은 종이 노트에 손으로 기록합니다. 연구 과제를 시작하면 일련번호가 붙은 연구노트를 나눠 주죠. 이 노트를 매일 제3자인 다른 연구자에게 보여 주고 확인받습니다. 그런데 이러다 보니 특허 등 기밀이 노출될 위험이 있어요.”(한국생산기술연구원 A 선임연구원)
“전자 연구노트를 씁니다. 워드프로세서에 정리해 전용 시스템에 업로드하는 형식이죠. 그런데 저는 실험실에서 손으로 필기한 실험 기록을 퇴근 전 전자 연구노트에 옮깁니다. 개인적으로 이게 더 편하거든요. 연구노트를 이중으로 작성하는 셈이니 사실 비효율적이긴 하죠.”(한국화학연구원 B 책임연구원) 정부는 2007년부터 출연연구기관(출연연) 등 국책기관에서 연구개발(R&D)을 수행할 경우 연구노트 사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매년 국가 예산이 수조 원 투입되는 만큼 연구 결과를 효율적으로 보관하고 관리해 기술이전 등 사업화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또 연구노트는 연구자와 연구기관이 공동으로 소유하는 지적재산권에 해당하는 만큼 법적 효력이 있어 특허 소송 등 분쟁 시에도 필수 증빙 자료로 쓰인다. 하지만 동아일보가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25개 출연연의 연구노트 사용 실태를 전수 조사한 결과 연구노트 사용이 유명무실한 기관이 다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 출연연 관계자는 “연구노트는 강제적으로 쓰도록 관계 규정에서 명시하고 있지만 징계 규정이 없어 사실상 연구자 자율에 맡겨 놓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30년간 보관해야 하는데 공책에 손으로 써 25개 출연연 중 절반이 넘는 14개는 종이 공책에 손으로 기록하는 서면 연구노트를 사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출연연 상위 기관인 국가과학기술연구회가 규정한 ‘연구노트 지침’에 따르면 서면 연구노트를 쓰더라도 연필 등 수정이 가능한 필기구를 쓰면 안 되고, 낱장을 갈아 넣을 수 없도록 제본해서 써야 하는 등 기본 요건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연구노트 지침과 관련한 징계 규정이 없기 때문에 연구원들이 이를 무시하고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한 선임연구원은 발표용 프로그램(파워포인트)에 개인용 메모만 기록해 보관하고 있다. 그는 “아무도 지침을 관리하지 않다 보니 사실상 유명무실하다”고 지적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의 한 책임연구원은 “연초에 연구노트를 나눠 주고 연말에 노트를 걷어 간다”면서 “연구 기간이 1년 이상인 경우 중간에 연구노트를 걷어 가는 꼴이어서 다른 노트에 이중으로 기록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종이 연구노트의 경우 연구노트 지침에서는 30년간 보존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어 현실적으로 장기 보관에 어려움이 있다. 또 필요한 연구노트를 한번에 찾는 일도 쉽지 않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한 책임연구원은 “종이 연구노트는 검색도 안 되고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면서 “특히 기술 개발 시점 등 특허와 관련해 중요한 정보를 확인해야 할 때에는 종이 연구노트가 확실히 불편하다”고 말했다. 이런 종이 연구노트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전자 연구노트를 도입한 출연연은 5개로 조사됐지만 이들 역시 사용은 연구자 개인에게 맡긴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전자 연구노트가 제대로 사용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한 책임연구원은 “연구노트를 스캔해서 올리는 방식인데, 파워포인트 자료를 올리기도 한다”면서 “처음에는 전자펜도 주면서 이용하라고 했으나 귀찮아서 그냥 노트를 스캔해 올리는 방식을 이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한 책임연구원은 “전자 연구노트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지만 기술적인 기록을 남기기에는 불충분해 별도 연구노트를 따로 정리해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관계자는 “사용이 지지부진하고 개별 연구자에게 자율적으로 맡겨 놔 유명무실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 일관된 프로그램과 가이드라인 만들어야 전자 연구노트를 사용하는 연구자들이 현실적인 불편함을 호소하면서 전자 연구노트와 서면 연구노트를 병행하는 기관도 5개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의 한 책임연구원은 “실험 기자재가 많은 곳은 컴퓨터 놓은 공간이 없어 노트에 손으로 쓸 수밖에 없다”며 “지금 전자 연구노트를 도입하면 손으로 쓴 노트를 보며 다시 서류 작업을 해야 한다”고 털어놨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종이 연구노트와 전자 연구노트를 병행하고 있지만 향후 전자 연구노트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방침을 세웠다. KIST의 또 다른 관계자는 “과거에 수기로 기록했을 때는 과제 후 사라지고 방치됐던 연구노트들이 전산으로 기록되고 보호된다는 점에서 노하우가 오래 저장될 수 있어 유리하다”고 밝혔다. 특허청 산하 한국지식재산전략원 경태원 그룹장은 “지식재산권의 중요성이 커지는 만큼 연구노트는 한층 중요성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라며 “앞으로는 전자 연구노트가 대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준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기술원은 “국내외 기업이 통일된 규격으로 프로그램을 공급해야 연구원들이 연구 자료를 손쉽게 기록할 수 있다”면서 “연구노트와 관련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제공 동아사이언스 대전=전승민 기자 enhanced@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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