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대금 좀 주세요”

해외대형건설사, 어떤 기준없이 '갑'질


KBS동영상 캡처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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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봉진(협력업체 에스엠종합개발대표) : "경비를 안주면. 경비로 현장 운영을 해야 하는데. 현장 운영을 못하지 않습니까. 준공을 2주 앞두고 계약해지를 합니다."


<인터뷰> 김봉석(협력업체 KNHI대표) : "우리 직원들 살릴 수 있도록 정말 도와주십시요. 대기업에서. 그것 말고는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인터뷰> 고태식(해외기계설비건설발전위원회 위원장) : "계약을 국내법에 준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해외법에 준한 것도 아니고. 어떤 기준없이 자기들이 필요에 의해서 그냥."


우리나라 건설업체들의 해외 건설 수주 누적 액수는 모두 6800억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680조원에 이릅니다.


건설업계는 외환위기 직전까지는 국내 건설투자로 호황을 누렸고, 국내 건설 경기가 부진해지자, 이후에는 해외에서 성장세를 이어갔습니다.


이런 건설업계의 외형적인 성장이 중소협력업체로 이어졌을까요?

해외건설현장에 참여한 중소기업들은 국내 하도급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대기업들과 계약을 맺고 공사를 진행합니다.


다음 공사를 위해서 불공정한 계약을 감수할 수 밖에 없었던 중소협력업체들의 사연을 들어봤습니다.


<리포트>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화력 발전소 건설현장.


세계 최대규모의 복합 화력발전소를 짓는 공사로 지난 2011년, 삼성물산이 수주해 공사를 진행했습니다.

지난 2012년 7월, 에스엠 종합개발은 삼성물산의 협력업체로 이 공사의 전기배관공사에 참여했습니다.


공사 진행은 초반부터 순조롭지 않았습니다.

에스엠 종합개발은 선행공정이 늦어지면서 후행공정을 맡은 자신들의 작업도 계속 늦어졌다고 주장합니다.


또 공사 기한을 맞추기위해 장비와 인력 투입이 늘어났고, 추가 작업도 진행됐는데 종종 삼성물산측은 구두로 지시를 했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이봉진(협력업체 대표) : "삼성직원들은 공사를 시킬 적에도 말로만 시킵니다. '어떤 서류를 주십시오.'하면 무시를 하구요. 그러면 저희는 준공 일자가 도래가 되니까. 거기에 맞춰서 일을 하고."


추가대금을 언제 어떤 방식으로 지불하겠다는 약속이나 협의도 없이 현장에서 공사는 계속 진행됐습니다.


협력업체 측은 더이상 적자를 감당하며 공사를 진행할 수 없다고 판단해, 추가로 비용이 발생할 때마다 각 건별로 영수증 비용 처리를 해달라고 삼성물산측에 요청했습니다.


삼성물산은 이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협력업체가 영수증을 제출하면 그 내역을 믿을 수 없다며 비용의 일부만 결제해줬습니다.


<녹취> 삼성물산 관계자 : "저희와 정산에서 이견을 보인 부분이기 때문에.. 그 전단계까지는 저희가 정상적으로 (처리를 했습니다.)"

협력업체는 곤경에 빠졌습니다.


<인터뷰> 이봉진(협력업체 에스엠종합개발대표) : "인건비만 주고 경비를 안주면. 경비로 현장 운영을 해야 하는데. 현장 운영을 못하지 않습니까."


추가로 발생하는 비용을 받지 못하면서 협력업체의 재정 상황은 악화됐고 인부들과 설비, 장비업체들의 임금을 지불하지 못했습니다.

1년 가까이 이런 상황이 이어지던 지난해 6월 24일, 삼성물산은 협력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했습니다.


공사 완공을 불과 2주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삼성물산은 이 협력업체가 현지 인부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고, 회사 운영을 잘못해 체불업자들이 원사업자를 찾아와 괴롭혔기 때문에 계약을 해지한다고 밝혔습니다.


<인터뷰> 삼성물산 관계자(음성변조) : "계약타절 같은 경우도 계약서 상에 계약 근거 조건을 근거로 해서. 정상적인 어떤 그런 계약 절차로 이해해주시면.."


그리고 공사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전기공사공제조합에 맡겨둔 24억여원의 계약이행보증금도 회수해갔습니다.


협력업체가 남은 공사대금만이라도 정산해달라고 요구하자, 삼성물산은 자신의 요구사항을 받아들이겠다는 각서부터 써야 협상을 진행하겠다고 통보했습니다.


<인터뷰> 이봉진(협력업체 대표) :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갔습니다. '이 각서를 써줘도 됩니까, 날인해도 됩니까.' 했더니. 이 내용을 써주면 나중에 어떤 문제제기도 못한다. 잘 판단해라."


협력업체는 삼성물산으로부터 약 100억여원의 추가 공사대금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삼성물산 측은 오히려 협력업체가 자신에게 입힌 손해를 물어줘야한다는 입장입니다.


<인터뷰> 이봉진(협력업체 대표) : "그것은 저희보고 죽으라는 소리입니다. 저희는 2014년 6월 17일 이후부터 서서히 고사되고 있습니다. 저희 직원들 부장, 차장, 이사들 다 그만뒀습니다."


이 공사현장에 참여했던 또 다른 협력업체도 마찬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추가 공사가 계속되는 현장에서 자금 압박에 시달리던 협력업체 정풍개발은 중간에 공사를 포기했고 9개월이 지나도록 대금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업체가 추산한 미정산 공사금액은 모두 190억여원입니다.


<인터뷰> 김성원(협력업체 정풍개발 대표) : "너무 과 투입이 되다보니까 돈이 없다. 합의를 해서 타절을 (공사를 포기하기로) 했어요. 중간에 공사를 포기하고 저희 조직과 그 다음에 공구나 자재 구매한 것. 그대로 다 넘겨주는 걸로 해서.."


삼성물산과 해당 업체들이 맺은 계약서입니다.


하도급 회사는 계약서에 명시돼 있지 않은 내용이라도 공사를 이행해야하고, 원청사, 즉 삼성물산은 이런 사항을 구두로 지시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공사가 끝나고 3개월 안에 공사금액 합의가 안되면 최종 공사비용은 삼성물산이 먼저 제시하고 협력업체는 이런 사항을 받아들이도록 되어 있습니다. 


추가 공사 과정도, 이에 따른 비용 산정도 원사업자인 삼성물산에게 유리하도록 돼 있습니다.

이 계약이 공정한 것인지 공정거래위에 질의했습니다.


공정거래위는 삼성물산과 협력업체가 맺은 계약은 불공정 계약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는 해외 건설현장에서 일어나는 불공정 거래를 막기 위해 건설 하도급 표준 계약서를 제정했습니다.


표준하도급계약서에는 추가 공사를 할 경우 반드시 서면을 발급하도록 되어 있고, 추가 경비는 협력업체와 상의한 뒤 실비정산을 하도록 규정되어 있는데, 이런 사항들을 위반했기 때문에 불공정 계약이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삼성물산은 해당 업체와의 계약은 해외건설업 표준 하도급 계약서가 제정되기 전에 이뤄졌기 때문에 계약조항들이 불합리했다고 단정짓기는 어렵다고 주장합니다.


이와 함께 이번 분쟁은 대한상사중재원에 중재신청을 한 만큼, 중재가 나오기 전까지는 어떤 해명이나 협의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녹취> 삼성물산 관계자(음성변조) : "어떤 계약이라든지. 대금집행이라든지.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저희는 정상적인 절차에 따른 집행을 한 부분이기 때문에. 저희가 지금 현재로서는 뭐라고 답변드릴 수 있는 부분이 아니고요. 중재원에 중재신청이 되면 협력업체에서도 그런 부분들을 신청을 하실것이고."


공정거래위원회도 계약이 불공정하기는 하지만 해당 업체들이 해외 법인 자격으로 계약을 했기 때문에, 국내 하도급법 적용을 할 수 없어, 법적인 제재를 하기는 어렵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김정신(공정거래위원회 기업거래정책국장) : "(국내 하도급법은) 국내 기업간에 이루어진 거래에 대해서만 적용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현지법인 해외 현지법인이 한쪽이라도 현지법인이라면 법적으로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다. 구두로 발주하고 그거를 또 받아들이는 이런 것들이 아니라 서면으로 이뤄지고, 또 서면으로 더 꼼꼼한 검토하에 계약을 이루어지고 하는."


많은 해외 건설 협력업체들은 이런 불공정한 계약이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또 다른 계약서입니다.


계약 수정도, 대금 지불도, 작업 종료 시기도 원사업자의 결정과 재량권을 따르도록 되어 있습니다. 

공사가 지연될 경우 어떤 비용도 원사업자에게 부과하지 않고, 협력업체 스스로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작업 기간, 작업 과정을 결정할 권리, 추가 공사가 필요할 경우 대금을 청구할 수 있는 권한까지 모두 원사업자가 가지고 있는 겁니다.


<녹취> 협력업체 관계자(음성변조) : "우리는 정당하게 청구를 해도, 계약서. 노예계약서처럼 만들어져 있는 계약서에 따라서 줄수 없다. 그래서 하도급 회사들이 경영상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거의 고사직전에.."


해외 공사 대금을 그 나라의 아파트로 주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그 나라는 외국인의 부동산 소유가 제한되는 국가였습니다.


<인터뷰> 고태식(해외기계설비건설발전위원회 위원장) : "(어떤 업체는) 현지에 소송을 제기해서 3년 뒤에 정산을 했습니다. 현금으로 안줬습니다. 대물로 줬습니다. 그리고 그 차액은 어음으로 줬습니다. 그리고 부도가 났습니다. 계약을 국내법에 준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해외법에 준한 것도 아니고. 어떤 기준없이 자기들이 필요에 의해서 그냥."


1차 협력업체가 아닌 재하청업체들은 해외에서 분쟁이 일어나면 문제를 해결하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지난 2013년, CJ 건설이 발주한 말레이시아 공사 현장에 참여했던 철골구조물 제조 업체, KNHI입니다.


이 업체는 CJ건설의 협력업체인 WGL이라는 현지 법인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CJ건설의 재하청업체인 셈입니다.


말레이시아 현장에서 공사를 하는 동안 대금 관련 분쟁이 계속 됐습니다.

1차 협력업체인 WGL은 원사업자인 CJ건설로부터 20여 억원을 받지 못해 대금 결제를 제때 해주지 못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CJ건설은 초기 계약금 115억 원 가운데 106억 원을 지급했다면서 추가로 발생된 비용에 대해서는 협의가 마무리 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이 과정에서 WGL의 재하청업자인 KNHI는 대금을 받지 못했고, WGL의 동의를 구해 원사업자인 CJ건설에게 대금을 직접 지불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인터뷰> 김봉석(협력업체 KNHI 대표) : "CJ에 그 담당부장이 '그러면 직불동의서를 받아와라'라고 저희들한테 이야기를 했습니다. (중간 협력업체가) 직불할 수 있도록, 직접 받아갈 수 있도록 자기들이 모든 권리와 행정적인 부분들을 책임지겠다라고 해서. 직불 동의를 저희들이 받게 된거죠."


CJ건설은 직불동의서를 세번이나 수정하도록 요구했지만 결국 대금을 지불하지는 않았습니다.

재하청업체인 KNHI는 18억여 원에 이르는 공사대금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CJ건설 측은 재하청업체에게 직접 대금을 주고 싶어도, 중간업체인 WGL과 연락이 닿지 않아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녹취> CJ건설 관계자 : "저희가 직불을 할 의향이 없었던 것이 아니고...금액이 저희와 계약관계가 있는 WGL이라는 협력업체와 정산이 돼야 하는 상황이거든요. 정산이 안돼서, 금액을 확정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저희가 빨리 정산하자고 수차례 WGL에 통보를 했고 전화도 여러번했는데 전화번호를 바꾼다고 합니다. 연락이 안된다는 게 가장 큰 문제고요."


연락이 닿지 않는다던 1차 협력업체 WGL에 연락을 해봤습니다.

바로 전화 통화가 됐습니다.


이 업체는 CJ 건설의 대금정산이 늦어져 재하청업체에게 대금결제를 못해주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녹취> "저희들이 돈받는 입장인데. 시간없다. 너네 왜 만나느냐. 그런식으로 나오고. 저희 WGL입장에서는 완전히 사기당한 기분입니다. (그럼 사장님은 협의를 하러 한국으로 오실 생각도 있다는 거죠?) 그럼요. 한국이든지 말레이시아든지. 미국이든지. 협의만하면 바로 날라갑니다. 왜 안갑니까."


국내 하도급법에서는 상황에 따라 원사업자가 재하청업체에게 직접 지불을 하도록 강제할 수 있습니다.

해당 업체들이 이 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을지 여부는, 법적인 해석에 따라 달라집니다.


법원이 해당 업체를 제조업 분야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면 국내 하도급법을 적용받아 직접 지불을 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조업이 아닌 건설업으로 분류되면 이 법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돈을 못받은 협력업체들이 궁지로 내몰리는 이유입니다.


<인터뷰> 강신하(변호사) : "발주자하고 원사업자하고 하청업체가 합의가 있거나 또는 2회 이상 원사업자가 공사대금을 지체하면 직접 수급사업자가 발주자를 상대로 대금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직불동의서가 CJ 건설하고, 중국업체하고, 한국업체가 3자 협의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근거도 되고."


우리나라에서 해외 건설에 참여하고 있는 기업은 해마다 늘어, 지난해에는 모두 5800여개에 달했습니다.

해외건설수주액은 연간 6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60조원이 넘습니다.


이런 해외 공사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중소 협력업체들과 현지 노동자들은 불공정한 계약과 처우에도 불구하고 숨죽이고 일을 할 수 밖에 없다고 호소합니다.


공정거래위의 해외건설업 표준 하도급계약서가 있지만, 강제사항이 아닌 권고사항일 뿐입니다.


<인터뷰> 박선구(대한건설정책연구소 책임연구원) : "정부가 이제 표준하도급계약서 같은 것에 대해서 사용에 대한 인센티브를 부여한다든지. (업체들이) 동반성장과 상생협력에 대한 의지를 좀 가지고, 사용을 한다면은 자율적으로 이게 퍼져나가야 되지"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공정거래위원회를 비롯해 정부가 명확한 개선의지를 밝혀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대기업 건설사의 눈치를 봐야하는 협력업체들로서는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협력업체 관계자(음성변조) : "저희가 대립해서 이긴다고 생각은 못합니다. 억울해도 (다음 공사 수주를 위해서는) 그냥 해야 된다."


정당한 공사대금을 받지 못한 협력업체들이 관련 기관의 처리기간이 너무 길어서 아예 문제 제기를 포기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인터뷰> 이동우(변호사) : "불공정거래로 분쟁이 발생돼서 1년이면 그게 공정위 조사든, 소송이 진행될 때 업체들이 견딜 수 없거든요, 제대로 공정하게 거래를 할 수 있게끔. 현실적인 구제를 해줄 수 있는 방향으로.. 현재 공정거래워원회 행위의 미비점들을 보완하는."


건설현장에서 추가로 공사를 지시를 할 경우 반드시 서면으로 근거를 남기도록 강제하는 하도급법 개정안과, 공정위의 1차 사건 처리를 두 달안에 진행하도록 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만들어졌습니다.


투명한 계약을 통해 건설현장에서의 대금 지불 분쟁을 줄이기 위한 관련 법 개정안들은 아직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KBS 손은혜 기자 unhasu1215@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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