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생으로 5년…갑자기 머리에 번뜩인 것은
김아림/지방직 보건직 9급(2014년 합격)
들어가며
보건대를 졸업하고 들어간 첫 직장은 재정난으로 월급을 몇 달씩이나 안 주더니 결국 망하고 말았다. 1년을 백수로 방황하다 문득 30년 뒤를 바라보게 됐다. 평생 이 모습 이대로 살아갈 것 같았다. ‘이대로라면 나의 중년은 어떤 모습일까?’, ‘50살이 훌쩍 넘은 나는 나의 20대를 후회 안 할 자신이 있을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고, 인생을 수동적으로 살았던 내 자신이 보였다. 내 인생을 내가 개척하고 싶은 마음에 공무원 시험에 발을 들였다.
실패의 연속
나는 5년을 공시생으로 살았다. 2009년 8월, 1년 안에 합격시켜준다는 공무원 전문 학원에 등록했다. 계획도 세워주고 공부방법도 알려주는 그런 학원이었다. 그때만 해도 시키는 대로만 하면 정말로 1년 안에 합격할 줄 알았다. 하루 8시간씩 주5일 동안 강의가 있었는데 당시 금~일요일은 아르바이트를 했기에 금요일 강의는 평일에 나눠들어야 했다. 그렇게 하루에 10시간에 가까운 강의를 소화해냈지만 2010년 내 첫 시험은 불합격을 하고 말았다. 영어와 국사는 과락이 나왔고, 나머지 과목도 50점을 넘지 못했다. 노력이 부족했고 첫 시험이라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2010년 8월 다시 공부를 시작하려니 내년 시험까지 쓸 생활비가 필요했다. 기존에 하던 아르바이트를 주5일로 늘렸다. ‘평일에는 돈 벌고 주말에만 공부하다 내년 1월부터 공부에 올인하는 거야’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를 늘리고 보니 필요했던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벌게 됐고, 인맥이란 것도 생겨 평일에 일이 끝나면 그들과 놀기 바빴고, 주말에는 평일의 피로를 풀기에 바빴다. 평소에는 인맥이 금맥이라지만 수험기간만큼은 부적절한 수식어라는 것을 그땐 몰랐었다. 그 결과 그 해 시험 역시 불합격을 했다.
‘경제적인 문제만 해결된다면 수험생활을 잘해냈을 텐데…’, ‘쓸데없는 인맥도 쓸데없는 지출도 안했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에서 온종일 공부만 할 수 있는 여건을 가진 사람들이 부러웠다. ‘저들은 경제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이런 생각들로 하루를 보내며 내 시험을 지원해주지 못하는 집안형편을 밤새 원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환경 탓을 하면 할수록 바뀔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인생에서 이거보다 나은 환경이었다면… 식의 조건 절은 없는 것 같다. 그저 내게 주어진 환경을 어떻게 하면 극복해 나갈까만 생각해야 한다.
2011년에는 줄일 수 있는 부분들은 최대한 줄여서 공부에 모든 시간을 투자했다. 강의도 공유해서 듣고, 매일 도시락을 싸서 다녔으며, 저녁 먹는 시간도 아까워 굶거나 정 배가 고프면 달걀이나 고구마 같은 구황작물로 대충 끼니를 때우곤 했다. 이번에 시험을 치른 한 합격자가 문제풀이와 모의고사 강의는 반드시 들어야하는 것이라기에 그 해는 문제를 풀고 답을 맞히는 데 모든 시간을 보냈다. 완료된 강의수와 쌓여가는 시험지를 볼수록 합격에 한 발짝 다가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보통 2~3년차가 되면 시험에 떨어져도 커트라인 근처에서 떨어진다는데 나는 80점대는커녕 모든 과목의 점수가 60~70점대에 머물러 있었고, 더 비참했던 것은 그마저도 내 실력으로 얻은 점수가 아니라 찍어서 맞힌 문제도 상당하다는 것이었다.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왜 점수가 안 나오지?’, ‘공부는 나의 길이 아닌가?’, ‘공부 꽤나 한다는 사람들도 수두룩하게 떨어지는데 나라고 될까?’, ‘이대로 공부를 지속한다고 정말로 합격할 수 있을까?’ 등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고, 나의 자존감은 밑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수험생활의 전환점
많은 수험생들이 시험에 떨어질 때마다 ‘다신 안 해. 절대 안 한다.’해도 결국에는 새로운 문제집을 사고 시험을 접수하고 있는 이유는 미련 때문이다. 나 역시 미련으로 다시 도서관에 나갔다. 도서관에는 성실히 나갔으나 내가 했던 것은 수험생 전용 카페를 들락거리는 것이 다였다. 공부를 해야 했지만 공부하기 싫었고 사실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다. 그렇게 카페를 들락거리며 합격수기를 읽던 중 갑자기 머릿속이 번뜩이기 시작했다.
불합격의 원인은 반드시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강의를 비롯한 교재쇼핑이었다. 한 과목당 인기 있는 강사와 교재는 다 있었고 같은 교재더라도 최신판이 나오면 지체 없이 갈아치우곤 했다. 이것도 어찌 보면 습관이었다. 다 보지도 못하면서 책만 갈아 치우는 습관이었던 것이다.
두 번째는 복잡한 생활패턴이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부터 잠이 드는 시간까지 규칙적으로 행동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쉬는 날도 일정하지 않았고 밥을 먹는 것도 불규칙했다. 중간에 친구들이 도서관에 찾아오기라도 하면 그날 하루 공부는 접었다.
세 번째 문제는 착각이었다. 어쩌면 나는 강의를 틀어놓은 것만으로 열심히 공부했다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또 강의 내용을 필기하고 요약노트를 잔뜩 만들었기에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내용을 다시 보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는 때가 많았다. 나는 그냥 강사가 칠판에 적으니 따라 적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모의고사형 문제풀이이다. 문제를 풀고 채점을 한 시험지가 늘어날수록 공부를 했다고 착각했다. 문제풀이 강의를 들을 때도 마찬가지지만 문제를 풀었으면 이 문제를 맞히고 틀린 원인을 찾아야 하는데 나는 매일 쏟아지는 문제들에 치어 내 실력을 체크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특히 시험막바지에 들었던 모의고사형(20문제짜리) 강의는 내가 가장 공부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하는 강의였다. 모의고사는 아는 문제는 넘어가고 모르는 문제는 체크하는 정도로 공부해야 하는데 모의고사형이나 문제풀이형 강의는 내가 아는 문제도 또 보게 되고 매일매일 강의가 쏟아지기에 모르는 문제를 내 것으로 만들 시간이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문제를 풀고 강의를 들었기 때문에 공부를 했다고 착각했다.
모의고사는 시험 마지막까지 한 달에 한 번 정도,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일까 정도를 체크하는 용도로만 봤어야 했다. 이것을 깨닫고부터는 공부방법론을 세우기 위해 합격수기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많은 합격수기들 중에서 굳이 공통점을 찾아보자면 모든 합격생들이 다 같은 강사에게 배우고 같은 책만 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인기강사는 있었지만 그 강사를 선택한다고 모두가 합격하는 것은 아니었고, 그 강사를 선택하지 않았다고 불합격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공부해야 할 것인가?
공부방법론
1. 계획 세우고 지키려 노력하기
계획 세울 때의 주의할 점은 내가 쉽게 포기하지 않을 정도로 짜는 것이다. 나는 오랜 시기를 백수로 살았기 때문에 아침 9시 이전에 일어난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기상시간을 10시, 취침시간을 1시로 잡고 11시부터 공부 시작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점점 이 생활이 익숙해져서 자동으로 눈이 떠지고 졸릴 때쯤 기상시간을 앞당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8시는커녕 9시에 일어나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나는 의지박약형 인간이기 때문에 무언가 강제적인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새벽운동이었다.
6시에 헬스장에 가고 1시간 운동하고 씻고 도서관에 갔다. 운동을 못하는 날에는 조조영화라도 보면서 어떻게든 6시에 깨어 있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일찍 일어난 대신 도서관에서 미친 듯이 졸았고 집중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이 방법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럴 때마다 더 악착같이 책상에 엎드리지 않으려 발버둥 쳤고 내 몸이 새로운 패턴에 적응해 가는 시기라 생각했다. 이 시기만 잘 버티면 자동으로 6시에 일어나게 되리라고 믿었다.
2. 공부계획
이미 수험기간이 3년이 지났지만 원점이라 생각하고 기본부터 공부하기로 했다. 우선은 가장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영어부터 잡기로 했다. 영어는 신성일 기본강의 중 문법파트만 들었다. 오전에 2강의 듣고 복습하고 오후에 2강의 듣고 복습하는 식으로 했다. 복습이란 게 A4용지에 강사가 칠판에 적었던 내용들을 복기하는 식으로 했다. 그러다 모르는 부분이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체크하고 다시 돌려들었다. 이 때 3~4번 들어도 이해가지 않는 부분은 체크하고 다음 회독 때는 이해가 가겠지 하고 넘어갔다.
독해는 천일문 파랑색 책으로 구문분석 연습을 했고 추가로 제니스 독해기적을 봤다. 가끔 공휴일이나 구문분석이 잘 안 되는 날은 강사들이 무료강의로 올려놓는 독해스킬 같은 것을 재미삼아 들었다. 단어와 숙어, 생활영어는 혼자 공부하기 싫어서 스터디를 꾸려 무한반복 스터디를 했다. 이렇게 문법이 어느 정도 반열에 올랐다 생각이 들어 신성일 555를 무한 반복하며 국어를 시작했다. 국어는 이미 어느 정도 반열에 올라가 있던 터라 바로 기출문제로 들어갔다. 여기서 반열이란 어떤 문제를 풀어도 절반 이상은 맞히는 정도이고 뭔지 알겠는데 암기가 덜 된 느낌정도가 되었다면 반열에 올라간 상태라 생각하면 된다.
국사 역시 마찬가지다. 국어 1회독이 끝나면 국사 기출로 1회독을 했다. 이렇게 국어와 국사를 1회독씩 마쳤을 때쯤 전공과목을 시작했다. 보건직의 특성상 전공은 비공개시험이기 때문에 기출을 구하기도 힘들고 논란소지의 문제들도 많아 공부할 때 정말 애를 많이 먹었던 과목이었다. 그래서 전공과목만큼은 수험가의 유명한 강사 두 분의 책으로 공부했다.
3. 기출의 중요성
합격수기든 강사든 강조하는 것이 하나있다. 바로 기출문제이다. 특히나 7, 9급 같은 객관식형 시험은 문제은행식이기 때문에 기출정복은 필수다. 기출문제를 풀고 답을 맞히는 개념이 아닌 기출문제 위주의 공부를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국사 신석기 시대의 동굴 찾기 문제가 있다면 보기의 내용을 OX로 풀어보고 틀리면 기본서로 돌아가 신석기 시대의 동굴과 나머지 보기의 동굴들을 다 외우는 것이다. 우선 다 외우기 벅차다면 기출 해설에 있는 것부터 다 외우려 했다.
4. 반복과 삭제
나의 장수생 비결은 이 책 저 책, 이 강사 저 강사를 바꾼 것이 한몫했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해설이 탄탄한 기출문제집 하나를 잡고 회독을 늘리기로 했다. 회독을 하는 이유는 하나다. ‘줄여나가는 공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한 번보고 다른 책으로 넘어간다면 우리는 아는 부분은 또 보게 되는 것이다.
시간 낭비다. 처음 1회독 때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맞다. 사소한 단어조차 생소하고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자고 일어나면 이걸 언제 공부했지 싶다. 이 때 포기하면 안 된다. 이런 현상을 당연한 결과라 받아들이고 2회독을 시작해야 한다. 회독이 늘어나면 책이 익숙해지기 시작한다. 그러면 단어도 익숙해지고 그만큼 머리에 들어오는 부분들도 늘어난다.
이 때 조심해야 할 것은 어느 정도 책이 익숙해지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는 것은 과감히 뛰어넘고 모르는 부분만 공부해야 한다. 회독을 할 때마다 같은 문제가 계속 맞는다면 그건 뇌 속에 장기기억화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 과감히 버려도 된다. 절대로 아는 것에 집착하지 말자. 우리는 시험 전날까지 줄여나가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5. 스터디활용법
하루에 5과목을 다 공부하기란 정말 힘든 일이었다. 하루에 1과목을 2시간씩 본다 하여도 하루 10시간은 족히 걸리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하루에 3과목만 공부하기로 했다. 영어는 매일 하되 국어·국사, 공중보건·보건행정을 한 짝으로 지어서 약 한 달 주기로 공부했다. 매일 저녁 10시부터는 카톡으로 스터디를 했는데 국어공부를 하는 주기에는 국사스터디를 함으로써 국사공부가 보충되는 식이었기 때문에 국사공부를 놓고 있어도 전혀 불안하지가 않았다.
5명 정도의 스터디 원을 구성해 객관식, 주관식, OX, ( )채우기 등 자유롭게 문제 내는 방식을 취했다. 중요한 점은 강사마다 강조하는 부분도 다르고 논란소지 문제를 해석하는 방향도 다르기 때문에 나와는 다른 책을 보는 사람들로 구성해야 한다. 책은 다 다르되 목차만 맞추어 스케줄을 짜면 된다. 스터디 구성원을 이런 식으로 꾸리면 굳이 다른 책을 보지 않아도 다각도로 공부할 수 있게 된다.
6. 자기신념
나는 늘 불안을 달고 살았다. 특히나 수많은 직렬 중 기술직 그중에서도 특히 보건직에 합격해야 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비공개에 정보가 별로 없고 뽑는 인원수는 10명도 안되지만 공무원 모든 직렬 중에 경쟁률이 가장 높고 어떨 때는 모집조차 안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많이 뽑든 적게 뽑든 문제가 공개이든 비공개이든 모든 수험생들은 다 같은 마음일 것이라 생각했다. ‘공부를 할 때마다 이 부분을 공부했는데 안 나오면 어쩌지?’, ‘내가 정말 합격할 수 있을까?’ 늘 의심했고 영어단어나 국어 어휘를 외울 때는 더 심했다. 그럴 때일수록 더 나를 믿으려 했다. ‘이걸 공부해서 될까?’라는 생각대신 ‘이걸 공부해야 된다!’라고 생각했다. 흔들리지 않고 자기를 믿는 사람이 마지막에는 합격을 하는 것이라 믿었다.
마지막으로
아마 이 글을 읽으며 ‘나는 저 정도의 절실함이 없어서 안 되는 거 아닌가?’, ‘저 사람은 나보다 의지가 강해서 그렇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 나도 수많은 합격수기를 읽으며 느꼈던 부분이다. 그렇지만 나는 대단한 사람도 특별한 사람도 아니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온종일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있자니 어깨가 저리고 엉덩이가 아팠다. 밥만 먹으면 소화불량에 위염을 달고 살았고, 책만 보면 눈이 침침하고 편두통이 왔다. 그럴 때마다 도서관을 뛰쳐나가 놀거나 집에 가서 잤다. 이렇듯 나는 의지가 매우 약한 사람이었고,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은 작심삼일이었다. 이런 내가 합격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실패할 때마다 포기하지 않았고, 좌절과 불안감이 엄습할 때마다 내 자신을 믿으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한계를 볼 시간에 가능성을 믿어보자. 5분 더 자고 싶을 때, 친구들과 놀고 싶을 때, 인터넷이 하고 싶을 때마다 한 번만 더 참자를 되뇌어 보자. ‘~을 하고 싶다’는 생각 드는 바로 그 때, 그 한 순간만 잘 넘기면 나를 바꿀 의지가 생겨나게 된다. 자기를 믿자. 나는 믿을 만한 존재고 우리 모두 이 시험에서 합격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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