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괴담, 모조리 씹어먹어 줄게
장기밀매를 다룬 영화 공모자들의 한 장면 - 씨너스엔터테인먼트(주) , 타임스토리그룹 제공
지난 1부에서는 귀신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번에는 괴담을 다뤄볼까 합니다. 요즘에는 도시전설이라는 게 또 많이 퍼져 있지요. 이런 이야기는 어딘가 그럴듯하게 들린다는 점에서 귀신 이야기와는 다릅니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도시전설로는 ‘선풍기를 틀고 자면 죽는다’ 같은 게 있습니다. 물론 사실이 아니죠.
도시 전설은 ‘전설’~
제가 어렸을 때는 어린이나 청소년을 납치해서 불구자로 만든 뒤 앵벌이를 시킨다는 이야기가 흥했습니다. 섬노예처럼 인신매매와 관련된 이야기 일부는 사실로 드러나기도 했지요. 그 이후에는 좀 더 발전해서 사람을 납치해서 장기를 적출한다는 도시전설이 나타났습니다. 아마 많이 들어 봤을 겁니다.
해외여행 중에 낯선 사람이 권하는 음료수를 마시고 정신을 잃었는데, 깨어나 보니 어딘지 모르는 곳에서 얼음물이 담긴 욕조 안이고, 배에는 절개했다가 꿰맨 자국이 있더라는 겁니다. 도시전설에 대한 자료를 제공하는 온라인 사이트 snopes.com에 따르면 1990년대에 등장한 이야기라고 합니다.
변형판도 있습니다. 함께 여행할 사람을 구한다면서 혈액형이나 항생제 복용 여부를 묻는다거나, 술을 마시다 여성의 유혹에 넘어가 모텔로 자리를 옮겼다가 납치당할 뻔했다거나, 택시 기사가 승객을 납치한다는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아저씨’처럼 장기 밀매를 소재로 다룬 영화도 한몫 했지요.
현실적으로 이런 괴담이 사실이라고 믿기는 어렵습니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요. 일단 실제 피해자가 나타장이 없어졌다면 당연히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다들 ‘그런 이야기가 있다’고만 하지 실제로 피해자가 나서서 증언한 적이 없습니다. 애초에 신장 한 쪽만 떼어내고 얌전히 살려주는 이유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그렇게 큰 범죄를 저지를 바에야 나머지도 떼어낸 뒤 피해자를 죽여서 바닷속 깊이 가라앉혀 버리는 게 더 깔끔하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단순 실종 사건이 장기 적출보다 덜 이목을 끌지 않겠습니까.
사람은 레고가 아니에요
저만 그런 생각을 한 건 아닌듯합니다. 장기 밀매를 다룬 영화를 보면 체계적으로 활동하는 조직이 등장합니다. 나름대로 시설도 갖춰 놓았습니다. 이렇게 보니 좀 더 그럴듯해 보이긴 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말이 안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장기 이식은 간단한 수술이 아닙니다. 창고나 부엌 같은 곳에서 쉽게 할 수 없습니다.
사람 몸이 부품을 그냥 뺐다 꼈다 할 수 있는 레고가 아니잖습니까. 먼저 장기를 이식했을 때 거부 반응이 생기지 않도록 여러 가지 검사를 해야 합니다. 혈액형은 물론이고 조직적합성 검사도 사전에 다 마쳐야 하지요. 납치한 사람이 무슨 병을 앓고 있는지도 전혀 모르잖아요.
장기를 떼어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닙니다. 마취의, 외과의, 간호사 등 전문가로 이뤄진 수술팀이 제대로 시설을 갖춘 병원에서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살균이 제대로 안 된 곳에서 하다가 오염되면, 그 장기는 쓰지도 못하고 버려야 할 겁니다. 범죄에 가담한 사악한 의사 한 명이 뚝딱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죠.
그런 걸 모두 갖출 능력이 있다면 왜 범죄자가 됩니까. 저 같으면 병원 차립니다. 아니면, 병원과 의사가 조직적으로 범죄에 가담해야 한다는 소리인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연히 납치한 사람의 장기가 기다리고 있는 환자와 맞아떨어질 확률도 매우 낮습니다. 장기는 한 번 떼어내면 오래 보관하지 못하니까 한 건 성공시키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피해자를 만들어야 할까요? 피해자를 납치한 뒤 맞는 환자가 나타날 때까지 살려두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수지가 안 맞는 장사입니다.
tpsdave(pixabay) 제공
그 시간에 다른 걱정을!
장기 밀매를 위한 인신매매가 지구상에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무법천지인 나라도 있을 수 있을 테니까요. 옆나라 중국에서도 한 아이가 안구를 적출당한 채 발견됐다는 뉴스가 나온 적이 있었지요. 하지만 아까 말했듯이 사람을 마취시켜서 신장 하나만 쏙 빼가는 류의 장기 적출이 은밀히 일어난 다는 건 가능성이 매우 낮습니다.
실제로 장기 밀매 혐의로 붙잡히는 사람들은 대개 불법 장기 이식 수술을 알선하고 돈을 받은 브로커입니다. 서류를 위조해 장기 이식을 받는 사람과 주는 사람을 가족으로 꾸민 뒤 중국이나 인도의 병원에서 수술을 받게 해주는 수법입니다. 생판 모르는 사람을 납치해서 무작정 장기를 빼낸다는 괴담과는 다르지요.
괴담의 내용이 신장 하나만 뺏긴 채 차가운 얼음물속에서 깨어난다고 돼 있는 건 아예 목숨을 잃는 것보다 그쪽이 공포심을 더 자극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세상에는 조심해야 할 일이 굉장히 많지만, 장기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일단 한쪽 구석으로 밀어놓아도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장기 적출 때문은 아니더라도 여행할 때 모르는 사람이 주는 음료수는 안 마시는 게 좋겠지만요.
※ 동아사이언스에서는 고호관 기자의 ‘완전 까칠한 호관씨’를 매주 수요일 연재합니다. 2013-2014년 과학동아에 연재되었던 코너로 주위에서 접하는 각종 속설, 소문 등에 대해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지 까칠한 시선으로 따져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과학동아 고호관 기자 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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