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논’ 마르(Maar) 분화구 복원, 어찌해야 하나? [정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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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논’ 마르(Maar) 분화구 복원, 어찌해야 하나?

2015.04.06


익숙한 듯 생소한 ‘하논’이란 말은  제주 서귀포 소재의 어떤, 좀 특이한 논[畓]의 이름입니다. ‘큰 논’이란 뜻이지요. 원래는 논이 아니라 분화구 호수였는데 500여 년 전에 논으로 변형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제목처럼 이 논을 500년 전의 상태로 다시 되돌리자는 논의에 이어 이를 위한 연구와 조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논 마르 분화구 복원 추진위원회>도 결성돼 있답니다.

제주도에는 180만여 년 전 최초 해저 화산 폭발에 이어 계속된 폭발로 땅이 솟아난 이후 오랜 기간에 걸쳐 2차 폭발들이 일어나면서 한라산 기슭에 368개의 구릉들이 솟아나게 되었습니다. 이 구릉들을 이곳 말로 ‘오름’이라 하는데 하논 분화구도 오름의 하나로서 크기로는 5번째입니다. 이 분화구는 마그마가 지하 수맥을 뚫고 분출되면서 생겨난 것으로서 동시에 천연 호수를 이루었습니다. 이런 분화구를 '마르(Maar) 분화구'라고 하는데 독일, 프랑스, 호주 등지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것들이 있으며, 천연 화산 호수인 만큼  아름답기로 소문이 났다고들 합니다.

서귀포 해안에서 멀지도 않은 이 특별한 분화구 호수를, 약 5백 년 전에 사람들이 둑을 터뜨려 물을 천지연폭포 쪽으로 빼내면서 논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만큼 제주도는 당시 식량 사정이 좋지 않았고 더욱이 지형상의 문제로 물을 가두지 못해 논이 귀할 때였습니다. 지금도 이 논 외에 겨우 한두 개의 작은 논이 있을 뿐입니다. 그렇게 식량도 귀하고 어족 외에는 먹거리가 부족하였으니 한양으로부터 가장 먼 거리라는 점이 더해져 유배지로서도 최적이었을 것입니다. 

경위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그간 외국의 전문가들이 탐사를 해보니 5만 년 전에 호수이던 곳이 오랜 기간 생태계의 갖가지 퇴적물이 침전하여 15미터(매년 한 층씩 천 년에 30~40센티미터씩 퇴적)나 쌓여 있다고 합니다. 이 퇴적물 속에 귀중한 고대 기후와 고대 생물 등 인류 생태의 비밀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원 이야기가 나오게 된 것인데 이를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하면, 복원되는 마르 분화구 호수로는 세계 유일의 것이 됩니다. 다른 것들은 계속 호수였으니 퇴적물 보전이 하논 분화구만큼 잘 되어 있지 않다고 합니다.

현재 제시된 계획대로 복원하면 고기후(古氣候)와 고생물 연구의 세계적 보고(寶庫)일 뿐 아니라, 자연생태 복원이란 환경 명제에도 부합하는 새로운 명품 볼거리도 되기 때문에 제주도 사람들은 복원해야 한다는 데에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냥 놔두면 필시 난개발이 되거나 중국인들에게 넘어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복원 논의가 열을 띠게 된 것은 10여 년 전에 그곳을 야구 전지훈련장으로 개발한다는 발상이 제기되고부터라 합니다. 만일 그곳이 개발된다면 인류의 소중한 유산 하나를 영구적으로 매장하게 되고 마는 것이지요. 그래서 관련 분야의 국내외 많은 학자들도 복원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복원 논의가 있어 오던 중 2012년 9월에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주관의 세계자연보전총회(World Conservation Congress)가 제주 서귀포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이 회의에서 하논 분화구 복원 문제가 의제로 올라, 복원해야 한다는 권고문까지 채택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직경 1.2킬로미터나 되는 분화구와 이를 둘러싼 거대한 사면(斜面)과 주변을 복원한다는 것은 대역사(大役事)일 것입니다. 물론 관련 국제기구 등과의 협업으로 30년 간(핵심 복원은 10~12년) 단계적으로 해 나갈 일이지만 어쨌든 지금 추산으로도 2천 수 백억 원의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입니다.  

현재 미미한 경비로 연구 조사 등 준비 작업만 할 뿐이지 실제로 이 사업을 언제 착수할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이미 이렇게 논으로 돼 있는데 이걸 다시 호수로 복원한다면 그것도 환경을 훼손하는 것이 아닌가, 지금대로 두는 것이 옳지 않은가?" 하는 반론을 펴기도 하고 일부 지주들은 관광호텔이라도 지으면 더 많은 돈이 생길 터이니 반대부터 하고 보자는 입장이라고도 합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저도 600여 명의 추진위원 중 한 사람으로서 나름대로 고민을 해보고 있습니다. 국제적인 인정을 받고 있는 충분한 명분과 필요성에 더하여, 제 집에서 10분도 안 되는 거리로 해안에서도 멀지 않은 곳에 이처럼 아름다운 호수가 생긴다면 자연환경적으로 얼마나 좋겠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저만이 아니라 많은 제주도 분들이, 이 섬에서 보기 어려운 태고의 천연 호수가 다시 돌아오는 것을 큰 축복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큰돈이 들지만 이것저것 따져볼 때 언젠가는 꼭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른 데 돈 쓸 일이 많다고 하지만, 말라가고 죽어가는 지구에서 자연생태 보전만큼 중요한 일이 그리 많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희망대로 중앙 정부까지 나서서 복원을 결정하더라도, 이런 큰 사업은 나중에 별 일이 생기지 않도록 여러모로 용의주도하게 잘 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강정 해군기지 문제로 홍역을 앓아 온 제주로서도 복원이 좋다고 무턱대고 시작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장 복원 사업을 시작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지역이 개발사업자에게로 넘어가는 일이 없도록 사전에 법적인 제반 보호 조치는 해 두는 게 좋을 것으로 보입니다. 동시에 복원에 필요한 연구와 조사를 계속하면서 막대한 예산 확보를 바탕으로 한 정책적 판단이 섰을 때 착수하는 것이 현명한 길이 아닐까 합니다. 다만, 행정 처리에 대한 불안과 불신이 상존하는 만큼 우물쭈물하다가 이 지역이 터무니없이 개발의 대상이 되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하는 기우(杞憂)가 있을 뿐입니다. 

필자소개

정달호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줄곧 외교관으로 일했으며 주 파나마, 이집트대사를 역임했다. 은퇴 후 제주에 일자리를 얻는 바람에 절로 귀촌을 하게 되었고, 현재 제주평화연구원 객원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한라산 자락에 텃밭과 꽃나무들을 가꾸며 자연의 품에서 생활의 즐거움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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