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청탁 15가지 유형, 그외엔 괜찮다?

국민 상식 벗어나는 청탁·접대 바로잡는 ‘김영란법’ 
국회 통과했지만, 개정 보완 목소리 터져나와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2005년 해운회사 대표 등에게 8천만원을 받았다. 중국 선박이 운항 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힘써달라는 명목에서다. 문제는 중국 선박의 운항 허가는 중국 교통부의 전속 권한이라는 점이다. 공무원은 중국 교통부에 “운항 허가를 내줘야 한다”는 문서를 보내고 중국 공무원을 만나는 등으로 힘을 썼다. 결국 그는 뇌물죄로 기소됐다. 하지만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외국 선박의 행정처분은 한국의 해양부 공무원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직무와 관련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법 논리에 동의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한겨레21>이 2012년 8월 설문조사를 해보니 94.9%가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답했다. ‘처벌하지 말아야 한다’는 응답은 3.8%에 그쳤다. 현행 법률과 국민의 법상식 사이에 거대한 강이 흐르는 것이다. 그 강을 건널 수 있는 새로운 법이 탄생했다.

사기업의 언론인을? 그럼 은행 직원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이 3월3일 국회 본회의에서 압도적인 찬성(91.5%)으로 통과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국회는 3월3일 본회의에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일명 김영란법)을 찬성 288표, 반대 4표, 기권 15표로 통과시켰다. 압도적인 찬성(91.5%)이었다. 법안의 핵심은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없어도 1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으면 형사처벌(징역 3년 이하 또는 벌금 3천만원 이하)하고 100만원 이하라도 직무 관련성이 있으면 받은 돈의 2~5배를 과태료로 물리는 것이다. 골프 접대나 밥값, 술값 등이 다 포함된다. 한국 사회의 청탁·접대 문화에 획기적인 변화가 올 것으로 예상된다. 2011년 6월 김영란 당시 국민권익위원장이 “청탁받는 공무원을 처벌하겠다”고 국무회의에 보고한 지 3년9개월 만이다. 그러나 본회의 통과 하루 만에 김영란법은 위헌 논란에 휩싸이며 개정 및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온다.


쟁점 1. 언론인 및 사립학교 교원 포함
지난해 5월23일 국회 정무위원회. 애초 공직자에게 맞춰졌던 법안의 초점이 언론인으로 향했다.

강성훈 의원(새누리당) “단순히 KBS·EBS뿐만 아니라 관련 언론기관은 다 포함돼야 하는 게 논리적으로 일관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데요.”

강기정 의원(새정치민주연합) “그럴 것 같은데요. 길게 논의하지 맙시다.”

김용태 의원(새누리당) “길게 논의하지 말자니 무슨 소리야?”

강기정 의원 “다 넣자… 종편(종합편성채널)이고 뭐고 전부. 인터넷 신문, 종이 신문도 넣고….”

사립학교 교원도 공립학교 교원과 업무가 다르지 않다는 이유로 법 적용 대상에 추가됐다. 대한변호사협회는 3월5일 김영란법에 대한 위헌 확인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김영란법이 규율 대상을 자의적으로 선택해 ‘민간 언론’을 법 적용 대상에 포함한 것은 과잉 입법이라고 했다.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사기업 문제에 국가가 왜 개입하나”라고 반문했다. 

“민간 자본에 의해 만들어진 신문과 방송에 대한 판단은 독자가 해야지 국가가 개입해서 해당 회사 임직원들에게 돈 받았느냐 안 받았느냐 할 수는 없다.” 송기춘 전북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수사기관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김영란법 위반 혐의로 언론기관 내부 자료를 입수하고 언론인을 조사할 수 있다. 

나중에 무혐의 처분을 받더라도 그 피해는 막대하다”고 우려했다. 임지봉 서강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평등권’을 문제 삼았다. “공적자금이 어마어마하게 투입되는 은행 임직원도 공공성이 크지 않느냐. 그들은 빼고 언론인이나 사립학교 교원만 포함한 것은 평등권 침해 소지도 분명히 있다.”

쟁점 2. 의원들 특권 지키기
2013년 8월 정부가 국회에 넘긴 김영란법 정부안은 국회의원과 같은 선출직 공무원에게도 엄격했다. 공익 목적으로 ‘직접’ 공직자에게 법령의 제·개정을 요구하는 행위 등만 ‘부정청탁의 예외 사유’로 허용했다. 지역 유권자나 이익단체의 각종 ‘민원’을 받아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는 관행을 뿌리 뽑기 위해서다. 그러나 국회는 원안에 없던 “선출직 공무원 등이 공익적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 민원을 전달하는 행위는 제재할 수 없다”는 예외 사유를 집어넣었다. 오경식 강릉대 교수(법학)는 “애초 입법 취지와 달리 정치인 등은 처벌하지 않는 불균형, 불평등한 법이 돼버렸다”고 비판했다.

합법을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것이 문제라며
부정청탁에 대한 정의도 국회에서 바뀌었다. 정부안은 부정청탁을 ‘공정하고 청렴한 직무 수행을 저해하는 청탁 또는 알선 행위’로 정의했다. 대법원 판례로 부정한 청탁을 해석할 수 있기에 그렇게 포괄적으로 정했다. 다만 부정청탁에 해당하지 않는 예외 유형을 5가지 만들었다. 하지만 국회는 부정청탁 유형을 규정하는 열거주의로 변형했다. 불법을 포괄적으로 정하고 합법을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정부안이 문제라고 했다. 

부정청탁의 유형은 인허가, 처벌 감경, 인사·계약, 직무상 비밀 누설, 평가, 감사·단속, 징병검사 등 15가지로 좁혀졌다(62쪽 표 참조). 김주영 명지대 교수(법학)는 “부정청탁에 열거한 15가지 이외의 행위는 해도 괜찮은가”라고 되물었다. 송기춘 교수도 “부정청탁을 열거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동의했다. “공직의 청렴성 확보, 공직 신뢰라는 입법 목적을 달성하려면 부정청탁 행위를 열거한 방식보다 부정청탁을 정의한 정부안이 보다 타당성이 있다.”

국회는 김영란법의 유예기간을 1년에서 1년6개월로 늘렸다. 그 결과 시행 시점이 내년 4월 총선 뒤인 9월로 밀려 현 19대 의원들은 이 법의 적용을 받지 않게 됐다.

쟁점3. 가족 신고 의무
이완구 국무총리가 지난 2월 국회 청문회를 앞두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여러분들도 한 번 보지도 못한 친척들 때문에 검경에 붙잡혀가서 ‘시골에 있는 친척이 밥 먹었는데 그걸 내가 어떻게 합니까’ 항변하고 당해보라.” 정말 그럴까? 

정부안은 민법상 가족 범위를 사용했다. 다시 말해 일차적으로 가족이란 배우자와 직계혈족(부모·자녀), 형제자매를 뜻한다. 이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든 가족이다. 하지만 직계혈족의 배우자(며느리·사위)나 배우자의 직계혈족(시부모·장인·장모), 배우자의 형제자매(시동생·처제)는 생계를 같이해야만 법률상 가족이다. 따라서 “한 번 보지도 못한 친척들”은 김영란법의 적용을 받는 가족이 애초에 아니다.

게다가 국회는 법 적용 대상을 ‘민법상 가족’에서 ‘배우자’로 대폭 축소했다. 배우자가 직무와 관련해 100만원 이상의 금품을 받았음을 알게 되면 공직자가 이를 신고하도록 한 것이다. 이 규정을 두고 이번에는 ‘불고지죄’라는 비판이 일었다. 헌법상 양심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고 가족관계를 파괴할 우려가 있다는 주장이다. 

권성동 의원(새누리당)은 “부부간 신고 의무 부과는 일종의 부부파괴법이다. 법 이전에 인간의 본성, 천륜이 중요하다”며 김영란법에 반대표를 던졌다. 임지봉 교수는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했다. “다른 사람의 불법행위를 알았을 때 신고하지 않았다고 처벌할 경우 양심의 자유가 문제될 수 있다. 하지만 김영란법은 공직자 직무와 관련해 배우자가 금품을 받았을 때 공직자 스스로 미리 신고해 면책을 받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의 불고지죄와 평면적으로 비교할 대상이 아니다.”

배우자 규제, 선거법에서와 동일
헌법이 금지한 ‘연좌제’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송기춘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연좌제는 자기 책임이 아니라 가족이거나 일정한 사회적 관계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당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김영란법은 공직자의 배우자이기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 게 아니다. 공직자에 대한 부정청탁이 배우자를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서 그 금품수수를 금지할 뿐이다. 선거법에서 후보자와 배우자를 동일시해 규제하는 것과 비슷하다. 

게다가 금품을 받은 배우자에게 김영란법은 별도의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 다만 이를 알고도 신고하지 않으면 공직자가 과태료나 형사처벌을 받는다. 서보학 경희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공직자의 잘못을 다른 가족이 함께 처벌받는 게 아니라, 배우자에게 온 뇌물을 사실상 공직자가 수령한 것으로 보고 공무원의 책임에 대해 처벌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쟁점4. 수사권 남용
애초 공직자를 대상으로 한 입법 취지에서 벗어나 언론인, 사립학교 교직원까지 포함하면서 수사기관의 권한이 무제한으로 커졌다. 이기우 인하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검찰과 경찰의 자의적인 법 적용 가능성이 높고 수사 권한이 남용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임지봉 교수는 “지금도 정치적 사건에 대해 ‘표적 수사’라는 논란이 있는데 앞으로는 그런 사건이 훨씬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도 김영란법을 반대한다. 형사처벌을 받을 제1순위가 검사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스폰서 검사’ ‘벤츠 검사’ 등이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지만 정작 형사처벌을 받는 경우는 드물었다. 뇌물죄의 구성 요건인 직무 관련성과 대가성이라는 문턱을 넘지 못해서다. 정부안이 금품을 받으면 무조건 제재하는 것(입법예고안)에서 직무 관련성이 있는 금품을 받으면 형사처벌하는 것으로 후퇴한 것(국회 제출안)도 법무부의 힘이었다.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 뒤 ‘관피아’가 집중 공격을 받자 국회가 이를 되돌려놨다.

“수사하는 검찰을 수사를 못하니…
근본 문제는 김영란법이 아니라 수사권과 기소권을 장악한 검찰을 견제할 곳이 없다는 사실이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가 대통령 선거 때마다 공약으로 나오지만 말뿐이었다.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73.7%가 찬성하는데도 말이다(2010년 리얼미터).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저서 <이제는 누군가 해야 할 이야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현재는 판사든 국회의원이든 대통령 친인척이든 모두 검찰에서 수사가 가능하잖아요. 그런데 그 수사를 하는 검찰은 정작 아무도 수사를 못하고 있어요. 권력형 부패 전반을 조사하고 기소할 수 있는 제3의 기관을 만드는 편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생각해요.” 김 전 위원장은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를 좋은 예로 소개했다. 두 기관이 서로 견제하고 의심하면서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한겨레21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dited by kcontents


"from past to future"

데일리건설뉴스 construction news

콘페이퍼 conpaper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