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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강에 고래가 살아요?”
2015.02.13
‘거짓’이나 ‘정직’이란 단어를 접하면 오래전의 ‘하천 고래’ 에피소드가 생각납니다. 독일의 대학 도시 마르부르크(Marburg)에는 작은 란(Lahn) 강이 흐르고 있는데, 기차역에서 내려 시내로 들어가자면 이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야 합니다. 어느 날 필자가 다리 위를 걸어가고 있는데, 앞서가던 어린아이가 같이 가는 엄마에게 묻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습니다. “엄마, 이 강에 고래가 살아요?” 순간 필자는 아이 손을 잡고 가던 엄마가 어떤 답을 할지 귀가 쫑긋해졌습니다. 엄마는 “너, 바보야(Du Dummkopf)? 그걸 내가 어떻게 아니?”라며 무뚝뚝하고 투박스럽게 답했습니다. 그러고는 본인도 당혹스러웠는지 주위를 살펴보다 필자를 보고는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발걸음을 재촉하고 사라졌습니다. 당시 필자가 의과대학 예과생이었으니 어느덧 반세기가 넘은 세월이 흘렀건만 어린아이와 엄마가 나눈 그 짧은 대화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은 우리 주변 상황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학술 논문에 거짓 결과를 작성하고, 세계적으로 권위가 높다는 국제 학술지에 그 논문을 발표했다가 나라 망신을 톡톡히 시킨 黃 모 교수 사건이 10년 전에 발생했습니다. ‘논문 한 편이 무슨 나라 망신까지…’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당시 뉴욕타임스는 논설란에서 ‘거짓(lie, lied, lying)’이라는 표현을 한 번도 아닌 다섯 차례나 반복 언급하면서 연구자의 비윤리성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논설 언어’로서는 극히 예외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믿기 어렵다’ 같은 간접 형용사를 선택하지 않고 비신사적 직접 표현을 택했다는 사실에 필자는 국민적 모멸감을 심하게 느꼈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 오를 사람이 논문 표절로 낙마하는가 하면, 명문 대학 총장에 임명된 자가 논문 표절로 사임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어이없게도 대법관 후보로 지명된 자가 청문회에서 위장 전입 사실을 인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점은 ‘가짜 논문’으로, ‘논문 표절’로, ‘위장 전입’ 등으로 사회를 부끄럽고 시끄럽게 만든 얼굴들이 TV 같은 매체에 버젓이 공인(公人)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청문회에서 그러한 점들을 묵인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부끄럽고 참담함을 넘어 실로 놀랍기 그지없는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럴 때마다 반세기 전 우화 같기도 한 ‘하천 고래’ 이야기가 떠오르곤 합니다. 당시 어린애다운 꾸밈없는 직문(直問)에 엄마가 답변한 말에서 사회 교육학적 의미를 가끔 되새겨봅니다. 당시 필자는 그 엄마의 비교육적 반응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00야, 고래라는 동물은 몸집이 엄청나게 커서 이런 좁은 하천에는 살 수 없고, 바다처럼 넓은 곳에서만 살 수 있단다” 정도의 설명도 하지 않은 엄마의 투박한 대응을 마음속으로 탓하며 하나의 에피소드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언어문화가 지닌 사회성에 대해 달리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엄마들이 “이렇게 떼쓰면 호랑이가 와서 물어간다”, “말 안 들으면 경찰 아저씨가 잡아간다” 식으로 ‘습관성 거짓’을 말하는 걸 우리 주변에서는 흔히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이 강에 고래가 살아요?”라고 묻는 어린 자식에게 현실적으로 “너 바보야? 그걸 내가 어떻게 아니?”라고 말한 아이 엄마의 투박한 대답은 적어도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는 사회 교육학적 의미를 되새겨보게 하기 때문입니다.
필자소개
이성낙
뮌헨의과대 졸. 프랑크푸르트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현재 가천대 명예총장, 의ㆍ약사평론가회 회장, (사)현대미술관회 회장, (재)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
게스트칼럼 / 이영일
자신에게 엄격한 시민운동가 돼야
한 시민단체의 고위 간부인 장 모 씨가 시민운동 과정에서 감시 대상이었던 기업으로부터 수억 원을 받은 혐의로 체포됐습니다. 지난 2011년 일명 론스타 게이트 사건 당시 론스타의 비윤리적인 외환은행 매각에 대해 통렬한 먹튀 비판을 날렸던 자인데, 당사자는 혐의를 부인한다지만 전후 정황상 그의 억울함은 설득력이 없어 보입니다. 이번 사건은 온 나라를 NGO의 열풍으로 휩쓸었던 소위 낙천낙선운동 이후 우리 사회에 폭발적으로 증가한 시민단체와 그에 속한 직업형 시민운동가들에 대한 고찰과 자성이 필요함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언론플레이에 의존해 시민운동이 그 목적을 떠나 개인을 스타로 만드는 도구로 변질하고, 남을 비난하면서 자신에게는 면죄부를 주는 이러한 구도 속에 시민운동가가 가져야 할 자세와 사고에 대한 철저한 자기 성찰과 수련이 미흡하면 얼마든지 이러한 사건이 반복될 수 있다는 시사점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시민운동은 말 그대로 시민을 대변해 사회 모순과 구조의 변화를 추구하는 개혁적 운동입니다. 하기에 투명성과 도덕성을 특히 강조할 뿐 아니라 위임형 운동이 아닌 자임형 운동의 특성상 스스로에게 엄격해야 하고 시민단체의 운영에는 특히나 민주성과 회원들의 의사결정 구조를 중시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신념만을 가지고 시민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닌 게 현실이라지만 그 핵심 가치인 도덕성과 투명성을 상실하면 시민단체의 신뢰성도 잃기 때문입니다. 사회의 투명성과 민주성을 요구하고 외치면서 내부의 곪은 비민주성을 도려내지 못하고 시민운동가가 금품수수나 도덕적 해이의 파장을 불러일으킨 것이 비단 이번만은 아닙니다. 시민단체가 시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남에게는 엄격하면서 자신에게는 관대함을 내재화시키며, 시민단체를 자신의 개인 회사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높아질수록 돈의 강렬한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아직 시민단체는 우리 사회에서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방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하고 또 그렇게 해야 할 숙명적 책임을 안고 있습니다. 하기에 이번 금품수수와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시민운동가들 스스로의 의식 무장과 시민단체 내부의 강력한 자정 장치가 필요합니다. 아울러 이번 기회를 계기로 남의 노력에 무임승차해 변화의 혜택을 얻으려는 국민이 아닌, 시민운동에 귀 기울이고 함께 참여하려는 국민의 시선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국민의 따뜻한 손과 관심이 우리 사회 시민단체들을 더욱 가치 있게 하고 투명하게 하며 용기를 갖게 하는 강력한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이영일
경희대NGO대학원에서 NGO정책관리학을 전공했다. 서울흥사단 사무처장과 서울특별시청소년수련시설협회 사무국장, 참여정부 서울북부지방법원 국선변호감독위원, 대통령직속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13~14대 자문위원, 대한민국 삼청교육피해자보상심의위원등을 역임했다. 현재 흥사단투명사회운동본부 운영위원으로 NGO와 청소년 분야 평론가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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