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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인 사면
2015.02.10
경제인 사면 문제가 연초부터 경제계뿐만 아니라 정부·정치권에서 화두가 됐습니다. 재계에서 그런 요청을 하는 것은 일견 당연해 보이지만 정부와 정치권이 주거니 받거니 하며 맞장구를 쳤습니다.정부 쪽에선 최경환 경제부총리 황교안 법무장관이 앞장을 선 모양새고 정치권에선 여야 중진들이 사면이 필요하다고 저마다 한마디씩 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연두 기자회견에서 이 문제에 대해 “기업인이라 해서 특혜도 안 되지만 역차별도 안 된다”고 했습니다.현재 수감 상태의 재벌 회장은 SK그룹의 최태원 회장, 최재원 부회장 형제입니다. 태광그룹의 이호진 회장도 징역 4년형을 받았으나 간암 판정으로 병보석 상태고, CJ그룹의 이재현 회장은 근육위축증에 신장이식수술을 받아 구속집행정지 상태로 병원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사면 논의의 중심은 최태원 회장입니다. 사면의 법적 근거는 '형기의 3분의1을 채우면 가석방 대상이 된다'는 형법 72조입니다. 2013년 징역 4년을 선고 받은 최 회장 형제와 2014년 2심에서 3년 징역으로 감형된 이재현 회장은 3분의1 조건은 갖췄습니다. 그러나 가석방은 통상 형 집행률 80% 이상인 사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통상 사면이 시행되던 오는 3·1절의 사면대상자가 되기는 어려울 전망입니다. 기업인 사면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유가 경제활성화입니다. 행동의 자유가 속박된 상황에서 기업인이 경제활동을 제대로 하기는 어렵습니다. 눈으로 보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M&A 등 대형투자 사업을 수행함에 있어 신체적 구속은 결정적인 제약요인이 됩니다. SK CJ 모두 총수의 구속에 따라 국내외에서 여러 신규투자 사업의 지지부진 또는 포기 사례 등 경영상의 애로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기업경영에서 전면적으로 차단됐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면회 경영의 여지는 넓게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구속으로 인해 회장의 기업 내 영향력이 감소될 여지도 없습니다. 영어의 몸에서 풀리면 다시 ‘황제적 회장’으로 경영에 복귀할 수 있습니다. 이런 여건에서 회장의 뜻을 거스를 임원들은 없습니다. 오히려 평시보다 더 깍듯이 모실 것입니다.요즘은 살아 있는 기업의 총수들도 구속되지만 정경유착이 일상처럼 돼 있던 과거에는 부도난 기업 또는 정권에 밉보인 기업의 총수들이 대상이었습니다. 그나마 처벌은 솜방망이어서 1심부터 집행유예로 풀려나기 일쑤였습니다. 회장의 죄 값은 죄질과 관련 없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최장기 15년 징역형을 받은 기업인은 부실규모가 7조5,000억원에 달했던 한보그룹의 정태수 회장입니다. 그는 10년을 옥살이 한 뒤 형집행정지, 특별사면으로 가석방 상태에서 해외로 도피해 행적이 묘연한 상태입니다. 행형의 사후관리도 허술하기 짝이 없는 겁니다.2003년 미국의 엔론 기업의 회계부정 사건으로 스킬링 회장은 24년의 징역형을 받아 12년째 옥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2년 전 4,500만달러의 재산을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조건으로 10년 감형을 받았으나 앞으로도 2년 뒤에나 풀려나는 것과 대조됩니다.기업인의 사면과 경제활성화의 연관성 문제도 개연성의 차원이지 근거 있는 주장은 못됩니다. 이 문제에 관해 명언을 남긴 사람이 전두환 전 대통령입니다. 그는 "대통령이 되고 나서 기업으로부터 정치자금을 안 받았더니 경제인들이 '사업을 못 하겠다'고 해서 정치헌금을 받기 시작했다"면서 "그랬더니 경제가 잘 돌아가더라"고 너스레를 떨었습니다.경제는 심리의 문제라는 점에서 그의 말에도 일말의 진리는 있습니다. 그러니 비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기업회장을 풀어줘서 경제가 활성화되기를 바라기보다는 역설적이지만 전두환식 처방이 더 나은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황제처럼 군림하던 총수의 옥중생활은 고통과 조바심의 나날일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옥살이는 거듭나는 삶을 찾는 계기였습니다. 남아공의 만델라, 인도의 간디, 한국의 김대중 등의 옥중생활은 큰 정치지도자로 성장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기업인들에게도 때론 그런 성찰의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특히 SK의 최 회장은 2003년에도 유사한 비리로 징역형을 받았다가 2008년에 사면됐었는데, 현재 재판 중인 사건은 그가 사면받은 시점에서 저지른 범죄입니다. 모든 옥중의 기업인들에게 구속이라는 시련의 시간이 훌륭한 기업가로 성장하는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필자소개
임종건
74년 한국일보기자로 시작해 한국일보-서울경제를 3왕복하며 기자, 서울경제논설실장, 사장을 지내고 부회장 역임. 주된 관심 분야는 남북관계, 투명 정치, 투명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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