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 둥지는 어디에나 [김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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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 둥지는 어디에나

2015.01.08


“해산까진 안 갈 거야. 지금이 어떤 시댄데.”
“아니, 해산시킨다는데요.”
“뭐, 정말?”

외출 준비를 하던 차 아내와 나눈 내용입니다. 깜짝 놀라 텔레비전의 실황 중계에 귀를 기울였어요. 법무부의 통합진보당(통진당) 해산 청구에 관한 헌법재판소(헌재)의 선고가 진행되고 있더군요. 통진당 해산 선고와 함께 소속 국회의원 5명의 의원직 상실도 결정되었어요.

헌재가 해산 결정을 너무 서두르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렇더라도 정당해산 심판이야 어디까지나 헌재 소관이니 무겁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지요. 일반적인 국민 의식과는 동떨어진 지금까지의 통진당 행태로 볼 때 화를 스스로 불러온 면도 부인할 수 없겠지요. 문제는 헌재가 당의 해산과 함께 소속 의원 5명의 자격 박탈도 함께 결정했다는 점입니다. 통진당을 결코 두둔하지 않습니다. 통진당의 강령이나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의 자격을 헌재가 박탈할 수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헌법상 국회의원의 자격심사와 제명은 국회의 자율적 권한으로 보장돼 있지요. 현행법엔 정당을 해산한 후 소속의원들의 신분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명문 규정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헌재는 구체성 없는 ‘유추해석(위헌정당해산 제도의 본질로부터 인정되는 기본적인 효력?)’을 통하여 법을 우회한 셈입니다. 국회의원(지역구 3명)은 소속 정당의 의원이기 전에 국민이 뽑은 독립적인 입법기관입니다. 헌재의 결정엔 이의제기 및 불복 절차가 없습니다. 위헌 여부를 결정하는 법의 최고 기구가 법률을 비껴가다니 혼란스럽습니다. 국민의 선거권이 헌법기관의 결정으로 제한될 수 있는 것일까?

이번 정당 해산 판결문에 보충 의견으로 제시된 ‘뻐꾸기와 뱁새’의 비유가 특히 눈길을 끕니다. “뻐꾸기는 뱁새의 둥지에 몰래 알을 낳고 뱁새는 정성껏 부화시킨다. 둥지에 뻐꾸기 알을 그대로 둔 뱁새는 자기 새끼를 모두 잃는다.” 뻐꾸기는 북한을, 뻐꾸기 알은 종북 세력, 뱁새 새끼는 선량한 민주시민을 빗댄 말이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영어로는 뻐꾸기 둥지(Cookoo's Nest)가 정신병원을 가리키는 속어여서 확연한 느낌차이가 있습니다.

지난 연말 성탄절을 앞두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의 관료주의를 비판하며 “교황청은 지기 혁신과 자기비판이 없는 경직된 조직으로 영적 치매가 걸린 곳”이라고 질타했습니다. ‘전 세계 교회의 작은 모델’인 교황청이 그럴진대 세속에 뿌리를 둔 다른 조직이야 어련하겠나요? 정당, 언론, 회사, 학원, 관공서, 기업체, 시민단체…. 어느 조직이든 우리는 건강한 뱁새 둥우리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요? 늑장처리 전문으로 뒷북치는 정부나 하는 일 없어 싸움질도 안 하는 국회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동질적 인력으로 구성돼 다원적 가치 포용에 한계를 보인 헌법재판소도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세월호 사고 수습 과정에서 드러난 전방위적인 지리멸렬, 최대 권부에서 우습게(전혀 우습지도 않게!) 유출된 비선 문건 파문, 원전 자료 유출을 축소, 은폐하려는 정부와 산하기관의 작태, 국민도 모르게 다른 나라와 비밀리에 체결한 군사정보 협약 논란, 땅콩 회항으로 드러난 기업과 조사감독기관의 유착 잡음, 우리 사회 모든 ‘을(乙)’을 대변하는 드라마 ‘미생’의 폭발적 인기…. 지난해 발생한 각기 다른 사건 사고와 현상들이 한 줄로 꿰이는 느낌이 가시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우리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요, 도대체?

필자소개

김창식

경복고, 외국어대 독어과 졸업. KAL 프랑크푸르트 지점장 역임.
한국수필(2008, 수필) 신인상 . 시와문화(2011, 문화평론) 신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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