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도 입도는 쉽지 않았다.
바람이 유독 많이 불었던 12월 22일, 전라남도 진도 앞바다는 넘실거렸다. 가사도행 배를 탈 수 있는 진도 가학선착장 인근에서 만난 동네 주민은 “이 정도면 배가 충분히 뜰 수 있다”고 했는데 얘기가 달랐다.
선착장에 도착해 배가 출발하는 오전 8시까지 기다렸는데 배는 오지 않았다. 선장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풍랑주의보로 오전 배는 안 뜬다고 한다. 아침, 점심, 저녁 세 번 배가 뜨는데 남은 기회는 두 번뿐이었다.
다행히 오후 12시 배는 정상 운행했다. 선착장으로 들어오는 가사도행 배편 제영1호가 반갑다. 배는 물살을 가르며 가사도로 나아갔지만 옆머리를 치는 파도는 거셌다. 멀리 보이는 가사도를 찍으려 카메라를 들었지만 자칫 떨어뜨릴까 도로 넣었다.
가사도는 지난해 4월 16일 슬픔이 전국을 뒤덮었던 세월호 침몰 사건과 가까운 팽목항과 직선거리로 10여km 거리에 있는 섬으로 선착장에서 가사도까지는 3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가사도 선착장에 도착하니 오늘 하루 가사도 마이크로그리드 설비를 소개해 줄 이영환 발전소장이 보였다. 40대로 눈매가 날카롭지만 웃음이 맑아서 인상이 좋다. 섬 주민 출신으로 20여년 전부터 가사도 발전소에서 일하고 있다.
“오늘 배가 아예 못 뜰 뻔했는데 운이 좋으시네요.”
국내 최초로 독립형 마이크로그리드 구축한 작은 섬
2014년 10월 2일 전라남도 진도군에 소재한 작은 섬 가사도가 ‘에너지 자립 섬’으로 다시 태어났다.
에너지 자립 섬이란 필요한 모든 전력을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섬을 말한다.
기존에는 디젤발전기를 활용해 전력을 생산했지만 에너지 자립 섬은 태양광, 풍력으로 전력을 생산하고 에너지저장장치(ESS)에 저장해 사용하는 소규모 에너지 생산 시스템이 도입됐다. 이른바 독립형 마이크로그리드(Micro Grid) 시스템이다.
가사도의 모든 전력 상황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통합제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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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그리드는 계통연계형과 독립형으로 나뉘는데 계통연계형은 평상시에는 전력계통과 연계해 전력을 거래하고, 비상시에는 계통과 분리해 운전하는 방식이다. 주로 도심지에서 사용한다. 반면 가사도에 설치한 독립형은 계통과 연계하지 않기 때문에 고립된 지역에 전력을 공급해야 할 때 필요하다.
마이크로그리드는 디젤발전기에 비해 연료비가 연간 절반 이상 줄어들고 유지보수도 수월해 경제성이 높을 뿐 아니라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하기 때문에 친환경적이다. 한전은 이번 가사도 마이크로그리드 실증사업을 바탕으로 관련 기술을 검증한 뒤 국내 도서지역에 확대 보급할 예정이다.
태양광 적었지만 바람 많이 불어 안정적인 발전량 유지
가사도의 마이크로그리드 시스템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력제어센터는 선착장에서 100여미터 거리에 있다. 전력센터는 이번 마이크로그리드 실증사업을 위해 새로 지었다.
센터는 2층 규모로 1층 상황실에는 운영시스템과 인버터·배터리 시스템이 설치돼 있다. 2층에는 휴식공간이 있는데 채우규 한전 전력연구원 마이크로그리드사업단 차장은 이곳에서 거의 상주하다시피 하며 공사를 감독했다.
상황실로 들어서자 대형 모니터 4개, 일반 모니터 4개에서 가사도의 마이크로그리드 현황이 쉴 새 없이 쏟아진다. 운영시스템은 각 발전기(풍력, 태양광, 디젤, 배터리 시스템 등)의 상태정보를 모니터링하고 각 발전기로 제어명령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오후 12시 45분 기준으로 풍력 발전량은 53kW, 태양광 발전량은 59kW이고 배터리에는 42.6%%의 전력이 저장돼 있었다. 태양광은 날이 흐려 발전량의 변화가 극심했다. 59kW였던 발전량이 금세 10kW미만까지 떨어지기도 했지만 다행히 바람이 세게 불어 이를 보완해줬다.
가사도 마이크로그리드 규모는 풍력 400kW, 태양광 314kW, 배터리는 3MWh다. 168가구, 286명이 거주하는 가사도의 평균 전력 부하량은 95kW인데 큰 무리 없이 운용이 가능하다.
다만 전력 피크 시, 혹은 발전량이 적을 때에는 디젤 발전기를 가동해 전력 수요에 대응한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발전의 노력! 수상 태양광 발전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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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가사도에 풍력발전기를 더하다
풍력 발전단지와 태양광 발전단지를 직접 보기 위해 밖으로 나가 이 소장의 차를 타고 산을 올라갔다. “저기 전봇대가 두 개 보이시죠? 한 개는 기존에 있던 마을로 전기를 보내는 전선이고, 다른 하나는 마이크로그리드를 연결하기 위한 전선입니다.”
풍력, 태양광으로 생산한 전기는 마을로 보내져 바로 사용하거나 에너지저장장치(ESS)에 저장된다. 이를 위해 전선을 두 줄로 연결해 하나는 제어센터에 있는 배터리로 전기를 보낸다.
산 중턱에 오르자 풍력단지와 태양광단지가 보였다. 바람이 많이 불어 풍력발전기가 빠르게 돌고 있었다. 가사도의 평균 풍속은 5.8m/s로 최소 3~4m/s는 돼야 돌아가는 풍력발전기에 적합하다.
산 중턱에서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모습은 다소 이국적이었다. 미관상 좋을 것 같다고 했더니 이 소장은 가사도 주민들이 특히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총 4대의 풍력발전기 중 2대가 움직이지 않았다. 왜일까.
“1호기, 4호기가 며칠 전에 고장이 났어요. 바람이 워낙 세게 불다 보니까 부하가 걸렸는지 멈춰버렸네요.”
풍력발전기 밑에는 수리를 위해 섬을 방문한 풍력, 태양광 발전업체 해바람에너지 직원 두 명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아까 함께 배를 타고 들어왔던 사람들이다. 이주호 해바람에너지 대리는 고장 원인은 발전기 내부에 있는 모터 고장이라고 알려줬다. 내일 모터를 들고 다시 섬에 들어와야 한단다.
풍력발전기는 가끔 작동이 안 될 때가 있다. 어느 정도 실증을 거친 태양광 발전과 달리 풍력발전은 9월까지 실증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100% 안정적으로 운영되지는 않고 있다. 특히 여름에 태풍이 올 때에는 발전을 멈추고 꺼놔야 한다.
풍력발전기 바로 옆에는 태양광 패널이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다. 날이 흐려 해가 드문드문 떴지만 태양광 패널은 묵묵히 빛을 모은다. 산 아래쪽 저수지에 있는 수상태양광을 보기 위해 다시 차에 올랐다. 몇 분 만에 저수지에 도착했다. 태양광 패널은 저수지 일부에만 설치했는데 갈수기에도 물이 고여 있는 곳이 넓지 않기 때문이다. 수상태양광은 저수지 바닥에 고정하지 않고 닻을 연결해 물에 둥둥 떠 있어 바람이 불자 조금씩 움직였다.
가사도 마이크로그리드 구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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