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TX 건설사업, 사업비 올려줬는데도 입찰 참가 회사 없어
마석~송도 GTX 유찰
치솟는 자재값에 국가 사업도 삐그덕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원자재 값 폭등 여파로 공사에 차질을 빚는 건설 현장이 속출하고 있다. 정부가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 사업비를 10% 가까이 올렸음에도 건설사들이 입찰에 참여하지 않아 사업 지연 위기에 처했고, 민간 아파트 건설도 공사비 증액 문제로 파행을 빚는 현장이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적절한 공사비를 책정할 수 있는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건설 경기 침체는 물론 정부가 계획한 대규모 주택 공급, 사회 기반 시설 확충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공사비 인상이 분양가에 전가돼 주택 수요자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치솟은 공사비에 GTX도 ‘삐걱’
8일 건설 업계에 따르면, 국가철도공단은 지난달 경기도 마석과 인천 송도를 잇는 GTX-B노선의 재정 사업 구간(서울 용산역~상봉역 20㎞)의 입찰을 위한 사전 심사 신청을 받았다. 그러나 전체 4개 공구(工區) 중 3개 공구가 참여 업체 수 미달로 유찰됐다. 3공구 모두 1개 기업씩만 신청했다. 세금을 투입하는 재정 사업은 2개 이상 사업자가 참여해 경쟁 입찰이 돼야 사업자 선정을 할 수 있다. 3회 이상 유찰되면 수의계약을 할 수 있지만, 사업비가 조(兆) 단위인 대형 국가 사업을 수의계약으로 맡길 가능성은 희박하다.
철도공단은 지난 6월 GTX-B노선의 사업비를 기존 2조3511억원에서 2조5584억원으로 2073억원(8.8%) 올렸다. 기업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사업비를 상향 조정했지만, 기업들이 외면한 것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GTX 같은 상징성 있는 국가 프로젝트에 기업들이 입찰조차 안 한 것은 지금 책정된 공사비로는 손해가 뻔하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민간 주택 공급 사업도 공사비 때문에 지연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1기 신도시인 경기도 성남 분당에선 지난 6월 리모델링을 추진 중인 ‘매화마을2단지’ 조합이 삼성물산·GS건설의 공사비 증액 요구에 반발하며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박탈했다. 1만2000여 가구 규모의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사업도 공사비 증액을 둘러싼 조합과 건설사 간 갈등으로 5개월 가까이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인천 청라국제도시의 랜드마크가 될 높이 448m ‘청라시티타워’ 건설 프로젝트는 시공사인 포스코건설이 당초 3032억원이었던 공사비를 5600억원으로 올려달라고 요구하면서 사업이 지체되고 있다.
건설사 80% “시멘트·철근값 뛰며 공사비 20% 이상 늘어” 주택착공 30% 감소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건설용 재료 물가지수’는 올해 7월 146.47로 작년 1월(108.62)보다 34.8% 급등했다. 반면 같은 기간 분양가 상한제 산정 기준이 되는 기본형 건축비는 10.6% 올랐다. 건설 물가 상승률과 정부가 인정하는 건축비 인상률 간 괴리가 큰 것이다. 건설사들은 “비용 부담을 분양가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적자가 불가피하다”고 울상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최근 민간 건설사 74곳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전체의 79.7%가 ‘애초 계획보다 공사비가 20% 이상 증가했다’고 응답했다.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지 않는 공공 재개발 사업 공사비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 ‘용두1-6구역’은 최근 3.3㎡당 922만원에 공사비 계약을 맺었다. 아파트 신축 공사비로는 역대 가장 비싼 금액으로 지난해 서울 재건축·재개발 사업장의 평균 공사비(578만5000원)보다 60%가량 오른 금액이다.
원자재 값 폭등으로 인해 공사비가 늘어나면서 주택 공급도 위축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 들어 7월까지 전국 주택 착공 물량은 22만3082가구로, 작년 같은 기간(31만937가구)보다 30% 가까이 줄었다. 문재인 정부의 공급 억제 정책 영향으로 착공이 지지부진했던 2019년(22만9549가구)보다도 더 적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공사비 책정을 둘러싼 갈등이 심해지면 주요 SOC나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계속 지연돼 정부의 주택 공급 확대 정책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순우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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