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안전한가 [방석순]




대한민국은 안전한가
2021.09.08


-아프가니스탄 거울에 비친 우리 모습

‘남조선 영상물 유입·유포는 최고 사형, 시청은 징역 15년’
북한에 그런 법이 생겼다고 합니다. 남한 노래를 하거나 사진을 가지고만 있어도 처벌 대상입니다. '남조선 말투나 창법을 쓰면 2년의 노동교화형(징역)에 처한다'는 조항도 있다고 합니다. 북한이 지난해 12월 제정했다는 '반동문화사상배격법'입니다.

이같이 어처구니없는 시대착오적 규제는 물론 자유 사상이 깃든 모든 정보를 차단해 북한 체제를 지키겠다는 세습 독재정권의 고육책일 것입니다. 거꾸로 그만큼 체제 유지에 자신감이 없고, 북한 정권이 모래 위에 세운 누각이라는 반증이기도 하겠습니다.

북한은 또 코로나 방역을 구실로, 허가 없이 북중 국경 완충지대를 오갈 경우 사전 경고 없이 총격을 가하도록 지시했다고 합니다. 그 삼엄한 예방조치에 소름이 돋습니다.

 



최근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지난 7월 초부터 영변 핵 시설 내 5MW급 원자로가 재가동된 정황을 포착했다고 보고서를 냈습니다. 일시 중단했던 시설을 재가동해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추출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북한은 이미 지난 2005년 핵무기 보유를 선언한 바 있습니다. 2006년 10월부터 2017년 9월까지 여섯 차례 핵실험도 감행했습니다. 그러면서도 2007년과 2018년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를 이야기했습니다. 평화를 논하는 테이블 아래서도 핵 개발은 간단없이 이어져 온 것입니다. 그 핵무기가 누구를 겁박하기 위한 것인지는 너무도 뻔한 일입니다.

일련의 북한 움직임에 보여온 우리 정부·여당의 대응이 참으로 불가사의합니다. 북쪽에 '반동문화사상배격법'이 만들어지던 비슷한 시기에 남쪽에서는 ‘남북관계발전법’이라는 게 만들어졌습니다.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전단을 살포하거나 대북 확성기 방송 등을 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시사상식사전은 탁 까놓고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이라고 표현했더군요. 참 무지몽매한 표현입니다. 걸핏하면 남쪽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북한의 위협에서 분계선 지역 주민들을 지키고, 최고 사형에서 최하 교화형을 당할지도 모를 북한 주민들의 안전을 도모한 법인데 말입니다. 어쨌거나 남과 북이 때맞추어 같은 목적의 법을 만들어 남과 북 국민을 동시에 옥죄었으니 묘한 조화입니다.

지난 7월 말 우리 정부는 남북 통신연락선 복원을 자랑하듯 발표했습니다. ‘앞으로 남북관계 개선과 발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며 평화 무드를 홍보했습니다. 영변 핵 시설 재가동이 확인되고도 한참 후였는데 말이지요. 북의 핵 활동을 알고도 그랬다면 적의 도발 앞에 국민을 기만한 것이고, 모르고 그랬다면 국가와 국민을 수호할 능력도 자격도 없다는 명백한 증거인 셈입니다.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을 제정하고, 한미연합군사훈련을 반대한 여당 의원들의 부화뇌동에는 기가 막힐 뿐입니다. 국민의 대표가 적의 눈치를 보느라 국민의 입을 봉쇄하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훈련을 반대하다니요.

정부는 지금까지도 자나깨나 대북 인도적 지원과 협력, 남북 경제문화교류, 남북 군사합의, 한반도평화프로세스 어쩌고 하는 미몽 속을 헤매고 있습니다. 북한의 변함없는 인권 탄압과 대남 도발에도 불구하고. 핵 개발과 미사일 발사, 무인기 침공, 개성공단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연평도 해역 공무원 총격 살해, 국방·의료·금융기관 해킹… 북한의 도발은 거의 일상이 되어 아예 국민들의 관심에서도 멀어져가는 상황입니다.

 




북한의 진정한 변화를 바란다면 북한 정권 스스로 인민의 삶을 책임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인도주의 명분으로 남이 북을 지원하는 동안 북은 남을 불바다로 만들 준비에 매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북한군 무력 도발에 우리 군은 한결같이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해왔습니다. 그 결과가 DMZ 노크 귀순, 동해안 목선 귀순, 헤엄 귀순인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군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잊을 만하면 각 군이 돌아가며 성추행, 하극상에 명령 불복, 부실 급식 등등의 사건들로 안이한 국민들의 주의를 환기해 주었지요.

전통처럼 우리나라에선 권세가 강한 자의 자식들이 온갖 구실로 솔선해서 병역을 회피해왔습니다. 게다가 지난해 양심적 병역거부로 법원의 인정을 받은 청년이 1,419명이나 됩니다. 이젠 힘도 빽도 없고 돈 없어 군에 끌려가는 젊은이, 정말 나라를 지키겠다는 충심으로 자진 입대하는 젊은이들이 도리어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할 것 같습니다.

대공 업무를 놓아버린 국가 정보기관, 공공연히 한미동맹 해체와 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시위대, 국방 예산 삭감을 요구하는 노조, 적 미사일 방어용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주민과 외국 방송에 사드 철회를 공언하는 대통령 후보, 그런 가운데 전작권을 되돌려달라는 뜻이 자주국방 강화에 있는 것인지, 국방 해체에 있는 것인지 모를 지경입니다.

 



최근 영상물등급위원회(회장 채윤희)가 6·25전쟁 당시 중공군의 영웅담을 그린 중국 영화를 국내에서 상영토록 허가했답니다. 북에서는 남쪽 영화를 유입·유포하면 죽이겠다는 마당에 남에서는 북을 도와 우리 부모형제를 죽인 적의 활약상을 보여주겠답니다.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호국영령들이 통곡할 일입니다. 이런 얼빠진 집단에게 과연 제 나라를 지킬 의지나 힘이 있을까요?

평화는 적의 노여움만 피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적에게 조공하며 구걸한다고 얻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힘의 균형이 이루어졌을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남의 도움만 바라서 되지도 않습니다. 제 나라 제 국민을 제힘으로 지키겠다는 굳은 의지가 있을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병력의 규모, 무기의 수량은 전쟁에서 큰 의미가 없습니다. 월남, 아프가니스탄의 교훈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지난 8월 15일 친미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무너졌습니다. 미군 철수 직후의 사태입니다. 탈레반이 점령한 수도 카불의 공항은 아비규환, 그 자체였습니다. 1975년 사이공 함락의 그날과 똑같은 광경이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 미국의 국익이 없다. 더 이상의 미군 주둔은 미국민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20년 전쟁 지원을 끝낸 미국 대통령의 한마디가 충격적이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큰 거울에 비친 우리 모습이 너무 위태롭습니다.

 

​1975년 월남 사이공 탈출 광경(왼쪽), 2021년 아프가니스탄 카불 탈출 광경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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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부국장, 경영기획실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 역임.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 국제경기 현장 취재. 스포츠와 미디어, 체육청소년 문제가 주관심사.

 

2006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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